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讀書 제안

여름은 기어이 갈 것이고 가을이 올 것이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엔 매미 소리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있을 것이고, 선선한 바람이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여름 휴가 때 읽어야지 하고 짐 속에 애써 챙겼으면서도 끝내 읽지 못해 되가져온 책이라도 한 권 제대로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심의 압박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휴대폰이나 컴퓨터 검색창을 통해 이것저것 클릭하며 위아래로 스크롤이나 하라는 핑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휴대폰과 검색창을 통해 눈에 띄는 내용들은 짧은 단문에 따른 짧은 주의 집중, 그리고 자극적인 몇 개의 단어 나열을 ‘훑어보게’ 만들면서 우리의 읽기 패턴을 그런 식으로 고착화할 위험이 다분해진다. 소셜 미디어, 문자 메시지, 속보와 헤드라인 같은 짧은 조각 형식의 문장에 길들다 보면, 모든 읽어야 하는 것이 그렇게 짧아야만 한다는 기대와 강박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 잡는다. 조금이라도 길다 싶으면 지루해하고 건너뛰게 된다. 이렇게 짧은 단문과 짧은 주의 집중에 길들다 보면, 누군가를 두고 붙인 산만함, 과잉행동, 충동성이라는 특징을 지닌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라는 말이 나에 관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어떻게든 우리를 계속 붙들어두도록 단문으로 설계되어 있고, 이와 관련된 기업들은 부정적인 참여가 긍정적인 참여보다 중독성이 훨씬 강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소셜 미디어와 같은 많은 플랫폼들, 휴대폰을 통해 인터넷 구매를 유도하는 앱들은 내가 계속 클릭하고 스크롤 하게 하려고 나에게 질투를 유발하거나, 또는 열받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한 프레임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이나 정보를 구매하도록 하는 데에 유리하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구매를 유도하지 않는 척하면서도 나의 클릭으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이윤을 창출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닐 포스트만Neil Postman이 <죽도록 즐기기(Amusing Ourselves to Death)>라는 저서를 통해 예견했듯이 TV는(현재는 소셜 미디어 매체들이 TV보다 훨씬 더 심하지만) 우리 놀이의 흐름이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때그때의 조각들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여기는 생각 패턴을 지니게 한다. 이어지는 프로그램, 뉴스, 혹은 팝업 창에 뜨는 게시물이 앞에 지나간 것이나 뒤에 올 것과 연결성이 없으며 전혀 다른 얘기들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재난 뉴스 다음에 귀여운 반려동물 얘기가 나오고, 요리 프로그램 다음에 범죄 드라마가 이어져도 우리는 낯설지 않고 이미 이에 익숙하다. 우리의 일상에서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가 이런 식이라면 무척 당황스럽고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클릭과 스크롤은 이런 무작위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런 미디어 환경은 오랜 시간 집중해야 하는 무엇인가를 따라가려고 할 때, 쉽게 지루해지거나 산만해지도록 우리를 조건 짓는다.

그러나 우리는 주어지는 대로만 받아들이며 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가 그렇게 선택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우리는 더 낫고, 더 건강하며, 더욱 만족할 수 있는 습관을 내가 내 삶 안에 만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앞서 열거한 매체들의 문법 체계가 무조건 해롭고 형편없다는 것만은 아니다. 소셜 미디어 매체들은 현명하게 사용할 때 유용하다는 긍정적 가치를 지닌다. 이는 소셜 미디어가 우리 생활에 가까이 다가온 것이 오래전 일이 아님에도 친구들과의 연락, 관계 유지, 취미, 커뮤니티, 종교 등등의 그룹에 참여하거나 이벤트를 조직할 때, 소셜 미디어 없이 이런 것이 가능하기나 할지를 생각하기만 해도 분명하다. 다만 우리는 그러한 매체들 안에 숨어 있는 화단의 잡초 같은 것들이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지배하며, 우리의 주의력을 산만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싶을 뿐이다.

독서는 분명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지만, 수동적인 미디어 소비보다 훨씬 더 보람 있는 활동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독서가 무엇보다도 우리가 우리 마음을 통제하는 능력을 회복하도록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연 우리는 거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알고리즘이 우리가 읽고 생각하는 것들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어야만 할까?

독서를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습관이 단 한 번에 수정·교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의력 근육을 조금씩 단련해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뭔지 모르게 내 안에 늘 남아 있으면서 나와 나의 일상을 가로막고 있는 불안과 불만을 조금씩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주의력 결핍이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와 더욱 즐거운 독서를 해나갈 수 있는 실용적 실천에 관한 몇 가지 제안이다.

1) 작은 것부터 조금씩 시작

체력을 키우기로 작정한 바로 다음 날 마라톤 종주나 철인 3종 경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치워놓고 몇백 쪽짜리 문학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개인차는 있고 사람에 따라 이런 방법이 어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처음부터 깊은 물에 뛰어드는 식의 접근법은 대개 좌절감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짧은 것으로 조금씩, 일과 시간 중에 되도록 특정 시간을 설정하여 하루에 5분씩이라도 규칙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주의력 집중 훈련을 해야 한다.

2) 손쉽고 편안한 영역에서 시작

독서 습관을 기르자고 문학적 에베레스트 등반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호머의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 단테의 신곡이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신애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사서삼경이나 오경, 장자처럼 귀에 익은 고전들은 알 듯 모를 듯 단편의 문장들에 나를 묶으면서 보통 우리를 그 어떤 곳으로도 데려가지 않는다. 많은 이가 남들처럼 꼭 읽고 싶거나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두툼하고 무게감 있는 책 앞에서 걸려 넘어지고 만다.

3) 안내를 따라 읽기

소개 글이나 서문, 각주 같은 기타 보조 자료가 포함된 좋은 판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번역서인 경우에 많은 책은 분명 내가 아는 말인데도 앞뒤가 맞지 않고 정체불명의 모호함으로 치장되어 종이의 인내를 시험하는 잘못을 범한다. 무료 전자책이나 보급형 싸구려 책은 ‘비추’이다. 싸구려 인쇄와 많은 오타는 불편과 짜증을 유발한다. 전자책은 화면을 통해 보는 편리함이 있으나 기기를 켜면 항상 거기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나의 손 안이 아닌 ‘건너편’에 남게 될 공산이 크다. 이해를 돕는 훌륭한 각주는 나의 관심 분야로 계속 나아가도록 나를 이끈다.

4) 좋아했던 책 다시 읽기

언젠가 감동 깊게 읽었던 책이 주는 긍정적인 연상은 강한 긍정의 힘이 되면서 산만한 나의 주의를 이끌고 나의 사고 과정을 돌아보게 하면서 나를 다시 독서에 몰입하도록 계기를 만들어준다. 다시 읽기는 깊이 읽기의 한 방법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책이 꼭 고전일 필요는 없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은 큰 기쁨이다.

5) 함께 읽기

부모로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도 독서의 한 형태이다. 누군가와 함께 책을 읽는 것은 독서 습관을 기르는 좋은 방법이다. 함께 읽는 동아리는 동기부여와 함께 대화와 토론을 위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이는 실제의 오프라인 모임이거나 온라인 모임일 수 있다. 함께 읽는 즐거움은 함께 읽어 본 이들만 안다. 이는 바쁜 일상에서 소홀히 하기 쉬운 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함께 읽는 책 뒤에 이어지는 커피나 식사, 가벼운 와인 한 잔은 독서의 선순환을 구축하며 의미 있는 관계와 연결을 이루는 방법이다.

※참고한 글:

https://www.wordonfire.org/articles/5-tips-to-stop-scrolling-and-start-reading

One thought on “독서讀書 제안

  1. 최근 저의 조각조각의 생각들은 TV와 소셜 미디어의 파편화 된 생각들이군요. 신부님의 독서 읽기의 실용적 실천을 읽다 생각난 책이 있어 공유드려요.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에 나온 ‘독자의 권리’가 생각났어요. 너무 유쾌해서 웃었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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