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울/지혜 혜慧’라는 글자는 위에서부터 차례로 모양을 살펴보면 땅에서 싹이 올라오는 모습의 상형인 ‘풀 초艸’, ‘또/손 우又’, ‘마음 心’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丰丰는 갈대나 싸리 같은 것을 한데 모아 묶은 형상이어서 이것이 ‘풀 초艸’이고, ‘또/손 우又’은 다섯 개의 손가락이 달린 손을 간략하게 서양의 포크나 삼지창처럼 표현하여 옆으로 눕혀놓은 것인데, 이렇게 만들어진 ‘살 별 수/세/혜彗’가 소릿값이 되어 뜻에 해당하는 ‘마음 심心’ 위에 올라앉아 있는 글자가 바로 ‘슬기로울/지혜 혜慧’이다. 그런데 ‘살 별 수/세/혜彗’에서 ‘살 별’, 혹은 ‘빗자루 별’, 혹은 ‘길쓸 별’ 등으로 불리는 별이 바로 ‘혜성彗星’이다. 혜성이라는 별을 빗자루 별이나 길쓸 별로 불렀지만 이를 ‘살 별’이라고도 불렀다는 것은 왜 그런지 국립국어원은 어원을 시원스레 밝혀주지 않는다. 길을 쓰는 데에 빗자루 자국이 있듯이 밤하늘에서 시작은 별이지만, 빗자루처럼 생긴 긴 꼬리 자국을 끌며 운행하는 별이 혜성이다. 갈대나 싸리 같은 것을 묶어서 손에 들고 길이나 마당을 쓰는 것이 빗자루이고 그 모양을 본떠 ‘혜彗’가 만들어졌으므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슬기로울/지혜 혜慧’는 빗자루(彗)가 마음(心) 위에 올려져 있으므로 빗자루로 정갈하게 마음을 쓸어내어 정돈한다는 의미, 혹은 지혜는 마음공부를 바탕으로 우러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아 바른 앎, 깨달음, 현명, 통찰력, 총명, 슬기로움, 영리함이라는 뜻으로 혜안慧眼, 지혜智慧, 지혜知慧 하는 등의 말에 쓰인다.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것 같지만, 지혜知慧(알 지)는 무엇이고 지혜智慧(슬기 지)는 무엇일까가 궁금해진다. 전자는 단순히 알고 깨우쳐서 헤아리는 슬기로움이고, 후자는 ‘날 일日’이 붙어 있으니 매일매일 알고 깨우치는 슬기로움인지, 아니면 매일매일의 수련으로 누적된 노숙한 슬기로움인지… 그러고 보면 후자인 지혜智慧가 지혜知慧보다는 애들 말로 조금 더 ‘있어’ 보인다. 이렇든 저렇든 ‘슬기로울/지혜 혜慧’는 빗자루도 빗자루이지만 ‘마음 심心’과 어우러져 만들어진 글자이므로 뜻이 깊다.
마음은 생각의 원천이고 감정의 발원지이며, 도덕적 결정이 내려지는 자리요 성품이 결정되는 자리로서 인간의 중심이고 나아가 우주의 기운을 만나는 텃밭이다. 그런데 그 마음은 내 안에 있는듯하다가도 자유분방하여 어느새 나의 밖에 있으니 붙잡고 있어야 하고, 나도 모르게 내가 놓아버리니 되찾아와야 하며, 원래 선하였을지라도 자칫 사악한 것들이 꾀어 비뚤어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니 정성을 다해 보살펴야 한다. 맹자께서 공자님의 말씀이라며 전해준 바에 따르면, 『공자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잘 가꾸고 조절하면 존속하지만, 버리고 방치하면 없어지고 만다. 출입에 일정한 때가 없으며 그것이 어디로 향할지도 잘 모르겠다.’ 이 공자님의 말씀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겠는가?(孔子 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김용옥, 맹자, 고자告子 상上, 6a-8)』라고 한다. 이것이 배움의 길이고 깨우침의 길이며 슬기로움이고 ‘지혜’이다. 그런데,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되지 않는 것이 있으며, 사악한 것들의 꼬드김은 교묘하여 인간의 마음을 속이기 쉬우니, 겸손하게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고 더하기 위해 무릎 꿇어 기도하며, 하느님 앞에서 매일 마음을 성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인은 “잠자리에서 죄를 꾸미고 좋지 않은 길에 서서 악을 물리치지 않는”(시편 36,5) 더러워지고 나쁜 마음을 끊임없이 경계하며,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시편 51,4)” 한다.(20190419 *이미지-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