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을 위한 돈 보스코 교육의 여섯 가지 생각
돈 보스코의 교육에 바탕을 두어 청소년들에게 곧잘 문제가 될 수 있는 여섯 가지 상황에 관해 돈 보스코라면 어떻게 했을까?
1월 31일은 성 요한 보스코의 천상 탄일을 기념하는 날로서 살레시오회에서는 창립자의 축일로서 가장 성대한 축제의 날이다. 돈 보스코라고 불리기도 하는 그는 가난하고 버림받거나 위험에 처한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스승이며 친구로 평생을 살았다. 사제이며 저술가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들을 위해 수도회를 창립했던 돈 보스코는 교회 안에서 수도회를 설립해야 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수도회를 설립하여 청소년들과 살았던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과 함께 살다 보니 그들을 위한 수도회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함께 살고 있던 청소년들과 함께 수도회를 설립해 나갔던 독특한 과정을 살았다. 청소년들과 함께 살면서 영글어갔으며 청소년들이 보람차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염원했던 돈 보스코의 지혜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도 진주처럼 빛나는 보석이다.
1) 공격성
청소년기는 성장 과정에서 질풍노도와 같은 격정기이고 이성보다는 감성이 우선하는 시기이며 ‘욱’하는 시기이다. 공부를 하거나 게임을 하다가, 혹은 친구와 대화를 하거나 지나치다가도 등등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사 안에서 되돌아 생각해 보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고 별일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랬나 싶을 만큼 쉽게 토라지고 흥분하며 서로 싸우기도 하는 청소년기이다. 내면에서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공격성이나 예민함은 다루기가 참 어려운 것이지만 “주먹이 아니라 말로!”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뇔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불같은 성격을 지녔던 돈 보스코도 사용했던 말이다. “주먹”이라는 단어 대신에 다른 단어를 대치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며 같은 형식의 문장을 자기에 맞게 만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예. 흥분이 아니라 차분함으로!)
2) 학교생활
학교생활은 대부분 청소년이 당연하듯 받아들여야 하는 일상이다. 가정은 여러 이유로 학교에 자녀 양육의 책임을 위탁하고 학교는 국가의 제도 안에서 대규모 집단 교육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그 안에서 자칫하면 청소년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고유성이 희생될 수 있다. 어떤 아이는 수학이 재미있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수학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난수표일 수도 있다. 어떤 아이에게는 음악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지만 음치인 어떤 아이에게는 다른 아이들 앞에서 우스개가 되는 시간일 수도 있다. 학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러한 나만의 고유성을 식별하고 발견해가는 과정으로서만 기능할 때 정당하다. 소수의 정예 시민을 걸러내기 위한 깔때기가 되며 ‘보편’이라는 기준 아래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경쟁의 마당이 되거나 스펙 쌓기의 장이 될 때 교육은 재앙이다. 학교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이지 목표 자체가 아니다.
3)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기
청소년기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고 행동에 뒤따르는 후회의 생각 속에 체험을 쌓아간다. 그 과정에서 항상 옳은 일을 하기가 어렵고, 옳은 일이 정말 무엇일까를 아는 것도 참 어렵다. 청소년뿐 아니라 누구나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생각하기 위해 지혜를 청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 “침 뱉은 우물 다시 먹는다.” “한 시를 참으면 백 날이 편하다.” 등등 할머니가 미소 지으며 손주에게 하셨을 법한 우리말의 속담을 경구로 삼는 것은 도움이 된다. 혹은 “찬찬히!”라거나 “한 번 더 생각하기!”를 휴대폰의 앞면이나 뒷면에 장식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생각하여 마음에 담고, 마음에 담아 행동하며, 행동하여 습관이 되게 하며, 그렇게 오래된 습관을 우리는 덕德이라 부른다.
4) 미루기
사람들은 게으름이라는 천성을 타고나는 측면도 있어서 그날그날 해야 할 일을 미루는 타성에 쉽게 젖는다. 미루지 않는 습관은 청소년기로부터 잘 훈련되어야 하고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 미루다 보면 쌓이게 되고 쌓이다 보면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되어 자포자기로 자기 학대를 하거나 엉뚱한 도피로 나아가기도 한다. “주님, 오늘 일이 잘되게 해 주십시오.”(창세 24,12) 하는 말씀처럼 기도하면서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도록 해야 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마술적 성공 공식이 아니며 이에 대해 기계적인 맹신을 해서도 안 되지만, 천재나 영재, 전문가는 타고나지 않으며 많은 경우에 자기 고유성을 발견하여 이를 향한 매일의 작은 시간과 꾸준한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5) 유혹
부적절한 정보에 너무도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사는 것이 오늘날이다. 건전한 호기심은 건강한 추진력이 되지만 그릇된 호기심은 평생을 헤어나지 못할 진창에 빠지게도 한다. 청소년기에 한 번 접한 잘못된 정보는, 특히 성적性的인 자극은 그 자극이 너무도 강해서 그 후유증이 오래가면서 정서적 성장이나 성격 형성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며 미래의 인간관계를 잘못되게 할 수도 있는데, 오늘날 많은 부모나 교육자가 이를 어느 정도 간과하거나 회피하고 묵인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 6,45) 하셨고, “눈은 몸의 등불”(마태 6,22)이라 하셨다. 눈이 마음의 창窓이라 한다. 더럽고 음란한 것을 눈으로 보면 마음에 더럽고 음란한 것이 쌓이며, 마침내 그것이 밖으로 나온다.
6) 강요된 기쁨
청소년들은 때로 선생님이나 부모님, 혹은 누군가를 기쁘게 해야 하고 기대에 부응해야만 한다는 강박증과 부담을 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강박증이나 부담이 훗날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으로 돌아올 때가 많다. 청소년들을 독립된 인격체로서 대하고, 그들이 자기 주도의 자기 성장을 해 나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청소년을 둘러싼 이들의 책임이요 의무이다.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말로 신뢰를 보여 주는 척하면서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과 “나는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라는 말은 아주 다르지만, 똑같이 상대방에 대한 ‘신뢰’의 차원을 담고 있다. 청소년들은 상대방이 진심으로 나를 신뢰하며 존중하는지를 아주 쉽게 간파하는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