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요한 20,19-31)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요한 20,19-31) 부활 제2주일은 일명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서 ‘가’ ‘나’ ‘다’해 모두 복음이 같다. 그러나 독서는 해마다 바뀐다. ‘부활 후 첫 번째 주일’이라 하지 않고 ‘부활 제2주일’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부활 시기는 부활절 다음 일곱 번째 주일인 성령강림 대축일에 끝난다. 그러나 매 주일을 ‘작은 부활절’로 거행할 것이다.

셋째 날의 여인이신 성모님

‘가경자’이신 안토니오 벨로(Antonio Bello, 애칭 토니노, 1935~1993년) 주교님이 성모님께 남긴 기도문 중에 성모님을 ‘셋째 날의 성모님’이라 호칭하며 드린 아름다운 기도문이 있다. 주교님은 이탈리아 분으로서 그분의 거룩한 삶을 기려 교회가 2007년에 공식적인 시복·시성 절차에 들어갔다. 그는 교회가 ‘앞치마 교회(the Church of the apron)’라고 불리기를 꿈꾸었다. 주교님께서 이렇게 독특한 듯한 용어의 교회상을 그린 것은 예수님 최후의 만찬에서

성 요셉과 살레시오회

*다음은 2026년 성 요셉 대축일에 ‘살레시오 소식지(ANS)’에 실린 글의 번역문과 원문이다. 살레시오회의 회헌이 성 요셉에게 살레시오 수도회의 주요 수호성인들 사이에서 명확한 법적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면, 살레시오 전통은 그러한 역할을 생명력과 애정, 그리고 구체적인 신심으로 채워왔다. 돈 보스코로부터 가장 최근의 총장 신부들에 이르기까지, 요셉은 수도회의 보호자, 노동자와 살레시오 수사(평수사)들의 수호자, 집의 수호자, 그리고 돈 보스코 자신의

하느님의 자비와 성녀 파우스티나

교회에는 성녀 파우스티나St. Faustina Kowalska의 시성과 함께 ‘주님 수난 성 금요일’부터 부활 제2주일까지 이어지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9일 기도 관습이 생겨났다. 이 기간에 교회는 기도를 통하여 성녀와 함께 특별히 ‘ABC’(A – Ask for His Mercy.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라. / B – Be merciful.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C – Completely trust in Jesus. 예수님을 온전히

신애론(2-8)

제8장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사랑하기를 얼마나 열망하고 계신가? 우리 구세주의 구원이, 영혼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갖가지 양상으로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으나, 그 구원 은총은 우리가 앞으로 어디선가 보게 되듯이(본서 10권 1장과 2장), 모든 것과 합류하게 되며, 그것이 없이는 아무것도 유익한 것이 못 되는 것이다. 케루빔Cherubim은 번쩍이는 불칼을 들고 지상낙원 문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불같은 사랑의 칼로

일곱 칠七

성경의 ‘일곱’을 추적하다가 일곱을 두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곱의 매력에 빠진다. 기원전 2500년이나 3천 년쯤에 티베트에서 시작하여 히말라야산맥을 가로질러 지금의 파키스탄을 관통하는 인더스 강을 중심으로 인류 고대 문명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이 생겨나고 숫자라는 것들이 생겨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1961년~)는 자신의 잡학사전에서 숫자에 있는 곡선은 사랑을 나타내고 교차점은 선택의 기로를 나타내며 가로줄은 집착을 나타낸다고 풀이하면서 그중 ‘7’은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가’해(요한 20,1-9)

※주님 수난 성 금요일 강해와 성 토요일에 관한 묵상은 해당 링크를 참조하여 주세요. 오늘은 축일 중의 축일이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인 부활 대축일이다. 오늘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기쁘게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이는 우리 주님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고 끔찍한 죽음으로 죽임을 당하셨으며, 무덤에

성 토요일

「형제 여러분,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늘 깊은 침묵이 온 땅을 덮고 있습니다. 과연 엄숙한 침묵과 고독입니다. 이렇게 깊은 침묵이 온 땅을 덮고 있는 것은 임금님께서 주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육신 안에서 주무시고 옛적부터 잠자고 있던 이들을 깨워 주셨기에 땅은 공포에 떨어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육신 안에서 돌아가시고 지옥은 잠 깼습니다. 주님은 마치 목자가 잃어버린

주님 수난 성금요일 ‘가’해(요한 18,1-19,42)

이미 기원전 몇백 년 전에 예언자 즈카르야는 “그들은 나를, 곧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외아들을 잃고 곡하듯이 그를 위하여 곡하고, 맏아들을 잃고 슬피 울듯이 그를 위하여 슬피 울 것이다.”(즈카 12,10)라면서 유다의 구원을 예고한다. 오늘 우리들의 묵상과 관상은 즈카르야의 예언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심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과 영광을 드러내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성주간 수요일(마태 26,14-25)

유다 이스카리옷이 수석 사제들로부터 은돈 서른 닢을 받고 예수님을 넘길 기회를 노린다. 제자들은 파스카 축제 지낼 곳을 예수님께 여쭙고, 예수님께서는 ‘아무개 집’을 지정하신다.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라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저마다 “저는 아니겠지요?” 하며 근심한다. 유다 역시 예수님께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여쭙는데, 예수님께서는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라고 대답하신다. 1.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