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수도자, 사제, 성직자, 사목자라는 사람들이 나이는 먹었지만, 어른도 아닐뿐더러 성숙하지도 않은 어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런 이들이 많다는 것만큼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한 상태로 끌어내리려는 세상의 유혹이나 세력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꼭 세상 탓만일까?
많은 사제나 수도자가 하느님만 나를 알아주시면 그만이라고 하면서도 주변의 인정이나 평가, 장상의 눈에 들려고 급급하고,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준다면서도 깊은 내적 황폐함을 겪으며, 치유와 애정을 나눠준다면서도 스스로는 거짓된 애정에 대한 욕구로 메말라있고, 가진 것이 자신의 알몸뚱이밖에 없는 거지처럼 과도하다 못해 극단적인 건강 염려증으로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가족과 우정, 공동체 생활의 아름다움을 설교하면서도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빈 동굴 같은 처소의 방문 안에 숨고, 사람들의 이마에 세례의 물을 붓거나 새로운 공동체를 찾는 이에게 생명의 빵을 나누어주고 치유를 원하는 이에게 병자성사의 기름을 바르면서도 자신은 정작 뭔가에 허덕이며, 병든 마음과 각박함 속에서 매일 매일을 살고, 불안과 초조에 싸여 어찌할 바를 모른 채로 그저 세월만 죽이거나 엉뚱한 것에 매달려 나뭇가지에 앉은 베짱이처럼 제가 좋아하는 노래나 흥얼대며 도피하기도 한다. 아니면 이도저도 아니게 모든 것을 나 몰라라 외면하며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수동적으로만 산다.
이 모든 것은 본질에서 나 자신이 하느님의 가장 사랑받는 존재라는 신분을 망각하였음에서 비롯된다. 하느님께서는 논쟁, 싸움, 의심, 망설임,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우스꽝스러운 짓, 냉소와 비아냥, 변명이나 핑계를 그만두라 하신다. 하느님과 함께 자신의 가장 은밀한 존재의 중심으로 내려가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깨우치라 하신다. 바로 내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요,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이며, 성령 하느님의 궁전임을 발견하라 하신다.(20160108 *이미지-영문 구글)
‘수도자, 사제, 성직자, 사목자’에 대해
사실적으로 표현하신 신부님.
신부님께서 표현하신 ‘사실’에 대해
들을 귀가 없다는 ‘사실’이 더 슬프네요.
어떤 한 특정한 공동체만이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이런 한 사회 병패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