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려고 그랬는지 지난겨울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병원 신세를 졌다. 별로 술을 많이 먹고 살았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뱃속에 궤양도 심하고 혹도 하나 생겼다 해서 그것을 치료도 하고 도려내어 버리고 왔다. 사는 곳이 아름답고 깨끗한 이곳 춘천이니 공해 핑계할 것은 없고, 무자식 상팔자고 돈 벌 걱정 아니해도 되니 스트레스받을 일은 더욱 없고, 처자식 없는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처자식 없이 살아 아마도 식생활이 일정치 않았던 탓이라고 굳이 핑계를 대 본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못된 성질머리나 심술보 때문임이 분명하다.
내가 몸이 아프거나 어디가 망가졌다는 것은 주변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번 기회에 주변으로부터 사랑을 참 많이 받았다. 애들하고 사는 사람이라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청소년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하셨던 성인聖人 돈 보스코의 말씀을 다시 떠올리고 내가 과연 사랑받을 만한지 반성도 좀 했다.
봄이 왔다. 봄은 뭐니 뭐니해도 꽃의 계절이다. 봄꽃이라면 진달래, 목련, 벚꽃, 개나리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사랑의 즐거움과 설레임을 담은 진달래는 진하지도 않고 옅지도 않지만, 슬피 우는 두견새의 울음 한 번에 꽃 한 송이씩을 피운다고도 하니 슬픈 꽃이다. 목련 역시 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죽음으로 마감했던 바다지기와의 사랑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자목련, 백목련 둘 다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외로운 꽃이다. 벚꽃은 일본 국화라서인지 보기 좋으면서도 괜스레 한편에 미운털이 박힌 것만 같은 꽃이다. 그래도 원산지가 제주도라고 하니까 ‘절세의 미인’이라는 꽃말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이곳저곳 어디에서나 또 아무렇게나 격식 없이 피어서인지, 아니면 이름 첫 자에 ‘개’ 자가 붙어서인지 ‘나리나리 개나리’는 그 연유나 사연을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예로부터 희망의 꽃인 개나리꽃으로 술을 담가 여성들의 미용과 건강을 도왔다 하니 소박하지만 기특한 꽃이다. 나로서는 건너편 여성들의 술이라 내버려 두지만,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살짝 한 번 먹어볼까 싶다. 주로 남쪽에 피는 동백은 나무에서 한번 피고, 꽃이 툭 떨어져 땅에서 또 한번 피고, 마음에도 한 번 핀다니 세 번 피고 괜스레 너무 붉어 아픈 꽃이다.
꽃들은 작년의 꽃 모두 그대로 인 것 같고, 옆에 흐르는 강물도 어제의 강물 그대로인 것 같은데, 나만 그대로가 아닌 것 같아서 이상한 기분이 드는 올봄이다. 봄꽃들 역시 참 이상하다. 꽃들이 먼저 요란하게 피고 진 뒤에 잎들이 무성해진다. 그리고는 녹색의 여름을 시작한다. 잎들이 한참 먼저 있었다가 꽃대가 나와 어려운 듯 꽃 한 송이를 피워내야 순리일 것 같고 논리적일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어쩌면 봄꽃들은 이것저것 차곡차곡 되짚어보고 돌아서서 마음의 정리를 채 끝내기도 전에 불쑥 누군가로부터 부담스럽게 받아든 큰 선물 같다. 그런 뜻으로 봄꽃을 만나는 나 같은 신부는 회개悔改의 잎이 나기도 전에 은총의 꽃이 먼저 피어버린 것 같아서 자꾸만 한 쪽에 이 봄이 부담스러워지는 부분이 있다.(2001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