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적 배경: 요셉 성인에 관한 신심을 대중화한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성 요셉을 모시면서 성 요셉 성월과 3월 19일로 대축일을 제정(1870년)하기까지 한 .돈 보스코 시대의 비오 9세 교황 / 돈 보스코가 서품을 갓 받았던 1840년대부터 시대적 이슈가 되었던 성 요셉 신심(*그림 – ‘요셉의 꿈’, 지거 쾨더. 독일 바트 우어작허 제대화, 제공-박유미, 가톨릭뉴스)
– 돈 보스코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성 요셉 신심이나 대축일에 관한 몇 가지 문헌적 근거들:
「돈 보스코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학생 청소년들보다 근로 청소년들에게 좀 더 너그러웠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서 영적으로 두드러진 아이들이 있음을 보며, 1859년에 ‘성 요셉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을 결성하였다. 뛰어난 아이들이 모여 그리스도인적이고 사도적인 삶을 실천하도록 노력하는 모임이었다.(테레시오 보스코, 돈 보스코, 419쪽)」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돈 보스코는 주님 안에서 마음을 다하여 항상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돈 보스코는 성 요셉 축일 미사 때 특별하게 여러분을 기억할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 가운데 계실 수 없으므로 여러분을 처음 방문하는 기회가 올 때 파티를 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각주 127: 보넷티 신부에게 보낸 1870년 6월 16일 자 편지, E II 97; 다시 참조: 란조 원장 루피노 신부에게 보낸 1865년 3월 22일 자 편지, Em II 117; 로마에서 1870년 1-2월 사이에 루아 신부에게, E II 71-72(“나는 여러분이 행복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다음 일요일 내가 도착할 때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를 기리는 대축제를 열 것입니다.”); 몬페라토의 미라벨로 원장 보넷티 신부에게 1870년 2월 9일, E II 74; 체라스코의 원장 프란체시아에게 1970년 2월 10일, E II 75; 마릿티마의 닛자 원장 론카일 신부에게 1878년 1월 12일, E III 270-271; 돈 루아에게 1879년 1월21일과 2월 25일1879, E III 440, 447”(브라이도, 돈 보스코의 예방 교육, 264쪽)」
「“금년도 생활지표로 저는 여러분에게 일거리를 주겠습니다 […].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살레시오 집에 가지고 있는 신심 단체들, 즉 알로이시오 회, 성체회, 복사단, 성 요셉회, 도움이신 마리아회,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회와 같은 신심 단체를 북돋워 주십시오. 특별히 신심 단체의 교사와 지도자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혹시라도 이러한 단체에 들어가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설득할 게 아니고 권장해야 합니다. 강하게 권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주 59: G. Barberis, Cronichetta, quad. 3 Bis, 1875년 12월 31일 저녁말씀, 43(앞의 책, 472쪽)」
「특정 성인을 기리는 몇 가지 특별한 축제는 훨씬 장엄하게 거행하였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 요셉,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 세례자 요한(이 축일은 돈 보스코를 중심으로 학생들과 동문이 연례 모임을 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교황 축일이기도 한 성 베드로 축일, 모든 성인 축일, 음악가의 주보 성인인 성녀 체실리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 교육시설의 주보성인들. 6월 24일 축일은 아주 특별했다. 이 축일은 축일 전야에 시작했으며 각 살레시오 집과 오라토리오에서 각기 다른 시기에 거행한 모든 감사 축일의 모델이 되었다. 1879년도부터 「살레시오가족지」는 발독코에서 지낸 이 축일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으며 7월에 사제와 평신도인 오라토리오 동문과 돈 보스코가 만난 모임에 대해 회상하였다.(앞의 책, 485쪽 *각주 23: BS 3 (1879) no. 7, July, 8-9; 4 (1880) no. 9, Sept, 9-12; 5 (1881) no. 8, August, 15-16; 6 (1882) no. 7, July, 122-123.)」
「많은 축일은 특별한 음악과 노래와 화려한 종교의식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축일 전에 3일 기도와 9일 기도가 있었다. 특정한 달에 가능한 한 완전히 그 축일에 참여하도록 젊은이들을 독려함으로써 활기에 넘치게 되었고 교육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5월의 성모성월과 노동 청소년들이 거의 집단으로 관심을 보이는 성 요셉을 기리는 3월, 10월의 묵주기도 성월 등이 그러한 달이었다.(앞의 책, 485쪽)」
「*각주 40: Cf. 「돈 보스코 전기」 III 440-441; VI 437; XI 111. 랏제로 신부는 1876년 자신의 일기에 적었다. “보통 성 요셉 성월에 각 반에서 뛰어난 학생들은 돈 보스코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근로 청소년들은 성 요셉 대축일에 이 행사를 시작하곤 했다. 그러나 이것은 ‘장상의 뜻에 달려 있었다.’”(J. M. Prellezzo, Valdocco…, 109)(앞의 책, 5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