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관하여(로마노 과르디니)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1885~1968년)는 이탈리아 태생의 가톨릭 사제, 대학교수, 신학자, 종교철학자, 교육자, 청년운동 지도자, 전례 개혁자로 알려진다. 그의 저서 중에서는 「거룩한 표징」(장익 역, 분도출판사), 「미사, 제대로 드리기」(김영국 역,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삶과 나이 – 완성된 삶을 위하여」(김태완 옮김, 문학과지성사), 「주님의 기도」(가톨릭 출판사, 안소근 역),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요한복음의 고별 담화와 요한 1서의 묵상과 사색」(성서와함께, 김형수 역), 「코모 호숫가에서 보낸 편지」(불휘미디어, 전헌호 역), 「우울한 마음의 의미」(가톨릭대학교출판부, 김진태 역) 등이 우리 말로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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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교육학의 거장인 헤르만 놀Hemana Nohl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육자란 어른들의 이해관계와 관심에 맞서 아이들의 삶의 소망을 대변하고 지켜주는 사람이다.” 그것은 물론 아이들의 본능에 맞서야 하는 과업이기도 합니다. 놀은 이러한 인식에서 아이가 정말로 아이다워질 수 있도록 하는 데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는 그저 놀기만 하면 되고 생활 규율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만 성장의 토대가 되는 이 두 가지 요소, 즉 놀이와 규율이 올바른 비율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죠. 교육자는 아이가 질서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아이가 자신의 충동과 본능에 형식을 부여하는 법을 배우고, 가정과 학교에서 필요한 일들을 하는 법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놀이를 위한 자유로운 공간을 누릴 수 있게 해 주기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놀이라는 짧은 단어에는 매우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보자면 아이다운 자발적이고 즉흥적인 모든 활동이 곧 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놀이란 자기 외부에서 주어지는 어떤 목적에 의해 규정되는 활동이 아니며, 노는 것, 자체에 내재하는 의미와 충동이 놀이의 본질을 이루는 것입니다. 놀이는 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행위로서, 삶의 자유로운 전개를 촉진합니다. 놀이는 상징입니다. 놀이라는 상징은 세계를 해석하고 이로써 삶의 본질을 파악하게 해 줍니다. 또한 놀이는 제의이기도 합니다. 놀이라는 제의 속에서 아이들의 통일적 세계가 실현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강조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더 이상 놀 줄 모르게 된 어른이 여기서 얼마나 많은 것을 망쳐놓는지 모릅니다. 그러한 어른들의 잘못된 목적 만능주의와 좁아터진 합리주의가, 아이들을 유능하게 만들고 일찌감치 직업 준비로 내모는 그들의 욕심이, 그들이 개발한 테크니컬한 장난감들이, 또 그 밖의 많은 것들이 놀이의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자는 아이들의 자발성이 발휘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저 위대한 교육가 마리아 몬테소리가 이룬 필생의 업적은 이에 대한 좋은 사례입니다. 그녀의 뜻에 따라 운영되는 학교를 가본 사람이라면, 아이들 속에 들어 있는 창조성을 끄집어내고 발전시키기 위한 몬테소리의 노력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강제로 훈련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스스로 삶의 동기를 찾고 자신감을 얻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이를 감싸고 있는 보호막이 아주 천천히 느슨해지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아이에게 뒤를 받쳐주는 존재가 있다는 믿음을 주는 동시에 그러한 의존 상태에서 벗어날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핵심적인 윤리적 가치들은 사람들이 “성품”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진실성, 명예심, 신의, 용기, 지조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것은 인격의 근본에 관련된 가치들이지만, 이에 관한 교육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자기 자신을 발견해 가는 청년에게 특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청년은 이 가치의 필요성을 더욱 예민하게 느끼면서도, 여기서 나오는 요구를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격의 핵심 가치가 실현될 때 비로소 진정한 윤리적 인간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라고 할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지금 언급한 가치들은 종종 교육자들 자신에게도 – 특히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을 선택하고 보려는 평범한 교육자들이라면 더더욱 –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가치를 장려하는 대신 아이들에게 그저 착하고 고분고분하며 주어진 규정만 잘 지키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곤 합니다.

인격의 핵심 가치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교육자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교육자의 말이 아니라 그의 존재와 행동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의 존재와 행동에서 일정한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반성적 사고를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분위기를 통해 주위의 영향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교육자의 존재 자체이고, 그다음은 행동이며, 말은 맨 마지막에 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업의 윤리는 그래서 유달리 까다로운 것입니다. 이 과제가 성취되는 정도만큼 사춘기의 위기는 경감됩니다.

사춘기 위기의 어려움은 내면의 동요,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애매한 상태, 자기 자신이 되려는 의지는 있으나 아직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모순에서 초래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야기했던 사춘기의 반항이 시작됩니다. 이는 주체적인 인격으로서 스스로 해방되고자 하지만 아직 무기력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비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서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마음 속에서는 자신의 생명력을 끌어내어 무언가를 하고 싶고 또 해야 한다는 감정과 그렇게 하는 것은 곧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느낌이 함께 섞여서 작용하고 있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안정적인 상태에서 자립의 길로 인도되어온 아이는 위기 국면에 들어설 때에도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위기를 한결 쉽게 견뎌낼 수 있습니다.(로마노 과르디니, 삶과 나이, 김태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6년, 51-57쪽)

One thought on “교육에 관하여(로마노 과르디니)

  1. 교육이란
    어려운 과업을 부여해 주신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도록 행복한
    판을 깔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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