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은 감사해야 할,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을, 그런 은혜로운 순간들이고, 또 한 편에서는 잊어버려야 할, 아니 어쩌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잊어버리고 싶어지는,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법한 체험의 시간들이다.
감사하며 은혜 속에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과거, 좋았던 순간만큼이나 나빴던 순간, 그리고 기뻤던 때만큼이나 슬펐던 때까지도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현재의 이 자리에 우리를 있게 했던 지나온 모든 순간을 우리는 하느님의 인도하심이라 이름 지어야 한다.
그렇다고 지나온 과거가 그런대로 괜찮았었다고 자위하자는 말은 아니다. 또 그저 잊어버리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현존을 벗어나 이루어진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지난날과의 용서요 화해를 뜻한다.
이처럼 우리의 지나온 순간들을 은총의 빛 안에 옮겨놓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다. 심지어는 부끄럽고 죄스러웠던,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법한 일들까지도 하느님의 눈으로 보겠다고 결심하고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다.
하느님의 자비를 더욱 깊이 깨닫고,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이란 것이 하느님께 연결되어 진 것임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과정을 살아야 하는 일인 것이다.(201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