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mentor #10095

성인聖人들의 꿈: 환시

* 글. 홍기령(데레사,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대학원 여성학과에서 ‘여성주의 정신분석학, 주제통합과정에서 ’21세기 행복한 사회인’을, 한국 예수회 센터에서는 꿈과 영적 치유에 대해 강의했다.) 인간에게는 평범한 꿈과 구분되는 특별한 꿈이 있다. 자신의 무의식 대신 하느님을 뵙는 꿈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찰 사건이다. 토마스아퀴나스 성인은 「신학대전」에서 하느님을 만나 뵙는 꿈을 ‘환시’(vision)로 부르며 그러한

12일간의 크리스마스The Twelve Days of Christmas

우리에게는 약간 생소할 수도 있는 ‘12일간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영국 캐럴이 있다. 1558년부터 1829년까지 무려 270여 년간 영국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에는 공식적으로 성탄을 기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누군가가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을 위해 교리를 가르치거나 잊지 않게 하도록 이 노래를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노랫말은 어린이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동요처럼 다음 절의 가사를 계속 더해가는 형식을 갖추면서 표면상 알려지는 의미와 함께

성탄절(Hamlet)

『구세주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이 올 때는 새가 밤새 울어 새벽을 알린다. 그 어떤 귀신도 활개치지 못하고 밤은 고요하고 별들마저 잔잔하니 요정들은 꼼짝을 못 하고 마녀들도 술책을 부리지 못한다. 은혜롭기 그지없고 그지없이 거룩한 날. Some say that ever ‘gainst that season comes Wherein our Savior’s birth is celebrated, The bird of dawning singeth all night long:

루카 2,16-21(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나’해)

성탄 후 8일째 되는 날로서 복음상으로는 예수님의 할례와 작명 기념일이다. 교회는 1970년 이래로 오늘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낸다. ‘하느님의 어머니’, 곧 ‘천주의 성모’라는 호칭은 초 세기부터 신자들이 사용했으며 우리 성모송에 담겼다. 성모 마리아께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한 것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이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천주의 성모 마리아 축일’을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12월 27일)

성탄 8부 기간에 지내게 되는 성 요한 사도의 축일은 축일의 날짜가 성인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한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서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던 그가 말씀의 육화 신비를 기리는 사랑의 축제 기간에 아기 예수님과 함께 기려지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갈릴래아의 어부로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동생이다. 요한은 원래 세례자 요한의 열심한 제자요, 다른 유다인들과 같이 구세주의 임하심을

루카 2,22-40 또는 2,22.39-40(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나’해)

성탄 후 12일간 주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동안 만나게 되는 유일한 주일에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기리는 주일을 지내면서 인간의 시간 속에 들어오신 영원하신 하느님의 “아기가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40)라는 사실을 기념한다. ‘가족’이라는 가치가 무너져 가는 현시대에 내가 사는 ‘가족’의 가치를 돌아보는 축일이기도 하다. 성탄절에 교회가 이스라엘의 가난한 목자들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별의 인도를 받은 세 명의 동방박사들(그리스어로 마고이)은 갓 태어난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참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들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왕이 아닌 “동방박사(현인賢人)”로 묘사하는데, 8세기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이름이 멜키오르, 카스파르, 발타사르로 정해진다. 이들을 그리려는 이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는 장면을

성탄

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동방박사들이 먼 곳에서 길을 떠나며 땅은 동굴 하나를 연다. 아무도 무심하지 않고  배은망덕하지 않게 하소서. 오늘 아담의 단죄가 풀리고 더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가 아니니 하늘과 지극한 하나가 되어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멘! (체사레아의 성 바실리오, 330~379년)

부드러우신 성모님

부드러움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사랑 모든 탄생에 대한 환희 모든 생명이 살아서 열매 맺기를 바라는 지극한 마음 – 모리스 벨레Maurice Bellet(1923~2018년)

고백록(7)

3517. (“진리는… 공간 간격으로 무한한 것이 아니고 능력으로 무한하여 인간의 사유에 포착될 수 없다. 전체적으로 무한totum infinitum하다고 표현할 만하다.”-Epistulae 118,24) 3518. 건설하는 사랑,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는 겸손의 토대에서 건설하는 저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토대에서부터 사유하라. 그대 안에 겸손이라는 기초fundamentum humilitatis를 파 내려가라. 그러면 사랑이라는 정점fastigium caritatis에 도달하리라!”-Sermones 69,4)…추정과 고백 사이가 얼마나 거리(학자들의 사변에서 그치는 추정praesumptio과 믿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