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임에도 뭔가를 바꿔보려고 많은 힘과 정성을 쏟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는 의외로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어떨 때 우리는 내가 진지하게 뭔가를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는데, 상대방으로부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시큰둥하거나 관심 없다는 것을 직접 말하지는 못하면서 “내가 좀 바빠서…”라거나 “나중에…”, 그리고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어서…”라는 식으로 에둘러 나를 피하거나 지나치고자 하는 말을 곧잘 듣곤 한다. 내가 이런 식의 말을 자주 들었다는 얘기는 내가 괜스레 쓸데없는 일에 열을 올리는 따분한 존재이든지 아니면 내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온 세상을 구해야만 된다는 듯이 열을 올리고 있다든지, 고집스러운 친구의 사적인 문제를 두고 계속 염려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내 역량을 벗어나는 직장의 어떤 상황에 관하여 불평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를 두고 “내가 좀 바빠서…”라거나 “나중에…”, “지금은 그럴 여력이…”라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대답으로 듣고 있다면 그 말은 그 누군가가 나와 그 사이에 어떤 선을 긋고 있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는 결국 네가 어쩔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문제에 힘을 낭비하지 말고, 쓸데없는 걱정들은 붙들어 매며, 더욱 중요한 일에나 집중하라는 말일 것이다.
장시간 자동차를 타면서도 지칠 줄 모르고 재잘거리며 산만하기 짝이 없는 나의 여섯 살짜리 딸아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에게는 일정량 한정된 에너지만 있게 마련이다. 그렇게 한정된 에너지를 어떻게 소비할지를 두고 우리는 매일 선택한다. 우리 힘으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지나 않은지, 아니면 우리 자신과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의 세세한 것들까지도 최대치로 관리하면서 힘을 쏟고 살아가는지……과연 우리는 우리가 우리 힘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범주 안에서 긍정적이면서도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사용해나가고 있는 것일까?
나의 한계들로부터 배우기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내가 온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에게는 그리 내세울 만한 재능이나, 지성, 초인적인 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넓은 시야도 없다. 아주 제한적인 시야만을 지니고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만 살아가는 내가 어찌 세상과 지구를 구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만물의 영장이랍시고 어쩌다가 나비 한 마리를 구했다가 그 날갯짓의 파장이 지극히 우연스럽게 지구 반대편에 돌풍을 일으켰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 나름대로는 확신을 두고 누군가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조언이란 것을 했었지만, 그들이 내가 말한 것과는 정확히 정반대로 하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던 경험이 많이 있다. 그럴 때면 나의 조언이라는 것이 별 쓸모가 없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결국 내가 깨우친 바는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해보려 하거나 그들이 해야 할 바를 내가 말해준다는 것이 내 역량이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내게는 다른 이가 변하기를 원하지 않는데 그들의 마음을 바꿀 재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그들이 행동하게 할 재주도 없다. 뭔가 조언을 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고, 설령 조언한다고 하더라도 그 조언대로 실제 일이 이루어질 리도 없다.
단순하게 말해서 나는 다른 사람의 결정은 고사하고 나 자신의 결정조차도 세세하게 관리할 무한한 힘이나 에너지를 갖추지 못했다. 내가 이도 저도 어찌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럴 때 내게는 (1) 되지도 않는 일에 계속 에너지를 쏟아부으면서 엄청난 좌절이나 불안을 겪거나 (2) 소위 나의 영향력이 지닌 한계를 받아들이고 더욱 생산적인 영역에 나의 에너지를 집중하는 방법을 터득하거나 하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다.
영향력과 통제의 원圓
이러한 두 가지 선택을 간단하게 스티븐 코비Steven Covey(1932~2012년)의 ‘영향력의 원 : 통제의 원(circle of influence vs. the circle of control)’이라는 도식으로 그려볼 수 있다. 그는 자기 저서 <고도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에서 이 개념을 설명하는데 나는 이 개념이 상당히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두 개의 원을 그리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개념이다. 첫 번째 원은 영향력의 원으로서 실제로 내가 바꿀 수 있고 바꿀만한 능력이나 자질도 있는 범주를 의미하고, 두 번째 원은 관심의 원으로서 내가 바꾸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내 영향력 밖에 있는 것들을 뜻하는 원이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들에 내가 주도적으로 대응하면서 부분적으로나마 이를 달성할 수는 있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불평하는 것을 멈추는 대신 긍정적인 가치를 더함으로써 내가 해결책 일부가 되는 것을 말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단순한 예를 들어 집 앞뜰의 조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해 불평만 하지 말고 나무나 꽃들에 관한 공부를 좀 하거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날을 잡아 내가 개선해보는 식이다. 그러면 더는 걱정이나 불평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내가 능동적으로 내 집 뜰을 개선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관심의 원을 줄여 영향력의 원과 딱 들어맞게 그릴 수도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관한 영향력의 욕구를 줄이는 것이 포함된다. 한 예로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운영방식에 불만이 있다고 치자. 내 소유의 회사가 아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므로 이는 그냥 넘어가야만 한다. 내가 영향력 제로인 상태라면 나의 불만을 그만두어야 한다. 내가 바꿀 수도 없고, 바꿀만한 지식이나 전문성, 혹은 회사의 경영에 관여할 지분이 없으므로 더는 초조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더욱 중요한 일 찾기
중요하지 않은 일에 쏟는 이러한 불필요한 에너지를 멈출 수 있다면 이를 더욱 중요한 일에 돌릴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에 나 나름대로 긍지와 자부심을 품고 잘할 수 있는데, 나의 상사나 사장님이 회사나 사무실 운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신경을 쓰고 걱정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만나는 동네나 이웃이 더욱 행복하고 더욱 좋은 곳이 되는 데에 내가 무엇인가를 이바지할 수 있고 그렇게 해나가고 있는데, 내가 어쩌자고 국가의 중대사와 정치를 걱정하고만 있다는 말인가? 내가 최대치로 나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야말로 생산적이고, 행복하며, 걱정 없는 삶을 누리는 방법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적어도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받아 두통약을 먹을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내가 좀 바빠서…”라거나 “나중에…”, 그리고 “지금은 그럴 여력이…”라는 말은 듣지 않아도 될 것이다.(*번역 글, 원문과 이미지 출처: https://aleteia.org/2024/05/19/how-drawing-two-circles-can-make-you-more-productive/)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내서 읽으니 더 좋습니다
특히
“내가 최대치로 나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야말로 생산적이고, 행복하며, 걱정 없는 삶을 누리는 방법이다.”
메세지는 귀한 배움이 되었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최근 들어 저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막막하게 여겨오던 차에 맑은 샘물 같은 글을 만나 기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일 찾기
불필요한 에너지 멈추기.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편을
알겠네요.
비록 현실은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 쏟아붓고
남의 탓을 하고 있지만 ㅋ
힘 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