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영광이 시나이산에 자리 잡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덮었다. 이렛날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다.”(탈출 24,16)라는 기록이 담긴 탈출기 24장은 거룩한 변모 이야기를 해석하는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1. 세 제자
이 세 사람을 올리브 동산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참조. 마르 14,33)
거룩한 변모와 올리브 동산에서 번민 중에 기도드리는 장면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다.
모세도 산에 오를 때 아론과 나답, 그리고 아비후 세 사람을 데리고 올라갔다. 물론 일흔 명의 원로들도 함께 데리고 갔다.
2. 높은 산
산상설교를 하시던 곳도, 예수께서 밤새워 기도하시던 곳도 산이다. 산은 이렇게 하느님을 특별히 가까이 모실 수 있는 장소였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일생에서 등장하는 산들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곧, 유혹을 당했던 산, 산상설교로 복음을 선포하던 산, 기도를 드리던 산, 거룩한 변모의 산, 마지막 고뇌의 밤을 지새웠던 올리브 동산, 십자가에 매달렸던 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주님으로서 악마의 힘을 빌려 세계를 지배하라는 제안을 거부하고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8) 하고 선언했던 산이다. 그 배경에는 시나이 산, 호렙 산, 그리고 모리야 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계시의 산이다. 이 산들은 계시의 산이지만 동시에 고난의 산이기도 하고, 또 나름대로 각기 예루살렘 성전이 서 있던 산을 예시하기도 한다. 이 산에서는 계시가 전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산들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맨 먼저 그 배경이 되는 산에 대한 일반적인 상징성을 떠올리게 된다. 산은 오르는 곳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오른다는 뜻뿐 아니라 내면적으로 오르는 곳이라는 뜻도 있다. 산은 일상의 집에서 벗어나는 곳이자 자연의 신선하고 맑은 공기를 숨 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광활한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을 둘러볼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하고, 창조주 하느님을 직관할 수 있는 감성을 일깨워 하느님을 감지할 수 있게 하는 내면적 산마루터기를 제공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모든 체험에 더하여 산에는 하느님 말씀의 체험이 있고 이사악의 제헌, 곧 어린양의 제사를 정점으로 하는 수난 체험이 있다. 이 수난 체험은 골고타에서 희생되신 마지막 어린양을 예시한다. 모세와 엘리야는 산 위에서 하느님 계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이 두 사람은 하느님의 계시 자체이신 분과 대화를 나눈다.
3. 해처럼 빛나는 얼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루카 9,29) 그러니까 거룩한 변모는 기도 중에 일어난 사건이다. 아버지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는 동안 일어난 일이 눈에 보이게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의 존재와 하느님의 서로 사무치는 내적인 교류가 더할 수 없이 순순한 빛이 되어 나타났다. 예수님께서 빛에서 나신 빛이신 것은 아버지 하느님과 나누는 존재의 일치에서 비롯한다. … 하느님 빛 안에 있는 예수,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고유한 빛이신 예수님이다.
모세와 연관이 있으면서도 그의 모습과 다른 차이가 눈에 띄게 나타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때 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는 동안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참조. 탈출 34, 29-35) 모세는 밖에서부터 그에게 이르게 된 광채에 비쳐 빛나고 있었다.
4. 빛처럼 하얀 옷
거룩한 변모 때 하얗게 빛나는 예수님의 옷은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묵시 문학에서 흰옷은 하늘에 있는 존재, 곧 천사들과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들이 입는 옷이다. 그래서 요한묵시록에서도 구원받은 이들이 입게 될 흰옷 이야기를 한다.(특히 7,9.13;19,14) 그러나 요한묵시록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준다. 선택된 이들의 옷이 흰 것은 그들이 자기 옷을 어린양의 피로 빨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7,14 참조) 다시 말해 그들은 세례를 통해 예수의 수난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분의 수난이 우리를 깨끗하게 정화하여 우리가 본래부터 입고 있다가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옷을 되돌려준다.(루카 15,22 참조) 우리는 세례를 통해 예수님과 함게 빛을 옷삼아 입게 되었고 우리 스스로 빛이 되었다.
5. 모세와 엘리야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부활하신 분이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밝혀주실 내용이 여기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시現示로 나타난다. 율법과 예언자들이 예수와 말씀을 나누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루카 9,31)에 따를 때 그들이 나누던 대화의 주제는 십자가다. 하지만 이 십자가를 포괄적으로 이해하여 예수님의 탈출이라고 표현했고, 그 일이 일어날 곳은 예루살렘이어야 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탈출’이다. 다시 말해 ‘이승을 떠나신다’는 뜻이다. 그것은 수난이라는 ‘홍해’를 건너 ‘탈출exodus’하는 일이고 영광으로 넘어가는 일이다. 그러나 그 영광에는 그분의 상흔이 언제까지나 아로새겨진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율법과 예언자들의 기본 주제는 ‘이스라엘의 희망’ 곧 확실한 해방을 가져다줄 ‘탈출’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진다. 동시에 이 희망의 내용은 다름 아닌 고난을 당하는 사람의 아들이요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도 밝혀진다. 사람의 아들이요 주님의 종이신 분은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자유의 새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신다. 모세와 엘리야도 모두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요 고난의 증인들이다. 이 두 사람이 생전에 했던 이야기, 곧 예수의 수난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거룩하게 변모되신 분과 나누는 것이다.
6. 구름
“이윽고 구름이 일어 그들을 감쌌는데, 그 구름에서 이런 소리가 울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거룩한 구름, 곧 ‘셰키나shekinah’는 하느님 현존의 표징이다. 계시의 장막에 내려앉은 구름은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 주었다.
예수님은 거룩한 장막이다. 그래서 그 위를 하느님 현존의 구름이 뒤덮고 있었고 그분의 장막으로부터 다른 이들도 ‘감쌌던’ 것이다. … 그때 아버지 하느님께서 직접 구름으로부터 예수를 당신의 아드님으로 선포하셨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나는 너를 어여삐 여겼노라.”(마르 1,11)
7. 하느님의 말씀
장엄한 친자親子 선언에 이어 이에 못지않은 명령이 추가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여기서 거룩한 변모 이야기의 배경으로 보았던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오르는 장면과의 연관성을 볼 수 있다. 모세는 그 산에서 토라, 다시 말해 하느님이 지시하는 말씀을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예수님을 두고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게제H. Gese는 이 장면을 매우 적절하게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예수는 하느님 계시의 말씀 자체가 되었다. 복음서들은 이것을 이보다 더 명료하고 더 강력하게 묘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는 토라 자체다.”(Zur biblischen Theologie, 81쪽)
발현은 이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발현의 깊은 의미는 이 한 마디로 훌륭하게 요약되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들은 앞으로 계속해서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이 내용은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쓴 <나자렛 예수>(박상래 옮김, 바오로딸, 2012년) 예수님의 변모 장면을 서술하는 1권 447-463쪽에서 부분 발췌하여 기억하기 쉬운 7꼭지로 제목을 붙여 정리한 것이다. 모든 문장은 책에서 그대로 옮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