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도 유머가 있을까? 이러한 질문 자체가 어쩌면 너무나 인간적으로 하느님을 이해하려는 경솔한 태도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에서 건강한 유머와 유희, 농담, 장난기 등은 우리 삶에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 무거운 기분을 떨쳐버리고 유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황이나 사건을 보다 단순하고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한다.
프로이트는 때때로 어떤 것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 반대편을 바라보라고 제안한다. 유머나 장난기, 농담 같은 것들의 반대편은 분명 과도한 진지함(over-seriousness), 불필요한 짜증(needless irritation), 거들먹거림(pomposity) 같은 것일 것이다.
수도자들이 살아가는 것과 같은 공동체 생활에서 지나친 진지함은 공동체의 분위기를 무겁게 할 뿐만 아니라 함께 공유하며 사는 공간의 산소를 빨아들여 숨 막히게 한다. 과도한 진지함이라는 것이 도덕적 결함은 아닐지라도 공동체의 요구에 완벽하게 부응하며 살 수 없는 우리를 우왕좌왕하게 하고, 너무 취약하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너나 나나 모두 거기서 거기고 도긴개긴이 아니냐면서 그러려니 하고 적당히 살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 생활은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들과 함께 사는 삶이고, 내 마음대로라면 내가 절대로 함께 살고 싶지는 않았을 이들과도 함께 살아야 하는 삶이다. 나와는 취향이나 기질, 출신 배경이나 문화가 매우 다른 이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공동체 생활에서 유머는 윤활제 역할을 하며, 가끔은 삶을 살만한 것으로 뿌듯하게 여기도록 하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팍팍한 일상에 활력을 준다.
기도와 공동 사명이 우리를 하나로 묶는 끈이요 접착제라면 은근히 서로를 미소 짓게 만드는 유머, 장난기, 농담은 사소한 긴장과 직업적 위험인 허세와 교만함을 막아주는 윤활유이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들은 사랑을 대개 여섯 가지, 좀 더 세분해서 말하면 아홉 가지 정도로 이해했다(*참조. 사랑의 형태https://benjikim.com/?p=3008): 에로스(매력, Eros, ἔρως), 마니아(집착, Mania, μανία), 아스테이스모스(유희, Asteismos, ἀστεϊσμός), 스토르게(보살핌, Storge, στοργή), 필리아(우정, Philia, φιλία), 아가페(이타주의, Agape, ἀγάπη) 등이다. 사랑은 서로에게 빠져드는 것, 서로에게 집착하는 것, 서로 재미나는 것, 서로 보살피는 것, 서로 든든함을 느끼는 것, 서로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우리는 이런 내용을 거론하지만 아스테이모스를 제외할 때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유머가 비아냥이나 날 선 풍자, 은근한 시기와 질투를 담은 냉소적 반론, 자기의 어색함을 감추기 위한 혼자만의 왁자지껄, 따분하고 헤픈 도돌이표 아재 개그, 그리고 저질 웃음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 생각에 하느님은 세상 그 어떤 코미디언보다도 인간과 세상을 잘 웃기는 기막힌 재주를 가지신 분이다. 유머나 장난기 없는 천국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완벽한 사랑이신 분 앞에 서게 될 때 그저 무한 긴장과 두려움만으로 서야만 한다는 것이 가당하기나 할까? 죽기 전에 짓는 미소나 웃음이 영원히 다시는 오지 못할 나의 마지막 웃음일까? 아닐 것이다. 훗날 하느님을 뵐 때 우리에게는 누구에게나 ‘즐거운 놀라움(delightful surprise)’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곤 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금 웃으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교황, 코미디언들과의 만남https://benjikim.com/?p=10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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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1951년 3월 14일 아인슈타인의 72번째 생일에 United Press(UPI) 사의 사진기자 아서 사스Arthur Hjalmar Sasse가 자동차에 타고 있던 아인슈타인에게 웃는 모습을 지어달라고 하자 아인슈타인이 보였던 표정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사진을 좋아했으며 UPI에 개인적인 용도를 위해 9장의 카피를 부탁했다. 2009년 6월 19일에 아인슈타인이 사인한 오리지널 이 사진 한 장이 경매에서 74,324불에 팔리는 기록을 세웠으며, 이 사진은 2017년 7월 27일 다시 125,000불에 거래되었다.
즐거운 놀라움~~~
마지막 순간에도 유머러스하게 세상과 작별하고, 하느님 만남에 기대 부푼 나의 모습… 상상만해도 절로 미소지어집니다. 그러려면, 더욱더 열심히 기도해야 되겠네요. ..
미소.
오늘도 덕분에 유머 발굴을 해 보려구요.
감사합니다.
좀 가볍습니다.
그리고
빙그레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