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이라는 개념은 이 세상과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개념이다. 게으름은 얼핏 보기에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그저 무기력한 무관심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에게 뭔가 얘기를 하려고 할 때 무척 어렵고 아예 불가능하게까지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많은 경우에 게으른 사람을 만난 탓이다. 게으른 사람들은 아름다운 생각, 기막힌 구상, 고무적인 전망…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고, 또한 추한 말, 혐오스러운 생각, 파괴적인 대안에 대해서조차도 아무런 대꾸조차 하기 싫어한다. 어쩌면 그가 자기만의 생각에 취해있거나 자기 좋은 것만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공동체 생활을 한다고 서원까지 한 사람이 그렇게 입을 앙다물고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을 때는 난감하다. 거룩한 침묵이나 과묵함은 눈치나 살피는 묵묵부답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에블린 와프Evelyn Waugh(1903~1966년)는 게으름이야말로 현대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요 죄악이라고까지 했다. 게으름이야말로 정작 중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져 버린 이 망가진 세대의 죄악이라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목자의 소명은 바로 이 게으름이라는 수렁에 빠진 사람들을 일깨워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으로 가꾸어 가는 것에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얼마 전 수도자들의 장상 모임에서는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활력을 잃은 형제나 자매를 어떻게 고무하고 부추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토론 주제였다고 들었다. 그런 책임을 맡은 이들은 미지근한 것보다는 차라리 뜨거운 쪽에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소명 때문에 어떨 때 너무 떠벌리고, 실없는 소리를 해대며 흥분하고 과장하며 너스레를 떨어야 하기도 한다.
주님께서는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내겠다.”(묵시 3,16) 하신다. 게으름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세월이 가고 장상이 바뀌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 뜻으로 게으름은 나이 먹어 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쉽게 찾아오는 유혹이다. 사목자의 처지에서 또 다른 싸움을 위해 전쟁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고, 그저 홀로 조용히 있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빨리 쉬라고 하시지는 않는다. 끝까지, 끝까지 앞으로 최선을 다해 나아가야 한다고 다그치신다.(2016028 *이미지-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