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 ‘가’해(마태 14,22-33)

오늘 말씀의 전례는 인간의 두려움과 그 두려움 앞에 다가오시는 주님의 예상치 못한 현존,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놓칠 수 없는 주님의 사랑, 그 주님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하나로 보여준다.

1독서(1열왕 19,9ㄱ.11-13ㄱ): 기원전 9세기의 엘리야는 바알 예언자들을 상대로 갈멜 산에서 승리한 이후 오히려 죽음의 위협을 맞고, 광야로 도망쳐 동굴에 숨는다. 극도의 탈진과 두려움 속에서 그는 하느님을 기다리지만, 하느님은 강한 바람이나 지진, 불 같은 극적인 기대와 달리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가운데에서 당신을 드러내신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예언자는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선다.

2독서(로마 9,1-5): 바오로 사도 역시 깊은 내적 고통을 토로한다. 그는 자신의 동포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차라리 내가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절망에 가까운 슬픔을 겪는다. 그러나 이 고백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앞선 로마서 8장의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선언 위에 서 있는 고백이다

복음(마태 14,22-33):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가 밤바다에서 거센 바람과 파도에 시달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가시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이라며 더 두려워한다. 예수님께서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는 물 위를 걷다가 주님이 아닌 거친 파도에 눈이 가면서 두려움에 빠져 가라앉는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 주신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멈춘다. 두려움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시선을 왜곡하며, 현실을 변형시키고, 위협받는 느낌을 과대평가하며, 문제를 키운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 온갖 두려움이 멈춘다.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 엎드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주님을 고백한다. 인간의 두려움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지만, 믿음은 그분의 손을 붙잡게 한다.

고통받는 이의 위로자이신 성모님, 세상살이의 고통 중에서도 주님이신 당신 아드님을 결코 떠나지 않도록 저희를 도와주소서. 아멘!

***

  • 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디로 건너가고 있는가, 또 우리 공동체는 어디에서 어디로 건너가고 있는가?
  • 나의 믿음을 위협하고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 나는 인간적인 두려움 속에서 주님을 ‘유령’처럼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 두려움 중에 나에게 조용히 다가오시는 주님을 체험한 적이 있는가?
  • 주님을 믿는 믿음 중에서도 의심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는가, 그 의심의 원인은 무엇인가?
  •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는가?

연중 제19주일 2023 / 망설임 없이(성 샤를 드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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