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mentor #10095

마르 6,7-13(연중 제15주일 ‘나’해)

오늘 복음은 공관복음이 공통으로 전하는 복음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을 예수님이 자기 고향인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시고, 또 세례자 요한이 죽음을 당한 다음에 배치한다. 이는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제자들을 파견하셨다는 이야기가 된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파견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기 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사명 수행에서 지녀야 할 생활 방식과 태도에 대하여 당부하신다.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진 파견이었지만, 제자들의

떠남

어느 날 아침, 형제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에 한 형제가 사막교부의 이야기 한 토막을 전해준다. 온갖 걱정과 산만함으로 시달리는 젊은 제자가 고명하신 스승님께 “저는 처자식도 없이 세상을 떠나 이처럼 사막에 사는데, 왜 이리 산만합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스승님께서 “너에게 ‘처자식’은 없어도 ‘저 자식’이 있잖아? 떠났어도 떠난 것이 아니지.” 하시더라는 것이다. 우스개로 들었지만, 우리는 늘 함께 사는 누군가를,

교황, 코미디언들과의 만남

지난 2024년 6월 14일 바티칸 문화교육부와 커뮤니케이션부 주관으로 15개국에서 온 유명 코미디언들 107명과 교황님 간의 만남이 있었다. 다음은 이날 코미디언들에게 주신 교황님의 연설 전문의 번역이다.(*사진과 연설 원문 출처-바티칸 공식 사이트) 이 말씀에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내용과 아름다운 기도문이 담겨있다. 말씀의 뒷부분에는 이 모임에 참석하였던 그래피티 전문가요 길거리 예술가로 유명세를 탄 마우팔Maupal(Mauro Pallotta)이라는 분이(※참조-길거리 예술가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7월 5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21년 충남 솔뫼에서 태어났다. 양반 가문이었으나 그의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우르술라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집안이 몰락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열여섯 살인 1836년 사제가 되고자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떠났다. 1844년 부제품을 받은 그는 선교 사제의 입국을

시편 6편과 돈 보스코

“주님, 당신의 진노로 저를 벌하지 마소서. 당신의 분노로 저를 징벌하지 마소서.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주님, 제 목숨을 건져 주소서. 당신의 자애로 저를 구원하소서.”(시편 6,2-3.5) 시편 저자는 죄를 지어 벌을 받아 마땅한 자신을 돌아보면서도 자비와 자애로 주님께서 구해주시기를 간청한다. 그리스도인, 특별히 교육자가 이상으로 삼는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대하신 것처럼

마르 6,1-6(연중 제14주일 ‘나’해)

전도 여행을 나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고향 나자렛으로 가신다.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많은 이들이 주시하며 예수님을 관찰한다. 고향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닌 선입견, 천한 노동 계급이라는 예수님의 출신 배경, 그 배경을 잘 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못마땅하게 여긴다. 오늘 복음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 우리의 습관적인 태도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일상 안에서 그저 그

성 토마스 사도(7월 3일)

「전례복음(요한 20,24-29): “네 손가락을 여기 대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요한 20,27) 오늘날도 여전히 가난하고, 목마르며, 벌거벗고, 굴욕을 당하거나 노예가 되며, 감옥에 갇히거나 병원에 아파 누워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몸에 예수님의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인간의 길을 택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우리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살피면서

하느님의 손가락

아론이 땅의 먼지로 모기들을 만들었을 때, 그에 대적하던 파라오의 요술사들도 그렇게 하려 하였으나 하지 못한 뒤에, 요술사들은 아론의 일이 “하느님의 손가락이 하신 일”(탈출 8,15)이라 변명한다. 이처럼 하느님의 손가락이 하신 일은 아무도 대적하거나 흉내 낼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말씀을 나누신 다음 “당신 손가락으로 쓰신, 돌로 된 두 증언판을 그에게 주셨다.”(탈출 31,18) 이처럼 하느님의

가톨릭교회의 덕德

사추덕·향주덕·성령의 선물과 열매 *이 글은 덕德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가 발행한 <가톨릭교회 교리서> 개정 제2판 16쇄, 2020년 7월, 1803-1845항을 발췌하여 수록한 내용임 1803.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필리 4,8). 덕(德)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에 관한 여러 이름과 뒷이야기

*1994년 헨리 나웬Henri Nouwen(1936~1996년) 신부는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A Story of Homecoming>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이 책은 모스크바에서 자동차로 두어 시간 떨어진 에르미타쥐Hermitage 박물관에 소장된 렘브란트Rembrandt(1606~1669년)의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이라는 그림을 따라가며 루카복음 15,11-32의 비유를 설명하는 책이다. 그림은 렘브란트 생애 말기 작품으로서 262cm × 205cm의 큰 그림이다. 친구의 방문에 걸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