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차별화, 곧 다른 이와 뭔가 차이 나고 다름에서 오는 기쁨이요 희열이며, 둘째는 연대감과 일체감, 곧 다른 이와 나도 같다는 느낌에서 오는 기쁨이요 희열이다. 세 번째 기쁨은 성령과 은총이 허락하시는 위로부터 오는 선물의 기쁨이다.
차별화에서 오는 기쁨은 남들보다 잘났다는 기쁨이다. 영웅과 스타가 되는 데서 오는 기쁨 같은 것이다. 경기에서 이겼다거나 어떤 직위나 어떤 위치에 뽑혔다든가 하는 그런 기쁨이다. 이런 기쁨은 만들어진 것이고, 달성된 것이며, 이루어진 것, 누군가와 차이가 난 것에 대해 인정받게 된 경우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기쁨을 갈구하고 원한다. 성경에서는 이런 기쁨을 두고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이들과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루카 18,11-12)라고 표현한다.
연대감에서 오는 기쁨은 묘사하기 어려워도 발견하기는 더 쉽고, 느끼기에는 더 쉬운 그런 기쁨이다. 이는 다른 사람과 한 형제요 자매라고 느끼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 나이나 피부색, 종교적 이념을 뛰어넘어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과 내가 하나라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다. 어깨동무하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기쁨이다.
다른 이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고, 나 역시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미소와 눈물이 나의 미소와 눈물이 될 때 느끼는 희열이고, 그들의 기도와 소망이 나의 소망과 기도가 될 때, 그들의 고통과 번뇌가 나의 고통과 번뇌가 되어 모두 하나 되는 기쁨이요, 희열이다. 그렇지만 이 기쁨에 취하다가는 자칫 이기적인 폐쇄 집단의 자위自慰에 그칠 수도 있는 위험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 번째 기쁨인 위로부터 오는 기쁨으로 나아간다.
위로부터 오는 기쁨은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에서 오는 기쁨으로 성령의 열매로 얻는 기쁨이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아주 다르다. 만들어진 기쁨이 아니고 구매할 수 있는 기쁨도 아니며, 쟁취할 수 있거나 조작된 기쁨은 더더욱 아니다. 이러한 기쁨은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뽑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속한 이들이 아니어서,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끼거나 미움을 받는다고 느끼는 체험(참조. 요한 15,19)으로 확인된다. 이 기쁨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한다. 고통과 슬픔으로 울고 있어도 충만함을 누리는 참 평화 안에 있는 이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결코 빼앗아갈 수 없는 기쁨이다. 하느님의 선물인 충만한 이 기쁨은 기도하는 삶, 말씀을 묵상하는 삶, 성사를 거행하는 삶,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 참 그리스도인은 과연 기쁨의 사람이다.(20160125 *이미지-영문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