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은 친밀의 자리, 서로를 발견하는 자리, 기도의 자리, ‘오늘 어땠어?’하고 묻는 자리, 함께 먹고 마시면서 ‘좀, 더 들어!’라고 말하는 자리, 옛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자리, 웃음과 눈물이 있는 자리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서로서로 간에 어쩔 수 없는 거리와 한계가 다가서는 자리, 부모들 사이에서 애들이 긴장을 느끼는 자리, 형제와 자매들이 그들의 분노와 질투를 내뱉는 자리,
사랑은 그대에게 영광의 관을 씌어주지만, 또한, 그대를 십자가에 못 박기도 하는 것. 사랑은 그대를 성장하게 하지만, 또한 그대를 꺾어 버리기도 하는 것.…사랑은 마치 곡식 단을 거두듯 그대를 자기에게로 거두어들인다. 사랑은 그대를 타작해 알몸으로 만들고, 사랑은 그대를 키질해 껍질을 털어버린다. 또한, 사랑은 그대를 갈아 흰 가루로 만들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그대를 반죽한다. 그런 다음 신의 성스러운 향연을
누군가를 만진다는 것은 자비의 동작이다. 누군가를 만진다는 것은 그와 함께 소망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진다는 것은 나의 몸과 손으로 그에게 조용히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진다는 것은 내가 여기 너와 함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진다는 것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진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그에게 알리고 그가 누구인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진다는 것은 존중, 인정,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년)가 아예 외워버렸다고 한 시(*이미지-영문 구글) 사랑이 나를 오라 하지만 죄로 더럽혀지고 추한 내 영혼은 뒷걸음질 친다. 들어오자마자 멈칫거리는 나를 사랑은 재빠른 눈으로 보고 다가와 행여 내게 부족한 것이라도 있는지 다정히 물으신다. “저는 여기 어울리는 손님이 아니라서”라고 대답하니 사랑이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바로 그 손님!” “제가요? 사랑스럽지도 않고 반갑지도 않을 제가요? 저는 감히
용서는 눈물이 나는 나의 억울함을 주님께서 알아주실 것이라는 믿음, 용서는 나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그 사람도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아가는 것, 용서는 밉고 싫은 사람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하느님께서 불쌍한 그 사람도 사랑하실 것을 알아가는 과정, 용서는 나를 힘들게 하고 상처 준 사람들 심지어 원수들과도 하나가 되게 하는 힘, 용서는 너도 하느님을 향하고 나도 하느님을 향하여
게으름이라는 개념은 이 세상과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개념이다. 게으름은 얼핏 보기에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그저 무기력한 무관심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에게 뭔가 얘기를 하려고 할 때 무척 어렵고 아예 불가능하게까지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많은 경우에 게으른 사람을 만난 탓이다. 게으른 사람들은 아름다운 생각, 기막힌 구상, 고무적인 전망…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어떤 경기에서든지 막판의 결정적인 실수라는 것이 종종 벌어진다. 더는 기회가 없고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이 막판의 실수(the last minute mistake), 한 번의 실수라는 것을 우리 인생에 견주어 본다면 성실하고도 훌륭하게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 단 한 번의 불행했던 사건,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실패, 한 번의 격정, 한 번의 잘못과 죄로 헤어날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상의 심장입니다. 그분께서는 온 우주에 생명을 주시며, 어제, 오늘, 그리고 언제까지나 인류라는 빈 무덤에서 터져 나오는 빛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특별하고 독특하며 유일한 사건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 죄에 대한 사랑의 선포입니다. 부활절은 “달리는 발의 축제”입니다. 모두가 지치고 슬퍼하며, 실망에 가득 차, 무덤에 도착합니다.…그랬던 그들이 다시 달려 나갑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승리를 알리는 역동적인 열정을
시신屍身 소생이 아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우화가 아니다. 유령이나 영혼의 유체 이탈이 아니다. 죽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다시 살아난다는 것도 아니다. 『죽었다가 살아났다가 다시 죽어야 할 몸으로 사는 라자로(C.S.루이스)』가 아니다. 두려움에 싸여 있던 제자들이 갑자기 설쳐대는 것이 부활의 증거가 아니냐는 들이댐만으론 현대인에게 설득력이 약하다. “하느님은 사랑”(1요한 4,8.16)이시라 했으니, “서로 사랑”(요한 15,12.17) 해야 한다고
서양 사람들이 엄지와 검지를 비비는 시늉을 하면 이는 ‘돈’을 뜻한다. 그런데 이를 고차원적으로 승화시킨 민족이 있다. 한국인들은 엄지와 검지로 작은 하트, 소위 Korean Finger Heart(K-하트, 이미지 출처-나무위키)를 만들어 가히 세계적인 유행으로 만들었다. 세상 어디서나 한국인들을 만나는 외국인들은 두 손가락으로 만드는 작은 하트를 내보이며 미소 짓는다. 그런데 그보다 한참 전 뉴욕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였던 토마스 호라Tho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