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8)

성 아우구스티누스, by Philippe de Champaigne, 1650, 플레미쉬 화가이다. 자신의 방에서 집필하고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이다. 한 손에는 깃털 펜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불타는 심장을 들고 있다. 하느님을 향해 불타오르는 심장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왼쪽 상단 구석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veritas(진리)’라는 글귀가 보인다.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in California 소장이다.

3528. (애욕은 지옥과 같다. 끈끈이가 있어 저 심연으로 끌어 내리며 하늘로 날아오를 깃털을 갖추지 못했다.-Enarrationes in Psalmos 140,1)

3529. 쇠사슬이 된 제 의지에 묶인 채였습니다.(악에 동의하고 끌려가는 의지를 ‘쇠로 엮어진 제 의지에 묶인 몸legatus mea ferrea voluntate’이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부각시킨다) 원의는 제 것인데도 원수가 손에 넣고서는 그것으로 저한테 사슬을 만들어 저를 결박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거꾸로 뒤집힌 의지에서 육욕이 생겼고, 육욕을 섬기는 가운데 관습이 생겼고, 관습에 저항하지 않다 보니 필연이 되고 말았습니다.(‘습관’으로 번역되는 consuetudo가 로마 사회에서는 ‘동서생활’을 가리키는 은어였으므로 ‘여자와 동서생할을 하게 되었고, 동서생활을 꺼리지 않다 보니 육욕은 제게 필연이 되고 말았습니다’라는 이중 의미도 담고 있다)…모진 종살이가 저를 단단히 붙들어 두었습니다.(모진 종살이dura servitus와 달리 은총에 따라서 필연이 아니고 사랑이 종살이하는 경우에는 자유로운 종살이libera servitus라고 하겠다)(8-5.10)

3530. 저는 그야말로 저의 몸에서 경험하면서 깨닫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어느 편에나 있었지만(교부는 욕정을 선택하는 결정은 육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자유의지가 작용하는 영의 영역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하였다. ‘영도 선이고 육도 선이고 두 요소로 이루어진 인간도 선이다. 다만 가변적인 선일 따름이다.’-De Continentia 8,18)…갈수록 악착스럽게 저를 거스르는 습관은 어디까지나 제가 만든 것이니 비록 제가 싫은 곳에 다다랐지만 좋아서 다다른 까닭입니다.(악행이 거듭되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악행을 더 쉽게 저지르는 윤리적 악순환의 실존적 체험을 고백하는 중이다)(8-5.11)

3531. 저는 속세의 짐에, 마치 꿈결처럼 달콤하게 짓눌려 있었습니다.…일어날 시간이 닥쳐옴에도 마지못한 척 졸음이 사람을 기분 좋게 사로잡는 법입니다. 저도 제 자신을 정욕에 밀리기보다는 당신의 사랑에 밀리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은 했습니다.(‘나는 사랑이란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을 그리고 하느님 때문에 이웃을 향유하려는 정신의 움직임이고 정욕이란 하느님 때문이 아닌 동기에서 자신과 이웃과 무슨 물체든 향유하려는 정신의 움직임이라고 정의한다.’-그리스도교 교양 3,10,16)…기껏 한다는 소리가 잠꼬대처럼 느릿한 말로 ‘금방’, ‘예, 금방’, ‘조금만 놔두십시오’ 였습니다.(‘저에게 순결과 절제를 주소서. 그러나 금방은 말고sed noli modo.’와 더불어 솔직한 글귀로 꼽힌다) 하지만 그놈의 ‘금방 또 금방’은 아예 대중이 없었고 ‘조금만 놔두십시오’는 오래도 갔습니다.(8-5.12)

3532. 언어능력이라는 것을 마치 사람이 가르쳐서 제공할 수라도 있다는 듯이(언어라는 ‘기호’는 상대방이 갖춘 언어체계에서 이미 파악하고 있던 ‘의미’를 상기시킬 따름,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언어철학을 개진한다. 언어 기호에 의해서 대상과의 의미 연관 곧 진리를 간파함은 하느님의 ‘말씀’이고 우리 내면의 ‘스승’인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이다) 제가 말재간을 팔아먹고 있던 것처럼…이 세상의 풍조대로 거물들에게 알려지기를 삼가고 그런 번거로움에서 오는 정신적 불안을 일체 피하였습니다. 자유로운 정신을 보전하고 싶어 했고, 뭔가를 탐구하거나 책을 읽거나 지혜에 관해서 듣는데 되도록 많은 시간 여유를 할애하고 싶어 했습니다.(“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1요한 2,16을 극복한 경지)(8-6.13)

3533. 폰티키아누스가 해주던 얘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그가 얘기하는 사이사이에 저를 제 앞에 돌이켜 마주 세우셨습니다. 제가 저를 주의 깊게 살피기 싫어서 지금까지 저를 제 등 뒤에다 놓아두었는데 당신은 저를 제 등에서 떼네어 제 얼굴 앞에다 마주 세워 놓으셨습니다. 제가 얼마나 추한지, 얼마나 비뚤어지고 더러운지, 얼마나 때 묻고 종기투성이인지를 정면으로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저를 보고 제가 소스라쳤는데 저 자신을 피해 어디로 가고 싶었으나 도망갈 곳이 없었습니다. 또 제가 저한테서 시선을 돌리려고 아무리 애써도, 그 사람은 하던 이야기를 여전히 계속하고 있었고, 또 당신께서는 여전히 저한테 저를 마주 세워놓고 계셨으며, 제 눈앞으로 저를 떠밀고 계셨습니다. 저더러 제 사악함에 눈 뜨고 미워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알았으면서도 모른 체했고 억눌렸고 잊어버리려 했습니다.(8-7.16)

※ 총 13권 278장으로 이루어진 <고백록>을 권위 있게 맨 먼저 우리말로 소개해주신 분은 최민순 신부님으로서 1965년에 바오로딸을 통해서였다. 여기서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Confessiones, 성염 역, 경세원, 2016년>을 따랐다. 각 문단의 앞머리 번호는 원문에 없는 개인의 분류 번호이니 독자들은 괘념치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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