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동물과 달라진 것은 두 발로 걸으면서부터였다고 했다. 너도 걷고 나도 걷고 모두가 걷는다. 매일 걷는다. 사람들의 걸음을 보고 또 내 걸음을 보며 ‘걷는다’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가사의 첫 구절 때문에라도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네…』하던 백년설(白年雪 : 본명 이창민 1914~1980년)씨의 오래된 노래 ‘나그네 설움’이 절로 떠오른다. 작사가로 알려진 고려성(高麗星 : 본명 조경환 1910~1956년)씨와 함께 왜놈 경찰들의 모진 밤샘 취조 후에 광화문 거리를 바라보며 잃어버린 조국의 설움을 담아 담뱃갑에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거워』를 적어 내려갔고, 이 슬픔을 후에 노래하게 되었다는 애절하고 숭고한 사연과는 거리가 멀게, 오늘 나는 일차적으로 건강을 염려해서, 또 나름대로 자기 관리를 위해서 걷는다.
걸음은 내가 식물이 아닌 동물이기에, 움직일 수 있기에 걷는다. 걸음은 동물을 두고 ‘뛴다’라든가 ‘긴다’라고 하니 내가 사람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내가 ‘섬마섬마’하며 맨 먼저 배운 몸동작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어느 날 약해져 누구의 도움을 받든 기구의 도움을 받든, 기어이 내가 혼자 힘으로만 가능한 것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이리도 저리도 내가 내 마음먹은 대로 갈 수 있기에 걷는다. 그래도 걸음은 늘 내가 뜻한 대로만 가지지는 않는다는 안타까움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내가 결국 언젠가 가고야 말 고향이 있는 나그네요 순례자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내가 한 걸음을 내딛어야만 하는 결단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나도 걷고 너도 걷는 이웃의 행렬이기에 내가 이웃의 하나가 되어 함께 걷는다. 걸음은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내가 “새 길을 따르는 이들”(사도 9,2)이고 싶기에 걷는다. 걸음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만, 궁극으로 나를 향해 마주 오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이기에 걷는다. 걸음은 누구에게나 사는 날까지 간절한 희망이기에 걷는다.
도대체 언제까지, 몇 걸음이나 걸어야 인생은 다 걸어지는 것일까?(20170126 *이미지 출처-영문 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