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제가 주교로 서품되거나 나중에 추기경으로 서임될 때는 공식 문장紋章을 채택하게 된다. 추기경에서 교황이 될 때는 이 문장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고, 교황으로서 문장을 변경할 수도 있다. 전임 3명의 교황은 이미 추기경 시절에 사용했던 그 문장을 그대로 사용한 바 있었고, 교황 레오 14세 역시 그가 추기경으로서 사용했던 문장을 계속 사용한다. 방패 문장의 상단에 있는 청색 바탕에 세 갈래 잎으로 그려진 백합은 삼위일체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특별히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따라 나아가는 성모님의 순결과 함께 성모님의 겸손과 순명,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내어 맡기신 성모님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는 단순한 상징이나 지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삶 안에서 성모님의 중추적인 역할을 천명하는 것이다.

방패 문장 오른쪽 아래에는 책 한 권이 있고 그 위에 화살이 관통한 불타는 심장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원래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Ordo Fratrum Sancti Augustini, 줄여서 OSA)의 문장에서 따왔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는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타는 심장은 인간의 마음으로서 하느님과 동료 형제자매들을 향한 사랑을 상징한다. 아우구스티누스 회원들은 하느님을 알고 우리의 삶 안에서 신성한 사랑을 체험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살아있는 뜨거운 심장을 지닌다. 책은 열려 있든 닫혀 있든 거룩한 책인 성경,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누스께서 그리스도교로 회심·개종한 사건을 상징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과 개종은 성경을 “집어 읽으라(take and read)”라는 목소리에 따른 것이라는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 옆 그림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문장에서도 라틴말로 된 표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심장을 관통하는 화살은 “당신께서는 당신 말씀으로 제 마음을 찌르셨습니다.(Vulnerasti cor meum verbo tuo.)”라는 성인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꿰뚫어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 계속 성장하도록 부르시는 것을 상징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의 첫 구절을 다음과 같이 쓴다: 「당신의 한 줌 피조물 인간이 감히 당신을 기리려 드옵나이다. 당신을 기림으로써 즐기라 일깨워 주심이오니, 님 위해 우리를 내시었기 님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착잡하지 않삽나이다.You have made us for yourself, O Lord, and our hearts are restless until they rest in You.(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1권 1.1, 최민순 옮김, 바오로딸, 1965·2002년, 2판16쇄)」
참고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개종 장면은 번역자 성염 선생의 각주를 포함하여 다음에서도 읽을 수 있다: 「집어 들었습니다. 폈습니다. 그리고 읽었습니다.(*arripui, aperui, et legi 이 세 단어는 카이사르의 승전보 ‘왔노라, 보았느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세 마디를 연상시킨다) 제 눈이 가서 꽂힌 첫 대목을 소리 없이 읽었습니다. “술상과 만취에도 말고, 잠자리와 음탕에도 말고, 다툼과 시비에도 말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에 빠져 육신을 돌보지 마시오.”(로마 13,13-14) 저는 더 읽을 마음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 구절의 끝에 이르자 순간적으로 마치 확신의 빛이 저의 마음에 부어지듯 의혹의 모든 어둠이 흩어져버렸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회심의 마지막 장애가 완전한 금욕생활이냐 성애의 만족이냐는 양자택일이었다는 앞의 고백으로 미루어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육욕의 그 질긴 사슬에서 놓여나는, ‘자유의지의 갑작스러운 해방’을 체득한 듯하다)(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Confessiones-8권 12.29, 성염 역, 경세원, 2016년)」
방패 문장 아래에는 라틴어로 “In Illo uno unum”이라는 표어가 쓰여있다. 이는 ‘인 일로 우노 우눔’이라고 읽으며, 단어 순서대로 영어로 옮기면 “In Him, one, (we are) one.”으로서 직역하다시피 우리말로 옮기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우리는) 하나”로 번역할 수 있다. 이 표어는 말 그대로 교회의 일치를 향한 신임 교황의 열망을 표현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표어 역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시편 128편에 대한 해설에서 오는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말 시편 128/127편은 다음과 같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모두 그분의 길을 걷는 이 모두! 네 손으로 벌어들인 것을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이 있어라. 네 집 안방에는 아내가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네 밥상 둘레에는 아들들이 올리브 나무 햇순들 같구나.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께서는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어 네 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아들의 아들들을 보게 하시리라. 이스라엘에 평화가 있기를!”(시편 128/127, 1-6)
이 시편에 대하여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모두 그분의 길을 걷는 이 모두!” 하는 1절을 두고, 「주님께서는 많은 이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지만, 이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므로 이어지는 구절들에서는 “네 손으로…네가…너는…” 하시면서 ‘단수’로 말씀하십니다.……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복수로 일컬을 때 저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알아듣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럿이면서도 어떻게 하나입니까?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며, 하늘에 계시는 우리의 머리이신 분을 따라 그분의 지체들이 그분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이 시편을 들을 때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된 그리스도를 두고 말씀하시는 시편으로 생각합시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우리는 주님의 길을 따릅니다. 그러므로 정결한 두려움, 영원히 이어지는 두려움으로 주님을 경외합시다.」
참고로,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규칙서는 서두부터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다음 이웃을 사랑할 것이니,”(규칙서 1,1) “너희가 하나로 모여 있는 첫째 목적은 한 집안에서 화목하게 살며, 하느님 안에서 한마음 한뜻이 되는 것이다.(사도 4,32 참조) 너희는 아무것도 자기 것이라 말하지 말고 모든 것을 너희의 공유로 할 것이다. …… 사실 너희가 사도행전에서 읽는 바와 같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규칙서 1,2)라고 기록하면서 “하나”를 철저하게 강조한다.
아우구스티누스회 규칙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에서 우리는 한마음과 한 정신이 되고자 한다. 우리는 모두 함께 순례하는 순례자이며, 우리의 목표이자 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지속적인 동반자이시다. 우리의 여행길에서 우리의 활동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체험과 조언으로 꼴을 갖추며 세 가지 본질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으니, 이는 곧 깊은 내면생활의 방법들로 계속하여 하느님을 찾음,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 그리고 지속적인 진리의 추구」임을 기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