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자상聖母子像

성 안나와 세례자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자 드로잉(1505-1507년) by 레오나르드 다빈치

교회의 역사 안에 성모님과 아기 예수를 묘사한 헤아릴 수 없는 형태의 성모자상聖母子像이 존재한다. 교회의 유구한 역사와 신앙 안에서 성모자상이 그토록 사랑받아 온 이유에는 여러 가지 신학적, 영적, 인간적 이유가 겹쳐 있다.

1. 성모자상은 인류의 역사 안에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 강생(Incarnation)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시적인 상징이다. 성모자상은 곧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라는 신비의 시각적 요약이다. 성모자상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신비롭게도 인간 아기로 오셨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그 어떤 신학적 개념이나 철학적 설명보다도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 안에서 모든 이는 강생의 신비를 본다.

2. 성모자상은 하느님과 인간 간의 친밀함을 드러낸다. 아기를 안은 성모님의 모습은 멀고 두려운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의 품에 안겨계시는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을 보여준다. 아기 예수의 미소, 눈빛,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 속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라는 복음의 핵심이 드러난다. 성모자상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너희는 나의 친구”(요한 15,14)라고 부르신 친밀함이 시각적으로 구현된다.

3. 성모자상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과 만나는 신비의 자리이다. 어머니와 자녀라는 모자母子관계는 동서고금 문화와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가장 깊은 인간적 경험 중 하나이다. 그래서 성모자상은 그리스도교 신자뿐 아니라, 종교적 배경이 없는 이들에게도 본능적인 감동과 따뜻함을 준다. ‘부성父性의 하느님’을 넘어, 인간의 삶 속 가장 친밀하고 부드러운 관계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난다.

4. 성모자상은 교부들의 다양한 신학적 해석을 낳는다. 예를 들어,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를 통해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반박하여 성모님을 ‘Θεοτόκος(테오토코스, Theotokos, 하느님을 낳으신 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정의하며, 성모자상이 단순한 ‘모자母子 이미지’가 아니라 교회의 신앙 고백임을 강조한다. 성 암브로시오는 성모의 모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신자들의 신앙과 연결한다. “성모님은 어머니이시면서 동정녀이시다. 그녀가 낳은 것은 하느님이며, 동시에 인간이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우리의 구원이 태어났다.”(De Institutione Virginis, 8) 암브로시오 성인에게 성모자상은 단순한 모자 관계가 아니라, 인간 구원의 시작과 탄생을 담은 이미지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모자상 안에서 교회 전체를 본다. 그는 “마리아는 교회의 모상이며, 성모님께서 한 번 그리스도를 낳으셨으나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는 날마다 그리스도를 낳는다”(Sermo 25, 7)라는 해석을 통해, 성모자상이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교회적·성사적 의미를 담는다고 설명한다. 성상의 열렬한 옹호자이자 이콘(Icon) 신학을 정립하신 분으로 알려지는 성 요한 다마스쿠스는 “나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그릴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육신을 입으셨기에, 나는 그분을 볼 수 있고, 그분을 그릴 수 있다.”(De Imaginibus Oratio I,16)라고 말하면서 성모자상을 포함한 성화의 신학적 근거를 마련한다. 성 테오도레 스투디트는 성화 파괴(Iconoclasm) 논쟁 때, 성모자상을 옹호하면서 “마리아께서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을 그린 성상은, 강생의 신비를 눈앞에 드러내며,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을 믿음으로 이끈다.”라고 말한다. 교부들에게 성모자상은 하나같이 복음을 눈으로 체험하게 하는 도상적 설교였다.

5. 성모자상은 신자들의 기도와 신심의 중심이다. 신자들은 성모자상 앞에서 아기 예수를 어루만지는 성모님을 바라보며,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 다가가는 길을 체험한다.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성모자상은 단순한 미술작품이 아니라 기도와 묵상의 통로였다. 신자들은 마리아의 손길을 바라보며, 그 손길이 결국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의 손길’임을 깨닫는다. 신자들은 성모자상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다.

성모자상은 신앙에서 실로 영적·신학적 종합이다. 성모자상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인간의 일상성, 구원의 신비와 가족적 친밀함, 교리와 삶 등을 하나로 엮어 준다. 성모자상은 신학적으로는 강생의 고백, 예술적으로는 사랑의 아이콘, 영성적으로는 기도의 대상, 인간적으로는 모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성모자상은 강생의 신비를 고백하는 신앙의 고백이자, 구원의 시작과 탄생이 담긴 신비이며, 눈으로 보는 하느님의 사랑이고, 그리스도를 낳으라는 교회의 모성적 사명이며, 눈으로 보는 복음이요 그 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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