풀 타령: 엉성할 초/풀 초草

풀들이 빛을 잃고 시들해졌으며 죽었다. 그리고 그 위에 나뭇잎들이 수북하더니 어느새 눈이 쌓여 풀들은 자취를 감추고 눈 세상이 되었다. ‘풀 초草’는 ‘풀 초艹(艸)’라는 의미부 글자와 ‘일찍 조早’라는 소리부 글자(조→초)가 합해져 만들어진다. 한 해가 시작할 무렵 사방 천지에 일찍 돋아나 변화를 알리는 것이 풀이라지만 한 해의 마감에는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풀 초艹(艸)’라는 글자는 싹이 삐죽이 돋아나거나

젊은 세대의 성격 변화

성격 유형이나 지표를 파악하려는 에니어그램이나 MBTI와 같은 도구들처럼 뉴욕 대학 교수로 활약하고 있는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는 심리학적 도구를 통해 사람을 다섯 가지 성격으로 특징지어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성격 유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다섯 차원(빅 파이브)은 첫 글자를 따서 OCEAN이라는 약어로도 불리는데, 이러한 차원은 창의력이나 지능, 혹은 예술에 대한 흥미 등과 관련된 성향인 openness(개방성),

신애론(2-3)

제3장 일반적으로 본 하느님의 섭리에 대하여 그러므로 테오티모여, 하느님은 여러 가지 많은 행동을 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전능하신 의지의 신적神的인 유일한 행동만이 당신의 무한한 완전성으로써 당신 작품의 온갖 다양성을 생기게 하는데 넉넉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죽을 인생들은 우리의 비좁은 정신이 획득할 수 있는 지성의 방법과 모양을 따라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회개(메타노이아, μετανοία)

‘회개’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명사나 동사의 형태로 50여 회 넘게 보인다. 명사 ‘회개’는 메타노이아(μετανοία)이고, 동사 ‘회개하다’는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이다. 메타노이아의 중요한 어근은 ‘누스’(νοῦς, mind, understanding, thought, opinion, judgment, plan)인데, 여기에 전치사 ‘메타’(μετά, after, with, around, ~넘어서, 변화·전환 뉘앙스)가 접두어로 붙어서, 마음이나 생각의 돌이킴을 뜻한다. 공관복음, 사도행전, 서간,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두루 보이는 이말을 요한복음은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 ‘회개하다’라는 동사는

대림 제2주일 ‘가’해(마태 3,1-12)

대림 제2주일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만나도록 인도한다. 복음서가 전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은 ‘선구자’인데, 이는 자기 “뒤에 오시는 분”(마태 3,11), 곧 메시아에 앞서 와서 이 세상에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거의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참조. 마태 4,19;10,38;16,24) 제자처럼 비치는데도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비교해 세례자 요한이 더 큰 힘을 지니고 있으며, 훨씬 더 급진적인

깨어 있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어라”(마태 24,42;25,13;26,38 마르13,35.37;14,34) 하고 명하셨다. 또한 “깨어 기도하여라”(마태 26,41 마르 14,38 루카 21,36) 하시며, “깨어 지켜라”(마르 13,33)고도 하셨다. 제자들이 깨어 있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시기도 하셨고(마태 26,40 마르 14,37), 깨어 있는 종들의 행복을(루카 12,37)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반복하여 “깨어 있어라” 하신 까닭은 문맥에 따라 여러 층위로 드러난다. 첫째, 주인이 언제 올지

박해와 미움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겪게 될 세상의 미움과 ‘박해’에 관하여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일찍이 산상설교에서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마태 5,11)고 하셨고, 또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24,9 마르 13,13 루카 21,17)라고 제자들에게 분명히 일러주셨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며 겪는 박해를 자신의 삶으로

예루살렘 성전

예루살렘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 산(유다교에서는 모리야 산, 이슬람에서는 알-하람 알-샤리프로 부름)에 세워진 유다교의 총본산으로서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항상 중심이었다. 성전 건립의 역사는 필리스티아인에게 빼앗긴 계약 궤(1사무 4,3)를 되찾고, 다윗 왕이 이를 예루살렘에 모신 다음(2사무 6장) 건립을 추진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성전의 건립은 다윗 왕의 뒤를 이은 솔로몬 임금에 의해서 기원전 10세기 중반, 전통적으로는 957년경에 완공된 것으로

대림 제1주일 ‘가’해(마태 24,37-44)

전례력으로 새해 첫 주일이다. 대림 제1주일을 라틴어로는 ‘레바비 주일’(Levavi, 들어올리다)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다. 그 이유는 이날 부르는 그레고리안 성가 입당송 구절이 “Ad te levavi animam meam.”(주님, 당신께 제 영혼을 들어 올립니다)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가’해의 대림절 4주 동안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서에서 취한다.(이런 의미로 이사야를 ‘대림시기의 예언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기원전 7∼8세기의 암울한 시기에 이사야 예언자가 메시아께서 오실

죽음의 춤

우리말로 ‘죽음의 춤’ 혹은 ‘죽음의 무도舞蹈’라고 불리는 표현이 있다.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라틴어 ‘코레아 마카배오룸(Chorea Machabæorum)’, 불어 ‘라 당스 마카브흐(La Danse Macabre)’, 독어 ‘토텐탄츠(독어. Totentanz)’ 등으로 불려온 이 말은, 인간이 절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불가피성과 대체 불가능성, 그리고 예외 없는 보편성을 넘어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저항과 그 저항의 부질없음을 일깨우기 위한 예술적 알레고리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