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3,1-15(주님 만찬 성 목요일 ‘가’해)

성체성사, 섬김, 기름부음을 받음

성체성사는 오늘 우리가 거행하는 전례의 실재입니다. 주님께서는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와 함께 머무르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주님을 모셔가는 주님의 감실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몸소 우리가 당신 몸을 먹지 않고 당신 피를 마시지 않으면 우리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빵과 포도주,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우리 속에 계시는 주님의 신비입니다.

섬김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우리 행실의 조건입니다. 섬김은 누구나 해야 하는 행동입니다만 주님께서는 베드로와 나눈 대화에서(요한 13,6-9)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종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종이 되시어 우리를 섬기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섬기는 종이 되시고, 주님께서 나를 씻어주시며, 나를 자라게 하시고, 나를 용서하지 않으시면 나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기름부음 받음은 사제입니다. 저는 오늘 사제들, 교황으로부터 마지막 서품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제와 가까이 있고 싶습니다. 교황이 되었든 주교가 되었든 (신부가 되었든) 우리 모두는 사제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고, 성체성사를 거행하도록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섬기도록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성유 축성 미사가 없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전에 그 미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만, 여의치 않으면 내년으로 넘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미사에서 사제를 기억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사제들은 주님을 위해 생명을 바칩니다. 사제들은 섬기는 이들, 종들입니다. 요 며칠 사이에 이곳 이탈리아에서는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나 의사들, 남녀 간호사들을 보살피느라 60여 사제들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분들은 생명을 바쳐 봉사하다가 돌아가신 ‘이웃의 성인들’입니다. 멀리 계시는 분들도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먼 곳에서 교도소 원목으로서 갇힌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계시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사제께서 이 성주간을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에 관한 현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먼 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견되어 그곳에서 죽어가는 사제들. 어떤 주교님은 선교지에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로 한 일이 그 선교지에서 앞서 목숨을 바친 사제들의 묘소에 갔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앞서 돌아가신 그분들은 아직 젊은 분들이었고, 그 지역의 당시 풍토병에 대해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분들이었기에 돌아가신 것이었습니다. (더더욱) 그분들은 아무도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익명의 사제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산골짜기에 있는 대여섯 명의 신자들을 찾아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자기들만이 아는 신자들을 찾아다니는 사제들이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사제가 자기가 돌아다니는 공소의 모든 신자 이름을 일일이 다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정말?’ 하고 물으니 그분은 ‘물론이죠. 신자들뿐만 아니라 개들 이름도 다 알아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신자를 알고 신자들도 모두 아는 사제, 모두의 곁에 있는 사제, 참으로 훌륭한 사제들입니다.

저는 오늘 제 마음에 모든 사제를 품고 제단에 나아갑니다. 욕먹는 사제, 오늘날 못된 행실이 들통나서 험한 말을 듣고 손가락질을 받기 때문에 길에 나서지 못하는 사제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함께 다니면 욕을 먹기 때문에 사제들과 함께 다닐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죄인인 사제들, 주교들과 교황에 이르기까지 용서하는 법을 배워가면서 용서를 청합니다. 모두가 용서하고 용서 청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위기를 맞아 고통받는 사제, 암울한 처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사제들…

오늘 여러분 형제 사제들, 축성된 이들 모두 저와 함께 제대에 오릅시다. 여러분들에게 베드로처럼 고집부리지만 말라고 단 한 가지만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의 종이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발을 씻겨주시도록 내어놓으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발을 씻어주시기 위해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그렇게 씻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의식하고 큰 용서를 받는 자들이 되십시오. 그리고 용서하십시오. 용서하는 담대한 마음, 그 (그릇의) 크기가 우리가 되어 받을 크기입니다. 용서하는 만큼 똑같은 크기로 용서받을 것입니다. 용서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거기에 모든 이를 위한 용서가 있습니다. 용서하고 위로하는 데에 용기를 내고 위험을 무릅쓰십시오. 그때그때 성사로 용서를 베풀 수가 없다면 동행(동반)하는 형제적 위로로라도 베푸십시오. 그리고 그가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으십시오.

사제직의 은총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모두 감사합시다. 여러분 사제들을 위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주님께 그저 여러분의 발을 씻겨주시라고만 청하십시오.(교황 프란치스코, 2020년 4월 9일, 성 베드로 대성당, 주님 만찬 성 목요일 미사 강론, 이탈리아어에서 번역, 원문 출처/바티칸 공식 사이트*이미지 출처-ilblogdienzobianchi.it)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