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단식

사순 시기에 온 교회는 금육과 단식이라는 구체적인 실행을 통해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한다는 ‘재계齋戒’ 기간을 보낸다.

금육과 단식은 궁극에 가서는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허기짐과 갈증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몸으로 단식하고 금육하면서 영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구체적이고도 깊은 성찰을 하기 위함이다. 나와 내 삶 안에 자리를 잡아 영육 간의 건강을 해치는 나쁜 습관을 발견하고 이를 떨구어 하느님께로 다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함이다. 금육과 단식은 특정한 음식의 절제이기도 하지만 건강하지 않거나 해로운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간과 공간 마련이며, 죄책감을 느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비전을 마련하기 위한 수련이요 훈련이다. 그렇다고 금식이나 단식이 하느님의 응답을 이끌어내거나 얻기 위한 수단은 아니다. 하느님 앞에 선 나의 신앙을 점검하고, 바람직한 자세를 마련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육체적인 단식’과 더불어 ‘미디어 단식(media fasting/fast)’이나 ‘미디어 다이어트’라는 말을 심심찮게 사용하는 시대를 산다.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각종 매체와 디지털 기계 기술에 복잡하게 의존하는 시대를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디지털 단식원’, ‘고독 스테이’, ‘디지털 디톡스’, ‘도파민 단식’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인위적으로 이를 유도하기 위한 예약제나 회원제 동아리를 운영하며 벌이를 하는 이들도 있고, 미디어 단식을 위한 안내서나 책자, 혹은 프로그램들도 다양하게 넘쳐난다. 새로운 세포의 양성이나 기본적인 반응 관찰 기간이 21일이고, 달걀이 병아리가 되는 데에 21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며, 보통 단식이 21일 단위로 된다는 것에 착안하여 21일 짜리 미디어 단식 프로그램마저 있다.

TV, 패드, 컴퓨터, 휴대 전화기, 소셜 미디어, 게임, 음악, 영화, 유튜브, 넷플릭스, 홈 쇼핑, ……우리를 포위한 각종 미디어(매체)와 디지털 기기들은 다양하다. 우리는 집안과 사무실에 이미 자리 잡은 각종 스마트 기기에 만족하지 못한 채 주머니에 넣고, 손목과 발목에 차고, 머리에 뒤집어쓰고, 몸에 입고, 이제는 조만간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까지 한다. ChatGPT는 미디어 및 스마트폰 사용 시간에 관하여 2023년 한국 언론 진흥 재단의 조사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어린이는 하루 평균 184.4분을 미디어에 소비하였고, 중·고등학생의 경우 학습 외 스마트폰 및 태블릿 PC 사용 시간이 평일 평균 4시간 17분, 주말에는 6시간 40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치를 초과하는 수준으로, WHO는 만 2~4세 유아의 미디어 이용 시간을 하루 1시간 이내로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라는 답을 준다.

평생 TV 시청 시간과 소셜 미디어 사용 시간에 관해서도 물었더니, 「한국인의 경우(80년 기준) TV 시청에 8~9년 정도를 소비하고, 소셜 미디어에 8.4년을 사용합니다.」 한다. 이는 우리가 평생 17~18년 동안 스크린에 노출되어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간단한 수치만으로도 전 세계 인간도 인간이지만, 그들의 평균을 웃도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디어 집착은 가히 놀랍다. 각종 매체가 우리를 이끌어가는 ‘긴 꼬리(long tail) 전략’은 대단히 영리하다. 능수능란하다. 우리를 조금씩 파고들어 그 올가미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게 한다. 미디어 단식의 실행 방법에 관한 몇 가지 예들을 아래에 제시한다. 개인에 따라 사정에 맞도록 이런 식의 실행 계획을 각자 세울 수 있을 것이다:

TV 앞에 ‘저를 보지 마세요!’라는 글 써 붙이기

집착하는 특정 채널을 의도적으로 건너뛰기

습관처럼 켜두는 TV나 라디오 켜지 않기

인터넷, TV, 라디오, 휴대 전화기, 음악 없이 지내는 하루 설정하기

하루 중 나의 미디어 사용 시간, 곧 미디어 섭취량, 사용량을 측정하고 제한하기

내가 언제 ‘주로’, 혹은 ‘반드시’ 전화기를 확인하고 있는지 패턴 점검하기

전화기를 확인하려는 충동이 무엇 때문인지 원인 파악하기

확인이 불안 때문이라면 무엇에 대한 불안인지 깊이 숙고해보기

누군가와의 대화나 토론을 통해 나의 미디어 접촉 실태를 점검하기

이를 구체적으로 공책에 글로 써보기

유튜브와 같은 프로그램 시청 때 끝내는 시간 타이머 설정하기

책 읽기, 요리하기, 산책하기, 만들기, 운동하기, 친구 초대하여 함께 시간 보내기

등등.

하느님보다 사람에 눈길을 돌리고 이에 집착하면서 대중 매체나 디지털 기술에 복잡하게 의존하고 있는 나의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미디어 과다복용으로 소화불량이나 비만에 걸린 나를 날씬하게 돌려놓아야 한다. 미디어와 기계 기술이 우리 삶의 구조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내가 무엇에 허덕이며 정신없이 살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나를 사로잡는 잡다한 우상들로부터 진리이신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기 안의 악마들, 성령이 아닌 기계 속의 유령을 의식해야 한다. 유령들이 나를 인도하도록 방치하지 말고 내가 나의 의지로, 나의 필요를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해야 한다. 일단 멈추면 분명히 보일 것이며 단식으로 가뿐해진 나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과 나를 다시 연결하기 위해 나를 옭아매고 있는 연결들을 끊도록(disconnect to reconnect) 은총을 기도해야 한다.(*이미지-구글)

3 thoughts on “미디어 단식

  1. 글을 읽으면서 완죤~ 딴 이야기이지만,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의 약 90%도 아침식사를 영어로 왜 Breakfast라 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Fasting(단식, 명사로서… 형용사는 빠르다..이지만..)의 의미를 1차원으로만 생각해서 그렇지요. 본의 아니게 잠을 자기에 수동적 Fasting을 드디어 Break(부수는..)행위가 아침 식사가 되는것이지요…

    가시적 대선이 앞으로 와 있는 이 시점에… 진정으로 MediaFast를 해야할거 같나이다…. 좋은 식견에 감사와 탄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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