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프란치스코는 25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진 <희망>이라는 자서전을 남겼다. “저는 한낱 지나가는 발걸음일 뿐입니다(I am just one step)”라는 마지막 장에서 교황은 교회에는 항상 희망이 있고, 교회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역설하면서 교회와 교황직의 본질이 ‘섬김’에 있음을 언급한다. 이때 교황은 교회가 자칫 ‘경직성(rigidity)’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 그렇다고 ‘너도 좋고 나도 좋으며, 이것이나 저것이나 무조건 다 좋은 게 좋다’라는 식의 ‘상대주의(relativism)’에 빠져서도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경직성을 얘기하는 부분에서 교황은 자신이 좋아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본다는 한 영화를 예로 든다. 바로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이라는 영화이다. 영화의 배경은 스칸디나비아의 한 해변에 자리 잡은 조그만 시골 마을로서 엄격한 청교도의 목사가 두 딸과 함께 사목하는 곳이다.
파도 소리와 함께 하늘, 바다, 그리고 해변으로 삼등분된 장면으로 시작하여 촛불이 꺼지는 장면으로 끝나는 1987년 덴마크 영화는 가브리엘 악셀Gabriel Axel 감독의 영화이며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에 개봉되었다.
인생의 즐거움과 의미를 모두 잃어버리고 오로지 청교도적인 규범만이 남은 조그만 시골에서 목사는 마르티나Martine와 필리파Filippa라는 아름다운 두 딸마저 시들어가는 꽃으로 남는 인생을 살게 한다. 마르티나를 흠모하여 찾아온 수많은 젊은이가 있었고 그중에는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떠나가지만, 훗날 장군이 된 로한스 로렌하임Lorens Löwenhielm 대위도 있었으며, 필리파의 천상 목소리에 반하여 그녀에게 노래를 가르치던 오페라 가수 아실 파핀Achille Papin도 있었으나 그 역시 또한 떠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 속에서 두 딸과 마을 신앙 공동체는 그렇게 늙어간다.
「마을은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우중충한 마을이 되었고 주민들은 스스로 만든 규칙에 지나치게 얽매여 살다가 본래의 의미조차 잊어버린 상태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가사도우미로 온 바베트라는 여인이 마을의 모든 것을 뒤바꿔 놓는다. 그녀는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알지만,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쓰거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뜻밖의 선택을 한다. 온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정성 가득한 ‘프랑스식 만찬’을 준비하는 데 모든 돈을 쓰기로 한다.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던 이 특별한 만찬과 그녀의 아낌없는 나눔이 마을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오랫동안 굳어 있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공동체가 새롭게 태어나며, 사람들의 삶에 기쁨이 다시 피어나기 시작한다.(교황 프란치스코, 희망, 가톨릭출판사, 2025년, 504-505쪽)」
카페 앙글레Café Anglais의 수석 쉐프였으나 내전으로 가족과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바베트가 그 마을에 오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필리파를 잊지 못하던 아실 파핀이 바베트를 받아달라고 장문의 편지를 쓴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 자매와 함께 살게 된 바베트는 어느 날 로토에 당첨되어 1만 프랑이라는 거금을 얻게 되었고, 이로써 떠날 것이라는 두 자매의 예감과는 달리 자매들의 돌아가신 아버지 목사님의 100번째 생일 만찬을 준비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바베트가 준비한 만찬에 왕실 가문과 혼인하였으며 장군이 된 로한스 장군이 그의 숙모와 함께 참석한다. 노년이 된 장군은 옛날 상냥한 천사처럼 느껴 고상하고 순결한 삶을 함께하고 싶었던 꿈의 옛 여인 마르티나 앞에서 아름답고 맛있는 만찬을 즐긴다.
진정한 향연饗宴, 잔치, 축제는 생명의 놀이이다. 이는 누군가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부을 때 가능하다. 편안하고 아름다우며 누군가의 혼을 담은 예술이라는 맛을 담은 향연은 모두를 흐뭇하게 하고, 더 위대한 가치에 감격하게 한다. 이는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지상과 천상, 찰나와 영원, 슬픔과 기쁨의 경계를 허물고, 경직과 완고함, 위선의 가면을 넘어 모두를 순결한 한마음으로 노래하게 한다.
인생이라는 향연에는 「재계齋戒로 시작하여 잔치로 끝나거나, 잔치로 시작하여 두통으로 끝이 나는 두 가지가 있다.(풀턴 쉰Fulton John Sheen 주교)」 사람들은 대개 초대받은 하느님의 혼인 잔치보다는 자신의 혼인 잔치를 더 즐기고 싶어 한다.
다음은 영화의 후반부라고 할 수 있는 만찬부터 등장하는 영화 대사 중 일부이다. 만찬이 끝나갈 무렵 장군의 연설과 함께 만찬에 참석했던 이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가사가 있고, 식사가 끝나고 나서 돌아갈 곳이 없고 돈도 없다면서 바베트가 두 자매와 계속 살 것이라고 하는 장면에서 자매들과 바베트의 말로 오가는 대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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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 끝 무렵에 장군이 하는 말) 그녀는 저녁 만찬을 사랑의 향연으로 만들었다. 이 사랑의 향연은 육체적 욕구와 영적인 욕구 사이에 구별이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자비와 진리는 서로 만나며 정의와 축복은 서로 입을 맞추었네. 연약하고 한 치 앞도 못 보는 연약한 인간은 자신이 인생에서 모든 결정을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으로 인해 두려워 떱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압니다. 하지만 우리의 결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고 우리의 눈이 열리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자비가 무한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을 두고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님의 자비하심에는 조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설령 우리가 거절당했다 하더라도 감사히 여겨야 합니다. 거절했던 것을 돌려주실 때도요. 자비와 진리는 서로 만나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축복은 서로 입을 맞출 것입니다.
(만찬에 참석했던 이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 그날이 다시 옴을 보리니 어서 서두르시오. 태양도 물에 몸을 담그네. 우리가 편히 쉴 때가 곧 다가오리니 천국의 빛 가운데 거할 자 누구랴. 천국에서 다스릴 자 그 누구며 어둠의 골짜기에 영원한 빛이 될 자 누구랴. 시계 속의 모래는 곧 사라지리니 어둠이 낮을 지배하겠네. 세상의 영광은 끝이 오리니 그들의 날은 짧고 바람처럼 날아가네. 주님 당신의 빛을 저희에게 비추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장군과 마르티나 간에 오간 대화) 내 일생의 하루하루를 당신을 생각하며 살았소. 알고 있다고 말해 줘요. 네, 알고 있어요. 지금부터 제게 주어지는 하루하루도 제가 당신과 함께 있을 거라는 사실도 아셨으면 좋겠어요. 매일, 저녁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앉아 만찬을 즐길 거예요. 하찮은 제 육체가 아니라 제 영혼으로요. 제가 이 저녁에 배운 것은 아름다운 우리의 세상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마을 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노래) 종이 울리고 시간이 흘러도 영원까지는 아직이네. 마음과 뜻을 다해 주님을 섬기도록 열심을 다해 살아갑시다. 그래야 우리의 참 본향을 찾을 수 있으리. 그래야 우리의 참 본향을 찾을 수 있으리.
(두 자매 간의 대화) 별이 서로 가까워지는 것 같아. 아마 매일 밤 조금씩 가까워지나 봐.
(바베트의 말)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저의 최고의 노력을 들여 요리를 만들었을 때 너무 행복했어요.
(자신의 진가를 알아본 아실 파핀이 했다는 말을 바베트가 두 자매에게 전하는 말) 예술가의 가슴에서 나오는 한 부르짖음이 세상을 울릴지니 내 인생 최고를 창조할 기회를 주소서.
(두 자매의 대화)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야. 그럼 그렇고말고. 천국에서 바베트는 위대한 예술가가 될 거야. 그게 하느님의 뜻인 것 같아. 천사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바베트의 만찬 영화 찾아서 봐야겠어요.
감사드립니다~♡
옛날에 본 것 같은데
깊은 의미를 몰랐나 봐요.
한번 찾아 볼게요.
오늘도 감사드리며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어제.
제가 갔던 시골 책방에
교황님의 희망이라는 책을
얼핏 봤던 기억이 납니다. 담엔 저 책을 사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지금 일단 책을 사보고
바베트 만찬 영화도 보면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게 된 문제 해결책을
도움받을듯 하네요.
슬픔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