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너의 작품을 통해서 본 문신과 성사적 세계관)
주변에서 여간해서는 보기 어려웠던 문신이고, 문신이 있는 이들은 군대에서조차 받아주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문신한 이들을 만난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3%가 적어도 한 개 이상의 문신을 몸에 지녔고, 30세 미만의 연령대에서 41%의 사람들이 문신을 새긴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런 추세로 볼 때 타투 산업은 향후 엄청나게 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직장의 복장 규정에서도 이미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추세이다. 과거에는 거의 금기시되다시피 했던 이 관행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연구 결과들은 문신이 부질없는 일탈이 아니라 자기의 의미나 목적의식을 표출하고 싶은 욕구의 결과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사람들이 문신을 새기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거나 의미 있는 체험을 새기기 위해서, 혹은 자기의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타투는 이기적인 자기식대로의 자기의 표출과는 아주 다르며,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통합에 대한 욕구를 드러낸다. 이러한 욕구가 너무도 강렬할 때 나 밖에 있는 어떤 외부의 상징이나 표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므로 나의 신체 자체에 이러한 욕구를 즉각적으로 새겨넣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욕구를 주제로 담고 있는 단편이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의 <파커의 등(Parker’s Back)>이라는 작품이다. 이 단편에서 작가는 오바디야 엘리후 파커와 사라 루스 케이트라는 두 등장인물을 그린다. 그들의 모습은 그렇게도 다를 수가 없다. 사라는 자동차, 담배, 위스키, 화장을 싫어한다. 그녀는 자기 음식에 양념 뿌리기를 거부하고 교회라는 건물에 들어가는 것도 거부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허영이라 여기면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한다. 그녀의 엄격하고 독선적인 성격은 그녀 자신을 비참하고 생명력이 없는 여성으로 만든다. 사라 루스는 인습을 타파하는 일종의 우상 파괴주의(iconoclasm)라는 이단의 대명사이다.
반면에 파커는 육체적인 쾌락을 숭배한다. 그는 마음껏 술을 마시고 마음 내키는 대로 욕을 내뱉으며 싸우기도 한다. 그는 자기 취향이나 공상이 이끄는 대로 따르면서 등을 제외한 온몸에 문신을 새긴다. 모든 문신은 순간적인 흥분이나 만족을 위해 즉흥적으로 선택된 것들이다. 파커의 문신은 일관성이 있거나 아름다운 이야기 대신 방향이나 목적의식이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몸을 자기혐오를 담아 보면서 또 다른 더 많은 문신으로 이를 달래고, 불만 속에 자기 자신을 점점 더 깊이 묻는다. 영적인 의식意識과 담을 쌓고 사는 파커는 관능의 추구를 대표한다.(*참조. 플래너리 오코너, 세계문학 단편선 12, 고정아 옮김, 현대문학, 2014년, 686-715쪽)
창조와 육체에 대한 성사적聖事的인 이해(a sacramental understanding)야말로 붕괴한 인간성에 대한 치료제이다.
자신의 “영혼을 살펴보니 사실과 거짓이 뒤얽힌 거미줄 같았다”라고 말하는 파커, “나는 거짓말과 허영은 참을 수 있지만, 이 집에 우상숭배자는 원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세라 루스, <파커의 등>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리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드러낸다. 사라 루스는 추한 그녀만의 영적인 감방에 고립되어 있으며 파커는 육체적인 추구에 허덕이면서도 만족하지 못한다.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공조와 상호 끌림 속에서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둘은 고집스럽게 서로를 거부하며 비참한 결혼을 견딘다.
신비로운 것과 육체적인 것을 통합하려는 욕망은 우리 인류학에서 원초적이면서도 자연적인 부분이라고 말하지만, 우리 문화 안에서는 이들이 상호 긴장되어 있다. 생물학적인 성性이 아닌 사회·문화·심리적인 성으로 남성과 여성을 보려는 젠더 이데올로기는 육체를 정체성에서 분리한다. 신앙과 과학 사이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식으로 막연하게 여기는 머릿속 생각(the perceived discord)은 신학과 우주론(cosmology) 사이의 관계를 혼란스럽게 한다. 소비주의는 인간과 인간의 자리인 생태를 따로 떼어 각각 고립시키면서 자연계를 그저 유용하고 활용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사회적인 매체들(social media)은 인간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면서 서로 연결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절박함을 자본화한다. 오코너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불만은 우리의 삶으로까지 확장된다. 이러한 불만은 죄의 열매, 영지주의(Gnosticism), 쾌락주의(hedonism), 인습타파(iconoclasm), 그리고 육체와 영혼 사이에 쐐기를 박는 온갖 종류의 힘이다. 오직 사람의 몸을 취하신 하느님의 강생 신비와 성사적인 계시만이 이러한 안타까움을 치유할 수 있다.
선뜻 다가온 죽음은 결국 파커의 영적인 빈곤을 깨운다. 그리고 파커는 자기의 정체성과 하느님의 능력을 이해하는 데에 이른다. 파커는 이러한 계시를 자기 혼자 간직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서둘러 이를 표현하고 봉인한다. 그동안 내내 비어 있던 그의 등에 근엄한 비잔틴 풍의 그리스도가 새겨진다. 이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동의의 행동이다. 파커는 은총이 일하시는 현장, 자기 영혼과 육체 모두의 문을 열어 자기의 인생에 예수님이 들어오시게 한다.
파커의 문신은 그의 회개, 그리고 그리스도와 닮으려 함을 보여주는 성사적 표징이다. 파커가 그의 문신을 자기 부인에게 보여주자 그녀는 그를 우상 숭배자라고 비난한다. 그 몸의 선함에 대해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부인은 빗자루 손잡이를 들어 그리스도의 얼굴이 새겨진 파커의 등짝을 내려친다. 「세라 루스는 빗자루로 바닥을 두세 번 두드리고 창가에 가서 거기 묻은 그의 흔적을 털어냈다. 그녀는 빗자루를 움켜쥔 채 피칸 나무를 바라보았고 그 눈은 더욱 차가워졌다. 거기 그가 있었다. 자신을 오바디야 엘리후라고 밝힌 그가 나무에 기대서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이렇게 작품은 끝난다. 파커가 자기 육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오코너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창조와 육체에 관한 성사 신학(a sacramental theology of creation and the body)의 필요를 조명한다. 인간은 영적인 삶을 몸으로 체험하고 표현하도록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복합체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성사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습과 능력이 눈에 보이는 세상을 통해 전달된다. 계약과 언약은 육체적인 것, 동물을 잡아 바치는 희생 제사, 할례, 파스카의 어린양을 먹는 행위를 요구한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느님 흠숭을 가르치실 때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단순히 신적인 것을 상상하라고만 말씀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장막을 지어 그 안에 여러 물건을 배치하고, 향을 사르며, 말로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계약, 경배(흠숭)에 대해 몸으로 이를 행하는 육체성(sensuality) 안에서 당신 백성과 관계를 맺으시고 이를 유지해가신다.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통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절정을 이룬다. 실제 사람의 몸을 취하신 하느님으로서 인성과 신성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몸과 자연계를 거룩하게 하신다. 사람이 되신 그분의 몸은 그분 자신이 말씀하신 존재, 곧 생태계 안에 잉태되었다. 감히 신성神性과 연관되기에는 너무나도 천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우리의 인간성 안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시고 그를 거룩하게 하신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오늘날까지도 성사들 안에 당신의 사목을 계속하고 계신다고 하는 성사 신학의 아이콘을 본다. 우리는 세례 성사에서 이마에 붓는 물의 차가움을 느끼며, 견진성사에서 성유로 이마에 그어지는 십자가를 통해 크리스마 성유의 냄새를 맡는다. 우리는 성체성사 안에서 그분을 맛보고 소화하며, 화해성사 안에서 우리의 말로 우리 자신을 고백하고, 우리 자신의 혼인 동의로 혼인성사를 이룬다. 성사들은 우리가 우리 인간성을 충만하게 알고 살아가도록 우리를 가르치시는 예수님 사목의 연속이다.
창조와 육체에 대한 성사적 이해는 붕괴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치료제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며, 섬기도록 창조되었으며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육체가 하나가 되었을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몸에 문신을 새기는 것이 범람하는 것은 세속 세계가 본래의 성사적인 본성을 되찾으려는 시도들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몸소 인간의 살과 몸이 되신 말씀께서 교회를 통하여 통합된 인간의 삶이 지닌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가르치셔야만 한다.(*글쓴이. 로렌 메이어스Lauren Meyers: 그녀는 세튼 홀 대학과 노틀담 대학에서 교육학 석사와 신학 석사 학위를 각각 받았으며 인디아나 주 사우스 밴드에서 남편과 네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바탕이 된 글과 이미지 출처. https://www.wordonfire.org/articles/tattoos-oconnor-and-a-sacramental-world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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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toos, O’Connor, and a Sacramental Worldview
Lauren Meyers
September 3, 2024
Tattoos are on the rise in the United States. A recent Pew survey showed that 33 percent of Americans have at least one tattoo, and 41 percent of people under the age of thirty have been inked. The industry is projected to grow immensely over the next few years, and workplaces commonly accept visible tattoos in their dress codes. The trend begs the question: why are people flocking to this formerly taboo practice?
Research shows the rise in tattoo acquisition is not a vain indulgence, but a desire to express meaning and purpose. The most common reasons people get tattoos are to memorialize a loved one, mark a significant experience, or express their beliefs. Far from an exercise in egoism, tattoos point to the desire for an integration of the ethereal with the tangible. The need is so immediate that exterior signs and symbols will not suffice but must engage the body.
This desire was the subject of Flannery O’Connor’s short story “Parker’s Back.” In it, O’Connor sketches out two main characters: O.E. Parker and Sarah Ruth Cates. Their personalities could not be more different. Sarah hates cars, tobacco, whiskey, and makeup. She refuses to season her food or enter a church building. She considers it all vanity and quarantines herself from the world. Her stern and self-righteous personality makes her a miserable and lifeless woman. Sarah Ruth is the heresy of iconoclasm personified.
Parker, on the other hand, adores the pleasures of the physical world. He drinks, swears, and fights to his heart’s content. He follows his fancy wherever it leads him, and fills his body, save for his back, with tattoos. Each tattoo is chosen in haste, satisfying a momentary desire for excitement. Instead of telling a coherent and beautiful story, Parker’s tattoos tell the story of a man with no purpose or direction. He looks in the mirror with self-loathing, quells the sting of regret with more tattoos, and buries himself deeper in discontent. Divorced from any spiritual awareness, Parker represents the pursuit of sensuality.
A sacramental understanding of creation and the body is the remedy to disintegrated humanity.
The characters in “Parker’s Back” reveal the insipid fruit of divorcing the physical and the spiritual. Sarah Ruth is ugly and isolated in her spiritual cell. Parker is disillusioned and unsatisfied by his physical pursuits. Their polarity has made them discontent, which explains their confounding, mutual attraction: they need each other. The pair endure a miserable marriage, both stubbornly refusing to assent to the other.
The desire to integrate the mystical and corporeal is a primal and natural part of our anthropology, but it is strained in our culture. Gender ideology segregates the body from identity. The perceived discord between faith and science muddles the relationship of theology and cosmology. Consumerism has made a commodity of the natural world, isolating human beings from their place in ecology. Social media capitalizes on our desperation for connection while keeping us physically separated. The discontent experienced by O’Connor’s characters—which extends to our own lives—is the fruit of sin, Gnosticism, hedonism, iconoclasm, and all manner of forces which drive a wedge between the body and soul. Only an incarnational and sacramental revelation can heal this vexation.
A brush with death eventually awakens Parker to his spiritual poverty, and he comes to understand the identity and power of God. Parker is not content to keep this revelation to himself, but hastens to express and seal it. He has a tattoo of a stern Byzantine Christ scored across his back. This is not an act of egoism but assent. Parker allows Jesus into his life by opening both his soul and body to the work of grace.
Parker’s tattoo is a sacramental sign of his conversion, of his assimilation to Christ. When he presents the tattoo to his wife, she accuses him of idolatry. Refusing to recognize the goodness of the body, she raises a broom handle to pummel both Parker’s back and the image of the face of Jesus. The story ends with Parker crouched against a tree crying like a baby. Parker has become, in his very body, the icon of Christ crucified.
O’Connor’s characters illuminate the need for a sacramental theology of creation and the body. Humans are body-soul composites made to experience and express their spiritual lives in their bodies. The visible world is sacramental; it communicates God’s identity and power. The covenants are fleshy, requiring the sacrifice and splitting of animals, circumcision, and eating the Passover lamb. When God instructs the people in worship, he does not tell them to simply imagine the divine. Rather, he instructs them to build a tabernacle, place objects within it, burn incense, and speak prayers. In the sensuality of creation, covenants, and worship, God establishes and maintains a relationship with his people.
The integration of the physical and spiritual reaches its pinnacle in the person of Jesus Christ. Becoming human and remaining divine, Jesus sanctifies the body and the natural world. His incarnate body is conceived within the ecosystem that he, himself, spoke into being. The grit of humanity, which we might think too vulgar to be associated with the divine, Jesus enters into and hallows.
We see in Jesus the icon of sacramental theology, whose ministry continues today in the sacraments. We feel the cold splash of the baptismal waters and smell the Chrism that drips down the forehead of the confirmandi. We taste and digest the Eucharist, speak the words of our confessions, and consummate marriage. The sacraments, the continuation of Jesus’ ministry, teach us to know and live our humanity in its fullness.
A sacramental understanding of creation and the body is the remedy to disintegrated humanity. We are created to know, love, and serve God, and these things can only be done by engaging our hearts, minds, and bodies as one. The spike in tattoo acquisition is an attempt for the secular world to recapture its sacramental nature, but it is not sufficient. The Word made flesh must teach us, through the Church, the beauty of an integrated, huma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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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ren Meyers is a writer and educator with over fifteen years of experience in ministry and education. She has a passion for inviting others to encounter the love of Jesus Christ in the Catholic Church. She holds a master’s degree in education from Seton Hall University and a Master of Arts in theology from the University of Notre Dame. She resides in South Bend, Indiana with her husband and four child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