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일 ‘다’해(루카 10,1-12.17-20 또는 10,1-9)

오늘 복음 대목은 제자들의 사명에 관한 메시지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가 민족들의 복음화에 관해 지녀야 할 내용과 태도에 많은 영감을 준다. 1.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앞서 둘씩 보내시며” 복음의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도”, 곧 ‘선교사’요 ‘파견자’라고 부르시는 열두 제자를 선발하시고(루카 6,13) 그들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주게 하셨다.(루카 9,1)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해(루카 9,11ㄴ-17)

지난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낸 교회는 오늘 다시 한번 또 다른 교의의 옹호를 위해 설립된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거행하면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그날까지 교회가 당신을 기억하여 성체성사를 거행하도록 명하신 사실을 기린다. 예수님의 교회는 매일, 매주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도 성체성사의 다할 길 없는 신비를 특별한 날, 곧 성령 강림절 후 두 번째

성령 강림 대축일 ‘다’해(요한 20,19-23)

교회는 부활 시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낸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3-17장에 이르는 이른바 ‘고별사’에서 모두 5번에 걸쳐 “보호자”요 “진리의 영”이신 “성령”(파라클리토, παράκλητος, paráklētos라는 말에서 유래, 우리말 성경에서는 모두 “보호자”로 옮겼다. 위로자나 변호인 등의 뜻이 담겼고 현대 영어에서는 Advocate, the Spirit of truth로 옮겼다)을 약속하셨는데(참조. 요한 14,16-17.26;15,26-27;16,5-11.12-15), 교회는 성령 강림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주님 승천 대축일 ‘다’해(루카 24,46ㄴ-53)

암브로시안 전례력을 따르는 곳이나 미국의 몇몇 교구들은 부활 제7주일을 지내지만, 이탈리아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많은 곳에서는 부활 후 40일째(부활 제6주간 목요일)에 지내는 주님 승천 대축일을 주일로 옮겨 지내는데, 전례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기리는 일곱 번째 주일의 의미를 상실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루카복음의 저자와 사도행전의 저자는 동일 인물로 알려지는데, 루카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 곧 루카복음의

부활 제6주일 ‘다’해(요한 14,23ㄴ-29)

부활 시기를 지내고 있는 교회는 지난주부터 예수님 ‘최후의 만찬’이 담겨있는 이른바 ‘예수님의 고별연설’(참조. 요한 13,31-16,33)에서 전례 복음들을 취한다. 이 복음의 내용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요한 13,1) 제자들과 당신 공동체가 부활하시어 살아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안에서 어떻게 현실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깨우치고자 하시는 말씀들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장면에서 몇몇 제자들이

부활 제5주일 ‘다’해(요한 13,31-33ㄱ.34-35)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분은 항상 부활하신 우리 주 그리스도이시다. 요한복음은 이를 통해 우리 안에 살아계시고 영광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신비에 참여하고 이를 이해하기 위한 본질적인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다. 부활하시고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착한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양 떼(부활 제4주일 복음)임을 밝혀준 복음은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결정적이고도 최종적인 계명(부활 제5주일 복음)을 주셨다는

부활 제3주일 ‘다’해(요한 21,1-19 또는 21,1-14)

어떤 이가 책을 쓰면서 책을 쓰게 된 목적을 결론으로 밝혀야 그 책은 비로소 출판된다. 그런데 이 결론 부분에 이어서 어떤 장을 추가하고자 한다면 이전 내용과 어떤 연관성을 지을 수 있는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이 제4복음서에서도 일어난다. 지난주 복음에서 이미 들었던 제20장의 결론에 이어 오늘의 전례 복음은 그 이후에 추가된 제21장의 내용

부활 제2주일 ‘다’해, 하느님의 자비 주일(요한 20,19-31)

예수 부활 대축일 다음 주일은 전통적으로 ‘사백주일(卸白主日-풀다, 떨어지다, 낙하하다 할 때의 ‘풀 사卸’)’로 불리었다. 부활 대축일에 세례를 받은 새 영세자들이 영혼의 결백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고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낸 다음 부활 제2주일에 벗었기 때문이다. 많은 지역에서는 이날 어린이들의 첫영성체를 거행하기도 하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성식을 거행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다’해(루카 22,14-23,56)

칼바리에서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충돌하였습니다. 복음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말씀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는 사람들의 말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은 “너 자신이나 구해보아라”하고 계속 말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루카 23,35)라고 말하고, 군인들도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37절)라고 똑같이 말하며,

사순 제5주일 ‘다’해(요한 8,1-11)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는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사순시기가 종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하느님 자비의 절정을 맛보게 된다. 제4복음서만이 전하고 있는 오늘 복음은 상당히 물의를 빚을만한 내용이라고 여겨져 교회의 역사 안에서 매우 독특한 운명을 겪었다. 이 본문은 오래된 고대의 필사본에서는 대목 자체가 빠지기도 하고, 라틴 교부들에 의해서는 4세기까지 무시되기도 하였으며, 희랍의 교부들은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