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 곧 재의 수요일에는 ‘가’, ‘나’, ‘다’ 해 모두 마태 6,1-6.16-18에서 전례 복음을 취한다. 이는 이 복음에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할 ‘자선, 기도 단식’이라는 사순 시기의 실천에 관한 세 기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세 기둥은 구약으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의 삶을 지탱하고, 개인적인 삶은 물론 교회 공동체의 삶을 쇄신하기 위한 기본 골격이 되어 왔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실 때, “큰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들고 따른다. 어떻게라도 그분 눈에 띄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싶어 밀려든다. 그것이 안 되면 그분 옷자락이라도 한번 스쳐보려 한다. 예수님께서는 급기야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시고, 배에 올라앉으시어 군중은 호숫가 뭍에 남겨둔 채 하느님 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주신다.(참조. 마르 3,7-9;4,1-2) 예수님께 그렇게 몰려든 이들은 영적·육적
주님께서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고자 하실 때 당신 “손을 뻗어” 당신이 주님이심을 알게 할 것이라고(참조. 탈출 7,5) 하신 뒤, 모세의 형인 아론이 주님의 명에 따라 “지팡이를 든 손을 뻗어 땅의 먼지를 치자”(탈출 8,13) 이집트의 온 나라에서 땅의 먼지가 모기로 변하였다. 모세 역시 주님의 명에 따라 하늘로 손을 뻗자 “손으로 만져질 듯한 어둠”이 이집트 땅을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물러나신 예수님의 거룩한 이동 마태 4,12에서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할 때, “물러가셨다”는 성경의 언어인 희랍어로 ἀνεχώρησεν(아네코레센, anechōrēsen, 3인칭 단수 과거 직설법)이다. 아네코레센은 물러남, 은둔, 회피, 철수 등을 뜻하는 ‘아나코레오(anachóreó=to withdraw, to depart, to go away)’라는 동사에서 파생되는데, 신약성경에서 이러한 뜻을 지닌 말이 등장하는 곳은 마태 2,12.13.14,22;4,12;9,24;12,15;14,13;15,21;27,5
깨어 있음은 단순히 잠들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주님을 기다리는 진지한 기도이며, 졸음, 그리고 무기력과 싸워야 하는 수고이다. 이 싸움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보이지 않는 분을 기다리는 희망이 얼마나 인내를 요구하는 일인지 깨닫게 된다. 성 바실리오(St. Basil the Great, 329?~379년)는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 하고 물으며 이렇게 답한다. 그리스도인은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의 기다림은 겸손한 기다림이며, 사랑에 찬
‘회개’라는 말은 신약성경에서 명사나 동사의 형태로 50여 회 넘게 보인다. 명사 ‘회개’는 메타노이아(μετανοία)이고, 동사 ‘회개하다’는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이다. 메타노이아의 중요한 어근은 ‘누스’(νοῦς, mind, understanding, thought, opinion, judgment, plan)인데, 여기에 전치사 ‘메타’(μετά, after, with, around, ~넘어서, 변화·전환 뉘앙스)가 접두어로 붙어서, 마음이나 생각의 돌이킴을 뜻한다. 공관복음, 사도행전, 서간,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두루 보이는 이말을 요한복음은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 ‘회개하다’라는 동사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어라”(마태 24,42;25,13;26,38 마르13,35.37;14,34) 하고 명하셨다. 또한 “깨어 기도하여라”(마태 26,41 마르 14,38 루카 21,36) 하시며, “깨어 지켜라”(마르 13,33)고도 하셨다. 제자들이 깨어 있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시기도 하셨고(마태 26,40 마르 14,37), 깨어 있는 종들의 행복을(루카 12,37)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반복하여 “깨어 있어라” 하신 까닭은 문맥에 따라 여러 층위로 드러난다. 첫째, 주인이 언제 올지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겪게 될 세상의 미움과 ‘박해’에 관하여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일찍이 산상설교에서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마태 5,11)고 하셨고, 또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24,9 마르 13,13 루카 21,17)라고 제자들에게 분명히 일러주셨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며 겪는 박해를 자신의 삶으로
저의 임금이신 주님, 당신께서 정말 제 삶의 주인이시고 임금이십니까? 임금이시라면, 그 말이 제 생각과 말과 행동, 곧 제 존재 전체가 당신의 다스림 아래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3-4) 주님, 제가 당신을 통하여 생겨났습니다. 당신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우리 마음 안에 구축하기 위한 4가지 구체적인 방법 성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년)께서는 사도 순방을 위해 1986년 11월 23일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을 방문하신 바 있다. 그날은 마침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었는데, 교황은 미사를 집전하시면서 강론을 통해 이날 전례의 핵심 주제가 그리스도 십자가의 열매인 “마음의 평화가 곧 평화의 핵심(Peace of he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