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반니 칼리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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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8일은 돈 보스코의 아들 중 하나였던 죠반니 칼리에로(Giovanni Cagliero, 1838~1926년) 선종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돈 보스코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배출된 첫 선교사요, 첫 주교이며, 첫 추기경이었다. 로마에서 발행하는 살레시오 소식지에 게재된 내용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사랑받던 존재

“칼리에로 신부는 아이들의 우상이었습니다. 넘치는 활력과 에너지를 지닌 그는 돈 보스코와 함께 살며 일하고, 뛰고, 자신을 내어주는 삶의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 전했습니다. 돈 보스코의 ‘저녁 말씀’이 끝나면 아이들은 칼리에로 신부에게 다가가 스스럼없는 애정으로 인사를 건네곤 했습니다.” 이브레아 살레시오 수도원의 원장이었던 주세페 구초나토 신부는 첫 살레시오 남미 선교단 파견 100주년을 기념하여 쓴 전기에서 조반니 칼리에로를 그렇게 묘사했다.

희생과 비전으로 빚어진 개척자

칼리에로의 ‘개척자’ 성품은 돈 보스코 성인이 “파타고니아”라는 목적지만을 제시하며 하루빨리 그곳에 가길 원했던, 불확실하고 광활한 선교 지평에 딱 맞는 섭리였다. 칼리에로의 삶은 도미니코 사비오를 비롯해 돈 보스코와 평생을 함께한 다른 이들처럼 아스티 지역의 카스텔누오보 인근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은 굶주림과 때로는 가족을 잃는 아픔 속에서도 단련된, 희생과 낙관주의, 비전을 필요로 하는 성스러운 열정의 지리적 요람과도 같았다.

돈 보스코와의 첫 만남

1838년 1월에 태어난 어린 칼리에로는 모리알도에 도착한 돈 보스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12살 때 그분을 처음 보았습니다. 주임 신부님과 선생님, 다른 신부님들에게 둘러싸여 계셨는데, 그분들이 얼마나 돈 보스코를 존경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돈 보스코는 소년의 감탄 어린 눈빛을 알아챘고, 소년이 오라토리오에 오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듬해 발도코에 자리를 마련해주기로 약속했다. 사실 그 ‘자리’는 처음 며칠 동안 다른 아이와 침대를 나누어 써야 할 정도로 빈약한 환경이었지만, 훗날 발레시오 신부가 회상했듯 그들은 “가난했지만 사랑 안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선교를 위해 대양을 건너다

돌이켜보면 이는 대양을 건너는 도전을 위해 필수적인 훈련 과정이었다. 10명이 단 하나의 가방을 공유하며 사보나의 자비의 수녀회와 함께 떠난 그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 지역에서 가난하게 살기를 선택했고, 이후 아르헨티나 남부 원주민들을 말살하려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리오그란데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냈다.

아메리카의 설립자이자 목자

돈 보스코는 칼리에로 신부의 인간적 자질과 굳건한 신앙을 믿고 그를 첫 선교단의 단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신의 한 수였다. 칼리에로는 파타고니아에 첫 살레시오 학교를 세웠고, 도움이신 마리아 수녀회에 맡겨진 첫 병원을 설립했으며, 말을 타고 테우엘체족과 아라우카니아족의 영토를 누볐다. 불과 몇 년 만에 그는 칠레와 우루과이의 국경을 넘었고, 이후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온두라스까지 도달했다. 그는 유럽에서 돈 보스코의 영성을 전파한 미켈레 루아 신부와 맞먹는 카리스마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았다. 1897년 비에드마의 첫 살레시오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중앙아메리카 교황 대사로서 다른 수도회들이 그 지역에 자리 잡도록 도왔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1915년 그를 추기경으로 서임했다.

파타고니아에 남긴 영속적인 유산

그는 1926년 이탈리아에서 선종했지만, 그가 섬겼던 아르헨티나 살레시오 회원들과 신자들은 그의 유해를 비에드마로 옮겨올 것을 요청했다. 그곳은 그가 가장 큰 열정을 쏟았던 곳일 뿐만 아니라, 선교의 길을 밝히는 강력한 등불이 되어야 할 장소였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에서는 아라우카니아족 추장의 아들인 체페리노 나문쿠라의 성소가 무르익었고, 그는 칼리에로의 인도 아래 이탈리아 프라스카티 교구에서 살레시오 양성을 받았다. 또한 칼리에로가 세운 비에드마 병원에서 이탈리아 출신 아르테미데 자티 수사는 살레시오 영성을 몸소 실현하며 성덕의 반열에 올랐다.

오늘날 살아있는 영감

선종 100주년을 맞이한 지금도 죠반니 칼리에로 신부의 모습은 살레시오 선교의 현재를 말해주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파타고니아의 변방으로 떠났던 그의 결정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의 교육적, 사회적 최전선에서 일하는 수도회에 여전히 영감을 준다. 그의 유산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며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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