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예수님과 더러운 영이 들린 아이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20-23)
어느 봄날의 이른 아침, 예수님은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그를 내내 괴롭힌 영으로부터 한 소년을 구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빵을 구워 파는 아도니자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라는 분이 아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여 아들을 구해준 것에 무척 감사했다. 하느님의 선하심에 관한 그의 신앙은 이러한 치유의 체험으로 새로워졌다. 낫게 된 아들을 품에 안고 아들도 울고 아빠도 울고 온 가족이 함께 기쁨으로 눈물을 흘렸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계신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나자렛 출신 라삐는 모인 군중들에게 이렇게 하느님의 보살피심을 드러내었다.
그렇게 군중들이 다시 몰려나간 뒤 예수님이 자기 제자들하고만 남게 되었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물었다. 제자들은 왜 자기들이 악령을 쫓아낼 수 없었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이에 예수님은 이런 종류의 악령은 오로지 기도로써만 쫓아낼 수 있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었다.
요한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곰곰이 되씹어보면서, “기도라는 것이 이런 악령들도 굴복하게 하는 것이라면 굉장히 힘센 것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시 한번 갈릴래아 지역의 흙먼지 길을 걸어 자기들의 길을 갔다. 예수님은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감히 그 누구도 그를 방해할 수 없었다. 또 예수님은 무척 피곤하고 심란한 듯이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옆의 풀숲에서 스승의 친구 메레아가 뛰쳐나와 그의 품에 껑충 뛰어오를 때 예수님의 얼굴은 다시 한번 환해졌다. 예수님은 길을 멈추고 잠시 그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었다. 예수님은 메레아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그 녀석이 얼마나 많이 크고 튼실해졌는지, 제법 멋있는 녀석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기뻤고 다행이라 싶었다. 일행과 함께 온 갈릴래아 지역을 함께 돌면서 검정 털은 윤기가 흘렀고 근육도 붙었다. 메레아는 자기 주인의 보호에 충실했다. 메레아는 계속해서 자기의 스승 주위에 붙어 그를 보호했지만, 가끔 자기의 존재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피해 얼마간 다른 곳에 있어야 하는 것도 알았고, 스승이 많은 사람을 만나느라 바쁠 때나 바리사이 같은 사람들을 만날 때 적당히 자리를 뜨는 법도 알았다.
길을 계속 가면서 요한은 아침나절에 있었던 그 더러운 영에 걸렸던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했다. 그때 요한은 야고보, 베드로와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서 말로 표현이 잘 안 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할 말을 잊은 채 깊은 생각 속에 잠겨 산에서 내려오던 순간이었다. 산 위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진짜로 살아있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보여 주셨었다. 그렇게 산에서 다 내려올 즈음 일행의 앞에는 여지없이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요한은 문득 아침에 메레아가 숲에서 뛰쳐나와 평상시와는 다른 뭔가 이상한 자세를 취했던 것을 생각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 메레아가 그 악령 들린 아이를 바라보듯이 뭔가를 응시하며 온 털을 곧추세우고 이빨을 온통 드러내면서 깊은 곳으로부터 으르렁거렸던 것이다. 예수님 역시 메레아의 그런 태도를 보며 그렇게 이상할 것이 없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메레아를 달랬었다. 요한이 생각하기에 그때 메레아가 악령에 사로잡힌 아이에게서 악령을 보고 이를 스승에게 알리려 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요한은 “참, 이상도 하지. 메레아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이 처음이 아니야. 언젠가 유다가 처음으로 메레아를 만나게 되었을 때도 저런 모습을 취했었던 것 같아. 아마도 메레아가 유다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나 않을까? 사실 그 뒤로도 유다는 되도록 그 개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했잖아. 유다가 어떤 더러운 악령에 사로잡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한이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들에 젖어있을 무렵, 예수님은 다른 두 제자가 빵을 구워 파는 아도니자와 그의 아들 벤자민과 함께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마침 아도니자가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오, 라삐님. 제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결례되지 않는다면 선생님의 종이 오늘 밤 선생님을 저의 집에 모시는 영광을 지닐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을 건넸다. 그리고 일어서면서 땅바닥에까지 닿게 머리를 숙이느라 머릿수건에 묻었던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저의 집 식솔들 모두, 그리고 특별히 선생님께서 악령에게서 벗어나게 해 주신 벤자민이 큰 영광으로 여길 것입니다.” 하고 말을 이었다. “그런 친절을 저희에게 베풀어주시겠다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고 말한 예수님은 차분하게, 그러나 웃음을 지으며 다정하게, 앞머리를 손으로 옆으로 넘기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저에게는 일행이 또 다른 열둘이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아도니자씨와 가족들에게 너무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요?” “천만에요, 선생님. 선생님과 선생님의 제자들 모두 우리 집에 함께 가셔야 합니다. 저의 사랑스러운 마누라 세프라와 다른 식구들 모두 저희와 같은 누추한 곳에 일행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너무너무 기뻐할 것입니다. 저와 저의 마누라는 이 마을에서 가장 좋은 빵을 만들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우리 마을 거의 전체가 우리 빵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도니자는 자랑스럽게 말을 계속했다. 벤자민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아버지를 뿌듯해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예수님은 벤자민의 어린 얼굴에 그렇게 기쁨이 가득 차는 것을 보고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벤자민은 모자 비슷한 것을 반듯이 고쳐 쓰면서 어제부터 조금 아프기 시작한 어린 양과 동물들에게 밥을 줄 때까지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되느냐고 아빠 아도니자에게 물었다. 아도니자는 벤자민에게 선생님이 그래도 된다고 하시는지를 먼저 여쭈어보고 괜찮다고 하시면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린 벤자민에게 “그 아프다는 양에게 무슨 일이 생겼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벤자민은 “네, 켈랴라고 부르는 우리 작은 어린양 한 마리가 있는데, 아빠는 그 녀석을 우리 집안의 보물이라고 부르죠. 아 글쎄, 그 녀석이 며칠 전부터 밥을 먹지 않아요. 뭔가 무척 피곤한 듯이 보이고 계속 누워있으려고만 한답니다. 아빠도 무척 염려되시는지 우리 식구들 저녁기도에 그 녀석을 위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지요.” 하고 빠른 말로 설명을 했다. 그 양이 그 빵집 가족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감지한 예수님은 “아마도 내가 한번 가봐야겠구나.” 하고 말했다. 그러자 벤자민은 흥분해서 “선생님, 괜찮으시면 제가 지금 그 녀석을 데려올 수도 있어요.” 하였다. 그리고 “그 녀석이 있는 곳이 집에서 그리 멀지는 않아요. 정말이지 선생님께서 그 켈랴를 보아주실 수만 있다면 엄마가 무척 기뻐할 거예요.” 하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해서 일행이 집에 조금 떨어진 헛간 같은 곳에 다다랐을 때 예수님은 몸을 굽혀 헛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즉시 뭔가 공기 중에 이상한 것이 있음을 감지했다. 헛간 안은 몹시 서늘했다. 그러나 헛간은 낮에 볕이 내리쬐면 순식간에 주변보다도 훨씬 더 더워지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헛간이 매우 어두웠지만 예수가 둘러보니 양, 염소, 닭들이 한데 모여 여기저기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짚단 같은 것들 위에 흩어져 있었다. 예수님과 벤자민이 막사의 작은 빗장 같은 것을 넘어가자 벤자민은 예수의 손을 놓고 조금 앞으로 가서 짚으로 다소 둔덕을 만들어 경계를 지어놓듯이 만들어놓은 곳에 파묻혀있는 작은 양 한 마리를 무릎을 꿇고 부드럽게 안아 끌어내었다. 그리고 무릎에 머리를 놓아 옆에 뉘었다. 켈랴였다. 예수님은 벤자민이 했듯이 부드럽게 그 양을 쓰다듬어 주고는 말없이 벤자민의 무릎 위에 놓인 켈랴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벤자민이 예수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저를 낫게 해 주셨듯이 켈랴도 낫게 해 주실 수 있으세요? 우리 양도 그 치유의 기적을 받을 만하지는 않나요?” 벤자민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게 내가 너를 위해 해 줄 일이라는 것이냐, 벤자민?” “그렇고말고요, 선생님. 고쳐주실 거죠?” “양을 똑바로 눕혀라. 그리고 시원한 물을 좀 가져다주고 믿음을 가져라, 벤자민.” “네, 선생님.”하고 눈이 똥그래지며 대답을 하자마자 양을 조심스럽게 다시 눕힌 벤자민은 부리나케 물을 뜨러 갔다. 벤자민이 물을 떠서 다시 돌아왔을 때 예수는 네 발로 서있는 양의 옆에 서 있었다. 켈랴는 벤자민을 알아보며 ‘음매애에-’하고 울음을 울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양이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란 벤자민은 들고 있던 물통을 거의 땅에 떨어트릴 뻔했다. 벤자민은 달려가 양에게 물을 주었다. 양은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선생님, 저희 켈랴를 고쳐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한 벤자민은 이내 뛰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며 “아빠, 아빠, 켈랴가 다시 좋아졌어요. 멀쩡해졌다고요. 와서 좀 보세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빵 가게 주인인 아도니자의 집에서 넉넉한 저녁을 함께 나눈 예수님과 제자들은 아도니자의 가족들, 그리고 인근의 몇몇 가족들과 함께 얘기나 나누자며 대문 밖에 나와 앉았다. 뜨거운 봄날의 해가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집안이 모든 식구와 예수의 일행이 다 앉기에는 비좁았지만 아도니자의 부인 세프라는 모두에게 정성을 다해 맛있고 풍성한 저녁을 대접했다. 아도니자와 세프라는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들이었던 벤자민 뿐 아니라 켈랴까지도 고쳐주신 예수께 몇 번이고 감사의 말씀을 드렸다.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던 벤자민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사람들이 앉아 있던 한쪽 끝 어둠 속을 가리키며, “저것 좀 보세요. 악령이 나타났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그쪽으로부터 시커먼 동물이 뛰어오르더니 예수의 어깨 쪽으로 달려들었다. “괜찮아, 벤자민. 네가 본 것이 이 녀석이라면 그저 나의 친구요 수호자인 메레아를 본 것이야.” 하고 예수님이 말했다. 예수님의 어깨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벤자민은 “메레아라니요? 그게 누구예요?” 하고 물었다. “메레아는 나의 친구란다. 무서워할 필요 없다. 해를 끼치지 않아.” 하면서 예수님은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벤자민을 안심시켰다. 메레아는 이내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며 예수님의 곁에 앉았다. 예수님은 메레아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어 주었다. 예수님의 손등을 핥던 메레아에게 벤자민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자 메레아가 벤자민의 손도 핥았다. 서로 두려움이 없어지자 벤자민이 메레아의 목을 껴안았다. 메레아가 벤자민의 얼굴을 핥으면서 자신이 그렇게 무서운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예수님, 메레아의 혀가 부드럽네요. 얘가 저를 좋아하나 봐요.” 벤자민이 명랑하게 말했다. 거기 있던 다른 사람들도 아이와 개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흐뭇한 미소로 한참 바라보다가 곧 나자렛에서 왔다는 라삐 예수의 말과 가르침에 다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예수가 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예수는 이런 얘기들이 하느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어떤 목자가 밤이 되어 자기 양 떼를 양 우리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날 그는 혼자였습니다. 바로 그 전날 자기를 도와 양 떼를 지켜주던 개가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개의 죽음에 그 목자는 슬펐습니다. 그동안 그 개가 양 떼가 길을 잃지 않도록 성실하게 도와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갑자기 양 우리 저편 수풀 더미에서 뭔가 움직이며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범상치 않은 소리라는 것을 직감한 목자는 두려웠고 도망쳐 몸을 숨기고 싶었습니다. 목자는 우선 자기 옆에 있던 지팡이를 힘껏 움켜쥐었습니다. 혹시라도 짐승이 습격하면 방어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그가 준비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양 우리의 한쪽 구석에서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절뚝거리며 엉금엉금 다가왔습니다. 목자는 우선 지팡이를 내려놓고 몸을 굽혀 강아지를 반겼습니다. 손을 내밀었더니 강아지가 그 손을 핥았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가만히 보니 그 강아지가 발에 상처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강아지를 들어 우선 양 우리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고 그 상처를 잘 씻어주고 상처를 천으로 감싸주었습니다. 그렇게 날이 지나 다음 달이 되었습니다. 목자와 강아지는 서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는 목자로부터 양 떼를 돌보는 것에 관하여 모든 것을 착실하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개는 목자의 충실한 친구이자 양 떼를 지키는 개가 되어 양 떼를 잘 돌보게 되었습니다.”
“자, 벤자민. 이 이야기에서 배울 점이 무엇이었느냐?”고 예수가 아직 메레아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던 벤자민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 목자가 만약 겁이 났고, 야생동물에게서 습격이라도 받았다면 그렇게 훌륭한 보조자를 만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잘 대답했다. 벤자민. 그렇게 훌륭한 지혜의 말씀으로 이제는 우리가 자리를 떠도 될 것 같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일어나 다시 길을 떠날 채비라도 하듯이 옷깃을 여몄다.
“아니, 선생님. 가시려고요? 불편하시더라도 여기 머무시면 안 되나요. 오늘 밤은 저의 손님이 되어주시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정 가시겠다고 하면 알아서 하십시오. 하지만 우리 이 층에 조그만 방이 하나 있습니다. 괜찮으시면 그곳에서 묵으셔도 됩니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해산하지요. 시간이 너무 늦었고 우리에게는 또 내일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면서 아도니자는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자, 우리 사랑하는 이웃들, 모두 안녕히 주무십시오.” 하고 소리를 쳤다. 세프라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일일이 보살펴주며 도와주었다. 예수와 일행은 이 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안내를 받았다. 약간 비좁았지만, 안락하게 밤을 지새우기에는 충분했다. 제자들도 금방 잠에 곯아떨어졌다. 잠시 아도니자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느라 뒤에 처졌던 예수가 계단을 오를 때에 아도니자가 그의 아들 벤자민을 불러 그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벤자민이 금방 달려와 예수와 계단을 같이 오르며 “선생님!”하고 예수를 조용히 불렀다. “뭐냐, 벤자민!” 하고 예수가 되묻자, “선생님, 저는 아버지께 다시 한번 저의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는 저를 고쳐주셨고 또 우리들의 양 켈랴도 고쳐주셨습니다. 모쪼록 하느님께서 선생님을 축복해주시고 지켜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 말을 마친 벤자민이 저쪽 모퉁이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다. “고맙다, 사랑스러운 벤자민. 잘 자렴!” 이렇게 말한 예수님의 얼굴에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잔잔한 미소가 번지는 것이 봄날의 달빛에 얼핏 보였다.
☞더 읽을거리 : 시편 23편 이사 40,11 마르 9,2-29 요한 10,11-15
☞생각을 위한 씨앗들 : 아들의 치유로 새로워진 아도니자와 그 가족들의 신앙, 산에서 내려오던 요한의 생각, 산위에서 본 것과 산 아래에서 본 것, 제자들이 악령을 쫓아내지 못하는 이유, 아도니자의 환대, 병들어 있는 어린양 켈랴의 치유, 목자의 빙에서 목자가 슬펐던 이유, 벤자민이 잠자리에 들기 전 예수님께 드렸던 말씀 등등
Ⅵ. 십자가 발치에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자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그때에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그분의 기운을 북돋아 드렸다.(루카 22,41-43)
예수님의 옆에 그 예수님을 위로하고자 했던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천사 말고 또 다른 그 누구는 바로 메레아였다. 메레아는 맨 처음 예수님을 만나 그가 자기 발을 치료해주고 물을 떠 주었던 그날 이후 줄곧 예수님과 함께하였다. 메레아는 바로 예수님의 옆에 붙어있든지, 아니면 낯선 이들에게 여전히 부담을 주는 존재이기도 했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숨기고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든지 항상 예수님의 옆에 붙어있으면서 예수님의 벗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다.
올리브 나무들이 있는 동산에 봄날의 보름달이 비치고 있었다. 메레아는 한 천사가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은 천상의 말을 통해 용기를 얻고자 했고, 그가 용기를 얻었다고 생각하자마자 천사는 사라졌다. 메레아는 천사가 갔는지 가지 않았는지 아직 모른 체, 조심스럽게 예수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는 조금은 안심을 하고 있었다. 메레아는 아무 말 없이 큰 바위를 움켜쥐고 있는 예수님의 손을 혀로 핥았다. 예수님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메레아를 바라보았다. “착하구나, 메레아!” 예수는 자신을 위로하려는 메레아의 의도를 알고 그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 주었다. “이것은 네가 아무리 충실한 나의 친구라 할지라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일이다. 나 홀로 아버지의 명령을 수행해야만 한단다.” 예수님은 긴 한숨과 함께 메레아에게 말을 건네고 나서는 일어서서 산헤드린의 의원들이나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는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끌고 대사제의 집으로 데려갔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 뒤따라갔다.(루카 22,54)
베드로는 예수님을 대사제의 저택으로 연행해가는 성전 경비병들의 무리를 뒤따르고 있었다. 메레아는 스승이 그렇게 강제로 연행되는 모습을 보고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메레아는 이런 상황에서 예수를 보호하고 싶었지만, 예수를 연행하고 있는 성전 경비병들의 집단을 전체적으로 상대하기에는 어렵다고 판단을 했다. 유다와 작당한 무리가 예수를 고발하였을 때 예수님을 보호하려던 동요와 소요는 마치 이리떼가 양들을 습격할 때 양들이 저마다 살 길을 찾아 숨듯이 그렇게 순식간에 제압되고 분산되어 버렸다. 베드로도 뒤를 따르고는 있었지만, 경비병들의 무리가 만에 하나라도 자기를 예수의 일행이라고 여기지 않을 정도로 안전한 거리를 두고 걸어갔다. 메레아도 전에 자기가 살았었으나 한 번도 사람들에게 환영받은 적이 없었던, 아픈 추억만이 가득한 도심의 좁은 더러운 길을 따라 예수님의 뒤를 따랐다. 물론 맨 처음에 어떤 나이 많은 상인을 주인으로 두고 있었을 때 매일매일 먹을 것과 사랑을 받던 행복한 시절이 얼마간이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도 그 주인은 주변으로부터 강아지를 키운다고 비난과 조롱을 많이 받았었지만, 그때 그 주인은 항상 그런 사람들에게 개란 참 좋은 친구이고 불평하는 법이 없으며 자기 딸이나 부인처럼 돈을 허비하는 일이 없다고 대꾸하곤 했었다. 그때 그 상인의 부인과 집안의 식솔들은 주인이 메레아에게 신경을 쓰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천덕꾸러기 대접을 얼마나 받아야 했는지 모른다. 당연히 주인이 죽자마자 메레아는 쫓겨났다. 주인이 살아있을 때 알았던 대문을 기웃거리며 무엇인가라도 좀 얻어먹으려고 했었으나, 그 누구도 자기를 집 안에 들여보내 주지 않았었다. 예루살렘의 그 어느 집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함에 따라 그때부터 메레아는 정처 없이 떠돌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들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막막하게 생을 포기라도 할 작정을 할 때 예수를 만났었다. 그리고 그 예수가 자기를 구해주었다. 예수는 물과 빵도 주고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예수가 메레아의 발만을 고쳐준 것이 아니다. 메레아에게 정을 주어 내외적으로 건강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메레아는 다시 한번 쓸모 있고 온전히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메레아는 묵묵히 예수가 관저 안으로 잡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물론 베드로가 뒤쪽에 숨어있는 것도 보았다. 메레아는 지금이야말로 주인 곁에 가 있어야 하는 때이지만, 사람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하는 때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관저로 몰래 숨어 들어가 정원 나무 그늘 밑 한쪽에서 상황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떤 수다스러운 여인 하나가 베드로 쪽으로 와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 또 조금 있다가 다른 여인이 와서 베드로에게 말을 걸었다. 베드로는 기분 나쁘다는 몸짓으로 여인들에게 뭔가를 쏘아붙였다. 그리고 메레아는 세 번째 여인 하나가 누군가와 얘기를 하면서 베드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는 마침내 맹세코 자기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펄펄 잡아떼었다. 그때는 이미 이른 봄날의 먼동이 트면서 첫 번째 빛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닭이 울었다.
아침 내내 메레아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을 숨기고 은밀하게 그림자처럼 주인 예수가 이쪽저쪽으로 방을 옮겨가며 뭔가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몇 번 예수님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메레아는 초조하게 그가 다시 건물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때마다 매번 예수님은 더욱 망가지는 듯이 보였다. 그러다가 메레아는 더이상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뒤를 따르면서 도심으로 난 길을 가로질러 가게 된 까닭이었다. 메레아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갈 기회만을 노렸다.
그들은 다른 두 죄수도 처형하려고 예수님과 함께 끌고 갔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두 죄수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그분의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루카 23,32-33)
때는 그때였다. 메레아는 처형장 주변에 맴돌던 다른 개들하고 잠시 합세했다. 한바탕 거기 모인 사람들이 뭔가를 벌이며 커다란 소동이 일었다. 자기 주인을 십자 나무에 못 박아 높이 세웠다. 그리고 다른 두 죄수도 같이 매달렸다. 메레아는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내는 소리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의 비명이었는지 똑똑히 들었다. 그때 메레아가 자기 주인의 손목에 못을 박고 있는 그 병사의 망치 잡은 손을 물어뜯으려고 날쌔게 뛰어들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비명을 지르며 한쪽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그런 처참한 광경을 신나서 즐기려던 어떤 건장한 남자 하나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 파고드느라 메레아의 옆구리를 냅다 걷어찬 까닭이었다.
그렇게 주인이 매달리고,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갑자기 어둠이 온 하늘을 뒤덮었다. 이는 마침 메레아가 주인 곁에 가까이 다가갈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살금살금 십자가 나무 곁으로 다가가 뒤편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약간 바위 둔덕이 있어 거기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것 같았다. 메레아가 듣기에 예수님은 몇 번인가 힘겹게 당신 아버지께, 그리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말했다. 메레아는 예수님의 말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십자가 가까이 뒤에 있었기에 그 뜻이 무엇인지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메레아는 주인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알고 흥분하였으며 그에게는 혼란이 일었다. 그래도 그 자리를 지키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자리에 있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들키지나 않을까 몹시 두려웠다. 다른 몇몇 개들이 주변을 맴돌았다. 십자가 처형이 끝나고 모두 숨을 거두면 개들의 잔치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개들은 몹시 굶주려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가끔 또 한 마리가 나타나면 서로 으르렁대며 이빨을 드러내곤 하였다. 건장한 두 남정네 사이에서 서로 자기가 이겼다고 다툼이 일었다. 죽은 자는 이미 죽음 그 자체였다. 다툼은 곧 진정되었다. 경비병들이 주사위 게임으로 겉옷들에 대한 시비를 끝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메레아의 주인이 마지막 숨을 크게 내쉬었다. 땅이 크게 흔들렸다. 메레아는 자신도 그렇게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땅에 바짝 엎드렸다. 지진이 잦아들고 병사들이 서둘러 자기들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갔다. 메레아는 천천히 주인의 십자가 밑에 가서 버티고 섰다. 그리고 여느 개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도록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두 수컷이 덤벼들었다가 여지없이 메레아에게 혼나고 물러났다. 그리고는 멀찍이 떨어져서 꼬리를 감춘 채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그 두 녀석마저도 포기하고 떠났다. 메레아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흐느끼며 슬피 울기 시작했다.
그 뒤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그가 가서 그분의 시신을 거두었다. 언젠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도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요한 19,38-40)
사람들이 언덕 위로 다가오는 소리를 듣자 메레아는 얼른 자기가 숨어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남자 둘에 몇몇 여자들이 있었다. 봉사자들처럼 보이는 이들이 사다리를 놓고 십자가에 올라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려 하였고, 고운 천을 넓게 펼치며 주인을 묻을 준비를 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자마자 정신을 잃은 듯했다. 그러나 매우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사랑을 다 하는 자세로 십자가 밑에 한참 말없이 서 있었다. “아, 요셉! 이거야말로 참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로군요.” 하고 니코데모가 말했다. “참, 그러네요. 니코데모!” 하고 고개 숙여 대답하는 요셉의 주름진 얼굴에 눈물이 맺히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저는 그제 의회 회의실을 지키며 내내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밤을 틈타 그 대사제라는 사람이 불법적인 재판과정을 그렇게 처리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니코데모가 한탄하듯이 말했다. “이미 지난 일은 지난 일이지요. 니코데모! 그렇게 되었어야만 했나 봅니다.” 요셉이 봉사자들에게 방법을 일러주며 니코데모에게 대답했다. 발을 먼저 못에서 빼낸 뒤 한 봉사자가 사다리를 놓고 십자가에 올라가 예수님 손에 박힌 못들을 제거했다. 예수님의 몸이 천천히 십자가에서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여인들의 손에 넘겨졌다. 그리고 모두 말없이 각자 자기들이 해야 할 바를 하였다. 메레아는 주인의 시신을 인근에 있는 바위 동굴에 모시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지켜보았다. 아무도 눈치는 채지 못했지만 메레아는 시신을 감쌌던 천에서 나는 향긋한 향내까지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사랑하는 주인을 따랐다. 메레아는 일행들이 좁은 동굴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지만 자신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잠시 뒤에 모두 동굴 밖으로 나오더니 큰 바윗돌을 굴려 동굴 입구를 막고 모두가 돌아갔다. 그리고 메레아는 더이상 그 누구의 흐느낌도 들을 수 없었다. 메레아는 무덤 입구를 중심으로 주변을 세 바퀴나 돌며 살펴보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주인의 무덤 입구 주변의 풀밭에 앉아 자기 뒷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이튿날 곧 준비일 다음 날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가서 말하였다. “나리, 저 사기꾼이 살아 있을 때, ‘나는 사흘 만에 되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한 것을 저희는 기억합니다. 그러니 셋째 날까지 무덤을 지키도록 명령하십시오.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 내고서는, ‘그분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 하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 마지막 기만이 처음 것보다 더 해로울 것입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당신들에게 경비병들이 있지 않소. 가서 재주껏 지키시오.” 하고 대답하였다.(마태 27,62-65)
메레아는 뭔가 철컥거리는 소리가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들었다. 메레아는 그렇게 무덤 옆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지 확신이 없었다. 얼른 몸을 숨긴 메레아는 자기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시 주시하기 시작하였다. 메레아는 군인들의 무리가 행진하며 다가오는 것을 보고 한껏 몸을 낮추었다. 땅에는 아직 새벽이슬이 촉촉했고, 햇빛은 아직 와 닿지 않고 있었다. 군인들의 투구가 번쩍거리는 가운데 군인들은 무덤을 봉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인들은 무덤 앞에서 편안하게 웃고 떠들며 아침까지도 나누어 먹었다. “어이, 브루투스! 오늘 일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다. 그렇지?” 대장이 투구를 벗어 옆에 놓으면서 자기보다 졸병인 듯한 병사에게 말했다. “제가 사실 카시우스님께 감히 먼저 여쭐 수는 없었지만, 도대체 이 혁명 분자들이 판치는 이 도심의 한복판에서 죽은 자의 무덤이나 지키는 임무라니 이것이 말이나 됩니까? 아무래도 유다의 사제들이라는 놈들은 이자가 죽었다가 부활이라도 할 것으로 생각하나 봅니다. 죽은 것은 죽은 것이지 않습니까?” 브루투스가 자기 보따리에서 빵을 떼어 입으로 가져가며 말을 뱉었다. “그 유다 지도자들이라는 놈들은 빌라도 총독을 아예 자기들 손아귀에서 가지고 놀려 든다니깐, 안 그래? 브루투스! 벌써 새벽녘에 일찌감치 찾아와 총독을 불러내더군. 결국 총독은 다시 그들을 만나주었지. 그러니까 이틀 만에 두 번을 만나준 것이야. 그 결과가 뭐야, 바로 우리가 새벽부터 이 죽은 자를 지키러 나오게 된 것 아닌가 말일세.” “대장님 말이 맞습니다. 카시우스님. 플라비우스님께서 저에게 와인을 한 잔 하사하시며 말씀하시기에 저도 어쩔 수 없이 이 꼭두새벽부터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 망할 놈의 유다인들 때문에 말입니다.” 브루투스가 떠들썩하게 대답했다. 메레아는 병사들이 먹는 치즈와 빵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메레아는 여전히 자기 주인의 시신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짐작으로 봐서는 그 병사들이 거기에 한동안 머물 것 같았지만 메레아는 그들이 속히 떠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메레아는 조용히 숨어서 부족한 잠을 청했다. 벗이자 친구, 그리고 주인이신 예수님이 없이는 결국 자기도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더 읽을거리 : 마태 27,62-66 루카 22,39-23,49 요한 19,38-42
☞생각을 위한 씨앗들 : 예수님의 올리브 동산 기도, 예수님의 연행,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이들, 메레아의 옛 추억, 메레아가 다시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여인들의 고발과 베드로의 배반, 처형장의 소동,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 메레아가 예수님을 보호할 수 없었던 이유, 메레아가 십자가 밑을 지킨 이유,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하러 온 사람들 등등
Ⅶ. 돌아온 주인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1-2)
주간 첫날이 되기 전 오후, 로마 병사들은 아예 메레아의 주인이 묻혀 있는 무덤 앞에 진을 쳤다. 그들은 말린 고기와 빵, 치즈 그리고 와인까지 가지고 와서 새벽부터 있던 병사들과 합류했다. 메레아는 고기 냄새를 맡자 견딜 수가 없었다. 몰래 한 조각이라도 훔쳐 그동안 내내 굶어 빈 속을 달랠 기회가 있을까 호시탐탐 노렸다. 그리고 살금살금 기어가서 마침내 무덤 옆에 누군가가 투구를 벗어놓은 곳 옆에 있던 음식 보따리에서 뭔가를 한 덩어리 덥석 물고 줄행랑을 쳤다. 브루투스라는 자가 동료 병사에게 조심하라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으나 메레아가 더 빨랐다. 메레아가 물고 달렸던 것은 다행히 고깃덩어리였다. 한 병사가 돌멩이를 던지며 한참을 따라왔지만 메레아는 무사히 도망쳐 바위 뒤로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물론 돌멩이 하나가 뒷다리 쪽의 옆구리에 맞긴 했지만, 그 정도의 아픔으로라도 받는 후한 보상이 있었기에 견딜만했다. 숨을 헐떡이다가 간신히 숨을 돌린 메레아는 고기 덩어리를 뜯어 씹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기를 다 먹고 나자 허기는 가셨지만, 간이 짜게 된 고기여서인지 목이 몹시 말랐다. 얼마쯤 헤매다가 산 쪽으로 나 있는 길의 옆에 웅덩이를 발견하고 맛있게 물을 마셨다. 문득 주인과 처음으로 만나 우물가에서 손으로 물을 떠주던 예수님이 그리웠다. 다시 슬퍼진 메레아는 자기가 원래 숨어있었던 자리로 돌아가 무덤 옆에 몸을 숨겼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자리는 병사들이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볼 수 있게 노출이 된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메레아는 병사들이 어서 떠나기만을 기다리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그늘로 최대한 몸을 가리고 메레아는 종일 그 자리를 지켰다. 그날 밤에는 잠을 자려고 했다.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러다가 주간 첫날 아침 일찍이었다. 아직 어슴푸레하게 이른 새벽이었다. 그때 그렇게 사건이 벌어졌다. 땅이 몹시 흔들렸다. 산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큰 진동이었다. 순간 위기를 느낀 메레아는 어디로 뛰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단지 그 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로마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혼비백산하여 잠을 깬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무기와 장비들을 서둘러 챙기고 진영이 있는 도시를 향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메레아는 잠시 멈추어 섰을 때 자기가 주인의 무덤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무덤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때 메레아는 무덤 쪽으로 난 길 위에 누군가가 무덤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메레아가 보기에 익숙한 몸짓이고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아직도 몸이 떨렸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메레아는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그 뒤를 따랐다.
하늘에 해가 떴다. 얼굴에 쓴 보자기를 걷자 그녀가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인 것을 메레아는 알았다. 마리아는 봉인이 되어있었던 무덤의 봉인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덤 입구를 막았던 커다란 돌은 굴러서 옆으로 밀려있었다. 메레아는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리아는 잠시 무덤 안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돌아서서 뛰기 시작했다. 메레아는 마리아가 끔찍하게 놀라는 것을 보았지만 그녀에게 나아가지는 않았다. 사실 메레아가 마리아 앞에 나섰더라도 마리아는 자기를 볼 겨를도 없이 뛰어서 다시 도시 쪽으로 향했을 것이었다.
마리아가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렇게 놀랐는가 싶어 메레아가 무덤 쪽으로 가 보았다. 메레아가 가서 보니 무덤이 비어있었다. 메레아도 놀라서 예수님을 모셨던 단 쪽으로 뛰어올라 보니 거기에는 주인을 쌌던 천들이 개켜져 있었다. 주인의 냄새를 맡을 수는 있었지만, 주인은 거기에 없었다. 놀란 메레아는 그 천들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쯤이 흘렀는지 몰랐다. 메레아는 자기 머리를 쓰다듬는 낯익은 손의 감촉을 느끼면서 눈을 떴다. “나의 충실하고 신실한 벗, 착한 개, 나의 친구 메레아구나!”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눈을 들어 보니 주인 예수님이었다. 메레아는 뭔가 주인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그분이 여기에 계셨구나, 살아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요한 20,15-16)
마리아는 여전히 자기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무덤이 있던 그 동산에서 주님이 부르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돌아서서 보니 주님이 거기에 계셨다. 스승님이 살아 있었다. 실제 현실이었다. 그녀는 뛰어가 그분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그분 발을 붙잡았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되었다. 마리아는 무덤 옆에 주저앉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해 보고 싶었다.
“메레아!” 마리아는 바로 그 자리에 어떻게, 또 왜 주님이 아끼시던 친구 개가 거기에 있는 것인지를 몰라 메레아를 다시 발견하고 그를 큰 소리로 불렀다. “메레아, 착하지, 여기 마리아에게 오렴!” 하고 다정하게 마리아가 메레아를 불렀다. 메레아가 다가왔다. 귀는 다시 쫑긋해졌으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메레아도 즉시 마리아를 알아보았다. 언제나 스승 곁에 함께 하던 마리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일이 있어 바쁠 때면 마리아가 메레아에게 종종 음식을 챙겨주곤 하였던 것이다. 마리아는 메레아의 머리와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었다. 마리아는 평정을 되찾으려 했다. 그러나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할 길이 없었다. 예수님은 당신이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였었지만, 그 말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맞아. 예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할 것이라고 하셨어!” 하며 스승의 말을 생각한 마리아는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을 내렸다. “메레아, 자, 이제 다른 제자들에게 가자!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분이 전에 말씀하신 대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하고 마리아가 메레아에게 큰 소리로 말해주었다. 그 말을 마치자마자 마리아가 메레아에게 따라오라며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은 도시로 돌아가는 좁은 길을 뛰어가기 시작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요한 20,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이 숨어있던 이 층 다락방이 있는 옹기장이 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파스카 축제일의 잔치를 예수와 함께 지냈던 곳이기도 했다. 마침 아침을 먹고 있던 제자들에게 뛰어 들어가 마리아는 숨을 고른 다음, 옆에 있는 메레아와 함께 자기가 무덤이 있던 동산에서 예수님을 뵈었다고, 예수님이 살아있다고 알려주었다. 제자들은 마리아를 믿지 않았다. 단지 여인이 실성한 것처럼 생각했다. 몇 번이고 마리아가 되풀이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은 베드로가 개입할 때까지 믿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나는 마리아가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겠어. 그러나 뭔가 일이 벌어진 것만은 확실해. 나도 오늘 아침에 내가 무덤에 가 보았을 때 내 눈으로 무덤이 열려있는 것까지는 보았고 예수님을 쌌던 천과 그분의 얼굴을 쌌던 수건이 한쪽에 개켜져 있는 것을 보기는 했어. 나도 내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닌 것은 알아. 그렇지만 나는 내가 본 것을 믿어. 그리고 마리아가 그 예수님의 몸을 만져보았고 보았다고 하지 않아?” 하고 베드로가 신중하게 말했다. “베드로, 그러니까 자네는 분명히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을 했다고 믿는 것이란 말이지? 그렇지?” 발토로메오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 “발토로메오, 나는 오직 내가 본 것만을 믿을 뿐이야. 마치 마리아가 자기도 보고 만져보았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야.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 한 가지는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야.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를 유다 지도자들이 두려워할지도 몰라. 이 모든 일이 좀 잠잠해질 때까지 우리가 여기 숨죽이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봐.”하고 베드로가 문 옆에 있는 매트 위에 앉으면서 말했다.
마리아는 메레아를 자기 곁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들 둘도 매트의 한쪽 구석에 앉았다. 불현듯 마리아와 메레아는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마리아는 옆에 있는 벽에 기대고 메레아는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웅크린 채 둘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요한 20,20)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셨다가 떠난 뒤에 베드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날의 놀라운 상황을 어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에게 남은 음식이나 마저 함께 들자고 말했다. 아침에 예수님과 그런 일이 있던 뒤로 해가 질 때까지 그저 서로 배고픈 줄도 모르고 그렇게 앉아 있던 것이었다. 음식을 좀 먹고 난 뒤에 제자들은 저마다 잠잘 채비를 하였고, 베드로는 방안 구석구석 모두 등불을 밝혀놓았다. “마리아가 옳았어!” 하고 베드로가 감동 어린 말로 모두에게 말했다.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판단했어. 그리고 우리가 틀렸었어. 마리아, 우리들의 사과를 받아줄래요?” 베드로가 머리를 숙이며 갈대로 만든 돗자리 끝을 보며 마리아에게 말했다. “베드로, 걱정하지 마세요. 용서하고말고요. 물론 다른 모든 식구도 마찬가지이고요.” 마리아가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주님이 살아계셔. 마리아가 옳았어. 정말 믿기 힘든 일이지만 말이야.” 바르톨로메오가 아직도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이제 어떻게 되어가는 것이야? 베드로!” 마태오가 다소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나는 세금 걷는 일로 번 돈이 몇 푼밖에 남지 않았거든. 아무튼 이 방에만 이렇게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고, 용기를 내서 길거리에 뛰쳐나가지도 못하고…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지?” 마태오가 기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생각 좀 해볼게.” 베드로가 대답했다. 맨날 베드로가 앞장서서 뭐든 해냈지만, 이제 그는 메레아라는 검정 개를 포함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 대한 책임을 양어깨에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이제부터 뭔가를 안전하게 잘 준비해서 행동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타대오, 내 생각에 자네가 유다 지도자들이나 관계자들이라는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얼굴인 것 같아. 자네가 시장에 나가 우리가 당분간 숨어 있을 동안 먹을 음식들을 좀 사 오는 것이 낫겠어.” 하고 베드로가 말했다. 다른 제자들이 다소 명령조로 말하는 베드로에게 조금 놀라기는 했다. “좋아, 좋아! 베드로. 마태오의 돈을 좀 얻어 나가봐야겠어. 어떤 먹을 것이 좀 있나 봐야겠어.” 하고 타대오가 대답했다. “좋아!” 베드로가 응답했다. “야고보와 요한 자네 둘은 성전으로 가서 유다 지도자들이 우리를 혁명 분자로 몰아세울 어떤 계책들을 세우고 있는지 염탐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 그런 것을 알아야 우리가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이 좋을지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할게, 베드로. 나는 우리를 이 집에 머물게 해 준 옹기장이 마티아에게 우리가 옷을 좀 빌려 약간 변장을 하고 나가겠다고 해도 그렇게 해 주리라고 믿어. 그렇게라도 해야 성전에서 좀 안전하지 않겠어?” “좋아, 좋아! 아주 좋은 생각이야.”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이제부터 나머지는 좀 돌아가며 잠이라도 자 두어야겠어. 내일 해야 할 일이 엄청 많지 않을까?” 베드로가 다른 형제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문 쪽에 있던 등잔불을 껐다.
다락방에 있던 모든 식구들은 저마다 잠자리를 마련했다. 그들 머릿속에는 하나같이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비록 스승님이 다시 살아 돌아와서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도대체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머리가 복잡했다.
☞더 읽을거리 : 마태 16,13-20;28,1-15 요한 20,1-29
☞생각을 위한 씨앗들 :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시는 시간과 징조들, 무덤에 맨 처음 찾아온 사람, 메레아가 무덤 안에서 목격하고 체험한 사실들, 무덤 안에 예수님을 쌌던 천들이 개켜져 있었던 이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마리아의 행동, 메레아와 마리아의 상봉,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떠올린 말씀, 제자들이 마리아의 말을 믿지 못한 이유, 베드로의 증언, 베드로의 사과와 마리아의 용서, 베드로의 결정들 등등
Ⅷ. 계속되는 신비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여러 해가 흘렀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새로운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관련된 내용을 결정하기 위해 함께 모였다. 그중 몇몇은 이미 옹기장이 마티아의 집에부터 만나던 사이였다. 물론 모임 장소도 여전히 그 다락방이었다. 베드로가 그 방에 들어서서 아직도 벽이 그대로인지, 그리고 항상 등잔을 올려놓던 구석이 그대로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잠시 신앙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용감한 제자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리아 막달레나 역시 이 모임에 참석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의 많은 제자가 나자렛의 예수를 따르는 길을 믿게 된 사람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첫 번째 미사가 이루어지던 그 방에서 다시 미사가 거행되는 것을 보고 감격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 다락방에 모여온 그 사람들이 이른바 첫 번째 ‘순례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최근 에페소에서 돌아온 마리아 막달레나는 방을 가로질러 베드로에게 다가서 인사를 나누었다. 이미 방에 들어설 수 있을 만큼 빽빽하게 사람들이 들어차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있었기 때문에 마리아가 베드로 가까이 가기까지는 상당히 어려웠다. 비록 마리아의 머리에 흰 머리가 많아졌고 얼굴은 젊었던 그때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지만, 베드로는 그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사랑하는 베드로, 우리 지난 모임 이후로 벌어졌던 수많은 일에 대하여 당신하고 얼마나 토론하고 싶었는지 몰라요!” 충분히 베드로에게 가까워진 마리아가 베드로에게 말했다. “오, 스승님의 사랑 마리아!” 베드로는 두 팔로 그녀를 꼭 껴안으며 말을 건넸다. “베드로, 오늘 밤 그동안 우리가 가르쳤던 사람들에게도 좀 깊은 가르침을 주실래요?” 하고 마리아가 요청을 하자, “그러죠. 조금 있다가 주변이 좀 정리되고 잠잠해지면 말이죠.” 하고 베드로는 마리아에게 높은 소리로 답했다. “그쪽에 있는 요한이나 야고보에게 말씀 좀 해 주세요. 천둥의 아들들이 회중을 조용하게 좀 해 줄 것이 분명합니다.” 마리아가 베드로에게 말했다.
베드로가 그 두 형제에게 손짓해서 회중을 좀 조용하게 하고 자리에 앉도록 하라고 하였다. 야고보와 요한은 즉시 모두 자리에 앉아 베드로에게 주목하라고 회중에게 알렸다. 모두가 잠잠해지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 수그러들자 베드로가 문 쪽으로 바싹 붙어 앉아 말을 시작했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신자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예수님을 만나 찾게 된 새로운 인생의 길에 관하여 몇 가지 중요한 물음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쁘고 또 행복합니다. 스승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을 때 그분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고, 또한 성령께서 우리가 찾는 중요한 것들에 관하여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분열되는 일 없는 치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베드로의 말에 이어 많은 제자가 그동안 일어났던 사안들에 대하여 다양한 생각들을 펼쳤다. 그렇게 모임이 끝났을 때 여러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를 포함한 또 다른 여럿은 다락방에 그대로 남았다. 그때 “마리아, 스승님의 사랑을 받았던 그 개는 어떻게 되었어요? 내 기억에 이름이 메레아였죠? 아마.” 필립보가 마리아에게 물었다. “우리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난 뒤부터 메레아는 제 곁은 결코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마리아가 조용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 개가 여러 번 많은 위험에서 저를 구해주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메레아는 참으로 충실한 동반자요 동행자, 친구였습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고쳐주시고 보살펴주셨던 그 개를 옆에 두면서 더더욱 예수님을 가까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개를 데리고 계시나요?” 야곱 뒤에서 작은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그는 새로운 신자로서 키가 작아 이쪽을 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아들과 함께 있었다. 열 살 먹은 아들의 이름은 타대오였다. “그러게요. 저는 메레아가 지금은 스승님과 행복하게 같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미 오 년 전입니다.” 마리아가 깊은 한숨과 함께 대답하였다. “메레아도 점점 나이를 먹어 쇠약해져 가더니 나중에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언젠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때였던 것 같아요. 옆구리를 몹시 심하게 다친 메레아는 노년에 그쪽을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그래도 메레아는 어떤 형제나 자매가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도와주고 우리를 동행하려 했습니다. 아, 지금도 메레아가 얼마나 그리운지요!” 마리아가 깊이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에 어떻게 죽었나요?” “사실 죽었는지 어땠는지 그건 확실히 몰라요. 어느 초봄이었어요. 저는 그가 죽었다기보다 떠났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으로 생각해요. 우리가 항상 그렇듯이 어느 추운 밤이었어요. 물론 그날도 저는 항상 그랬듯이 제 침상 밑에 있는 메레아에게 담요를 덮어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메레아가 춥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제가 잠에 빠져있었는데, 제 어깨에 뭔가 감촉을 느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충견 메레아를 쓰다듬을 때 하시던 그런 감촉 같았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저를 치유해 주실 때도 그런 감촉이었지요. 그때 어렴풋이 예수님께서 ‘메레아야! 메레아야!’ 하고 부르시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스승님의 목소리에 나도 번쩍 눈을 떴지만, 꿈이었다고 생각하고 이내 곧 다시 잠이 들고 말았지요. 아침이 되어 제가 잠이 깼을 때 메레아의 담요는 거기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레아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애타게 찾고 불렀어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냥 메레아가 떠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마리아의 피곤한 눈이 촉촉하게 그때를 회상하며 젖었습니다. “결국 오늘까지 저는 메레아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실히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