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1일자 경향 신문은 <교황 “우크라, 백기 들고 항복할 용기 필요” 발언에 거센 역풍>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냈으며, 다른 매체들도 앞다투어 비슷한 기사를 실었다. 스위스 공영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교황님의 발언을 전달한 기사이다.(*사진과 기사 출처. https://m.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403112136025#c2b) 얼핏 듣기에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항복해야 한다고 권유하는 것처럼 들린다. 우크라이나는 기사에서도 보듯이 즉각 거세게 반발하며 “선의 편(우크라이나)에 서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해 주기 바란다.…(우크라이나의 백기를 얘기하지 말고) 잔인한 러시아 가해자들에게 죽음과 악마의 상징인 해적 깃발을 내리라고 강하게 요청하라”라는 성명을 냈다. 악의 세력인 침략자들에게 맞서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독립군에게 항복하라고 권유하는 듯한 교황님의 발언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교황님께서 러시아 편을 드시거나 감히 말하건대 고령으로 치매에 걸리신 것은 아닐까?
교황님의 인터뷰에서 오간 어휘들은 “resa attiva(적극적인 항복)”, “negoziato(협상)”, “bandiera bianca(백기白旗)”, “cessazione delle ostilità(적대 행위 중단)”와 같은 말들이다. 이 말들만을 보아서는 교황님께서 분명 러시아 편을 들고 있는 말씀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수많은 생명이 죽어 나가는 전장에서의 주검들을 슬퍼하고, 600만 명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의 가톨릭 신자들을 특별한 애정으로 바라보시며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면 맥락은 달라진다. 우크라이나 정교회와 가톨릭 신자들에게 정치적 이유보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먼저이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냐고 눈물을 흘리며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에서 나온 말씀이라고 생각하면 얘기가 아주 달라지는 것이다. 문제는 나 같은 사람도 알아들을 만한 그런 얘기를 악의적으로 보도하면서 교황님과 교회를 공격하는 빌미로 삼는 이들에게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단순히 두 나라만의 전쟁이 아니라 그 이면에 아주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얽혀 있으며 사악하고도 거대한 메커니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악은 집요하고 질기며 다른 이들의 생명을 해치는데 거침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까지도 죽이려 든다. 죽어간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한없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못된 이들에게 회개의 은총을 베풀어주시도록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