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구口’는 본래 구멍의 형상이다. 그러나 한문에서 ‘입 구口’가 글자의 부분을 차지할 때는 입이나 구멍만의 뜻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물건 품品’처럼 물건이 쌓여있는 모양이기도 하고, ‘따로따로, 각각 각各(뒤져올/머뭇거릴 치夂 더하기 입 구口)’처럼 앞 사람과 뒷사람 말이 서로 다르다는 뜻으로 「각각」을 뜻하기도 하고, ‘돌 석石’처럼 바위에서 떼어낸 돌이 생긴 형체를 나타내기도 하며, ‘합할 합合’처럼 셋이 딱 들어맞는 ‘삼합 집亼(뚜껑)’과 ‘입 구口(본체)’를 더하여 말에 말을 맞춰 대답하거나 이것에 저것을 더하여 모으거나 만나고 합하거나 맞추는 상황을 묘사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의 두려움이 되어있는 ‘암 암癌’은 ‘입 구口’가 세 개나 들어있는 글자로서 병상에 드러누운 모양인 ‘병질 엄/기댈 녁疒’과 산 위의 돌덩이들 모양인 ‘바위 암嵒’이 더해 만들어진 글자이다. 딱딱한 암 덩어리를 지고 병상에 누운 분들을 생각하면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간혹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이 먹고, 먹고, 또 먹어 산처럼 쌓였다가 결국 병상에 드러누운 모습이라 하기도 하지만, 이는 우스개로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사실 우스개로 이야기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 암에 걸려 고생하시는 모든 분이 마치 뭔가를 많이 먹어 암에 걸린 것처럼 표현하는 경솔하고 죄송한 풀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원래 구멍을 뜻했던 ‘입 구口’를 두고 한자의 다른 생성과정 말고, 다른 글자들과 더해져 뜻을 만드는 회의문자會意文字가 되는 것만 생각해도 글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해진다. 간단한 예로 ‘이름 명名’은 ‘저녁 석夕’과 ‘입 구口’가 더하여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면 입으로 이름을 불러 서로를 분간한다는 것이 되고, ‘화할 화和’는 ‘벼/쌀 화禾’에 ‘입 구口’를 더하여 쌀로 만든 밥을 모두 함께 먹으니 화목하다는 것이 되고, ‘알 지知’는 ‘화살 시矢’와 ‘입 구口’가 더하여 무엇을 안다는 것이 화살이 과녁을 맞히듯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일컫는 것이 되며, 이 ‘알 지知’에 ‘날 일日’을 더하면 알고 있는 것들이 날이 가고 또 가면서 지혜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지혜 지智’가 된다는 식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가장 중요한 구멍인 입이 있다. 코도 있고 귀도 있는데 얼굴에서 가장 ‘중요한’ 구멍이라 하는 것은 최악의 경우 코나 귀가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입이 없으면 아예 살 수 없고 입이라는 구멍이 인간에게는 가장 큰 구멍이기 때문이다. 입은 수많은 세월 동안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기능적으로 인간사의 수많은 일을 감당한다. 생물의 입은 맨 먼저 아가미처럼 그저 들어온 것을 걸러 흡수하는 기능만을 하다가 턱이 생기고 돌기나 이빨이 생겨나면서 잡고 붙들 수 있는 먹이들이 생겨났고, 점점 씹거나 갈아먹을 수 있는 입으로 발달하면서 이것저것을 먹을 수 있는 입이 되어갔다. 물론 이빨은 각각의 생물이나 동물들이 처한 상황에 맞게 다양한 위치나 모양, 그리고 개수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사람에게는 공격용 송곳니나 앞니 대신에 딱딱한 것까지도 먹을 수 있도록 어금니들이 발달했으니, 굳이 진화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의 구멍인 입은 이렇게 글자만큼이나 발달했고, 또한 대단히 특화된 구멍이 되어왔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입이라는 구멍으로 확인하려 하면서 인생을 시작한다.(구강기) 그 입은 살아가면서 혀나 치아와 함께 소리를 내어 140여 가지 음을 만들어내고, 말하고, 기도하고, 먹어서 생명 유지를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감정과 애정의 표현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표정과 속내를 관리하고, 숨 쉬고, 음식물을 씹어 소화되게 하고, 맛을 보고, 물어뜯어 무엇인가를 풀어 헤치거나 공격하고, 남을 해치는 말과 욕설을 뱉는 죄의 분출구가 되는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을 한다. 단순한 구멍이었던 인간의 입은 이제 인간의 삶과 문화 전체를 관장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로 인간의 입은 정말 위대하다.
그러나 입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입은 한 개이면서도 열 마디 말을 열 번 한다.’ 라든가, ‘뚫린 입(구멍)으로 말이나 바로 하라.’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조심’이나 ‘경계’와 관련된 격언이나 관용구 내지는 속담으로 끊임없이 견제를 받는다. 언젠가 입만 동동 떠서 입만 살아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둔한 자의 입은 그를 파멸시키고 입술은 그를 옭아맨다.”(잠언 18,7) 하였으니, “주님, 제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제 입술의 문을 지켜 주소서.”(시편 141,3)(20170906 *이미지 출처-구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