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그은 한 획에 세로로 한 획을 더하면 열 ‘십十’이 된다. ‘열 십十’은 공손하게 절할 때처럼 두 손을 포갠 모양이기도 하고, 길게 된 줄에 한 매듭을 짓고 그 매듭이 가로로 커져서 생긴 모양이기도 하다. ‘열 십’은 십진법에서 더 나아갈 수 없는 완성의 숫자이다. 십년공부十年工夫, 십년지계十年之計, 십시일반十匙一飯, 십중팔구十中八九 등의 쉬운 한자성어 몇 개만 보아도 ‘십’의 존재감은 금방 짐작이 가능하다. 물론 성경의 십계명十誡命도 있고 십자가十字架가 있다. 그런가 하면 후한後漢) 영제靈帝(재위 168~189년) 때의 내시들 사조직으로서 전횡을 일삼다가 결국 국가를 무너지게 하고 삼국지의 시대를 초래하고 말았던 ‘십상시十常侍’도 있다.
‘열 십’이 세 개 모여서 만들어진 글자가 ‘세상 세世’이다. 완성의 숫자 ‘열’이 세 개나 모였으니 그 의미는 자못 심장深藏하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아우르는 ‘석 삼三’이 모두 들어있어서 세상을 이룬다.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대世代’는 30년 쯤으로 구분이 된다. 아버지가 30의 두 배인 육십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비로소 준비기 30년과 실행기 30년을 살아 회갑回甲 인생으로 한 순배를 마치고, 그때쯤 아버지 다음 세대인 자손은 30이 되어 자신의 다음 세대이자 아버지에게는 차차세대次次世代가 되는 손주를 아버님 품에 안겨드림으로써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곧 부자손父子孫 삼대三代가 완성된다. 예수님도 그래서 지상 생활을 30년 쯤 하신 뒤에 공생활公生活 30년을 3년으로 압축해서 사셨던 것일까?
공자님 말씀대로 회갑인 ‘이순耳順’을 넘어서면 준비기 30과 실행기 30년을 살아 비로소 ‘인생면허기’로서 마음 가는 대로 어디나 갈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70세의 ‘종심從心’, 80세의 ‘산수傘壽’를 거쳐 인생 졸업장을 얘기할 수 있는 ‘졸수卒壽’에 이른다. ‘졸수’는 30의 3배수인 90이다. 공자도 당시 70이면 이미 장수 측에 들었을 시기이고 70은 넘었으나 80에는 이르지 못했으니 80 이후를 언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뒷사람들이 ‘산수’의 산傘이나 ‘졸수’의 졸卒 모두 여덟 팔八(산傘의 약어는 여덟 팔八 밑에 열 십十을 더하여 이루어진다) 밑에, 그리고 ‘아홉 구九’(졸卒의 약어는 아홉 구九 밑에 열 십十을 더하여 이루어진다) 밑에 ‘열 십十’을 받쳐서 불렀으니, 맨 처음으로 돌아가 ‘열 십十’이 다시금 그 무게를 찾는다.(20161127 *이미지-구글)
공자님 말씀이 이렇게 수학적으로 아름다울 일입니까?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