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송의 변천사

가톨릭교회의 신자라면 누구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세계 어디서나 암송하는 기도문이 있다. 바로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거의 원형 그대로이지만, 성모송(Ave Maria)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약 1,500년에 걸쳐 성경의 거룩한 문구와 수도원의 깊은 기도 전통, 그리고 교회의 공식 전례가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변형을 거쳐 오늘날의 기도문이 되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이라는 성모송은 크게 성경 구절에 기반한 전반부(찬미)와 교회가 역사 속에서 덧붙인 후반부(청원)로 나뉘며, 그 변천사는 크게 네 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1단계: 성경 구절의 출현과 초기 신심의 흔적(3세기~6세기)

성모송의 첫머리는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 건넨 인사말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나자렛 성모영보 대성당 1층 아래에 있는 성모 영보 동굴 돌기둥 받침대 표면에서 그리스어로 3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뻐하소서 마리아님(ΧΕ ΜΑΡΙΑ)”이라는 약자가 발견되었다. 이는 아주 초기 신자들부터 천사의 인사말을 기도로 바쳤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고고학적 증거이다. 이후 6세기경에는 미사 전례문에 ‘천사의 인사말’이 본격적으로 삽입되기 시작했다.

2단계: 두 인사말의 결합과 수도원의 ‘성모 소일과’(11세기~12세기)

11세기 말에서 12세기에 이르러, 천사의 인사에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한 인사말인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 1,42)가 하나로 합쳐졌다. 처음에 이 기도는 ‘성모 찬송(Salutatio Beatæ Mariæ Virginis, 줄여서 Salutatio Mariae 또는 Salutatio Angelica-천사의 인사)’으로 알려졌으며, 두 구절이 결합된 형태였다.

가톨릭 백과사전(Catholic Encyclopedia)은 이 정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실상 1050년 이전에는 승인된 기도문 형태로서의 성모송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모든 증거는 성모송이 당시 수도회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던 ‘성모 소일과(Little Office)’에 등장하는 특정 절과 응송에서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두 권의 앵글로색슨 수놓은 필사본(그중 한 권은 1030년경의 것일 수 있다)을 보면, ‘Ave Maria’ 등의 구절과 ‘benedicta tu in mulieribus et benedictus fructus ventris tui’라는 구절이 소일과의 거의 모든 부분에 등장한다. 비록 이 문구들이 처음부터 하나의 기도로 이어져 바쳐졌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주 조금 지나지 않아 하나로 묶여 바쳐졌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존재한다.”

당시 글을 읽지 못하는 평신도들이 매일 시편 150편을 바치는 수도자들을 따라 하기 위해, 시편 대신 이 두 인사가 결합한 짧은 기도문(성모송 전반부)을 150번 반복하여 바치기 시작했다. 오늘날 묵주기도(Rosarium)의 전신인 셈이다.

3단계: 거룩한 이름 ‘예수’의 공식 추가(13세기)

초기 성모송은 이처럼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아멘”으로 끝났다. 13세기 중반, 누구의 태중인지 명확히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찬미를 완성하기 위해 태중의 열매 뒤에 ‘예수(Iesus)’라는 거룩한 이름이 공식적으로 추가되면서 성모송의 전반부가 완전히 완성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13세기 초 교황 우르바노 4세(1261~1264년 재위)가 교령을 통해 인준하면서 크게 확산되었다. 또한 당시 성 토마스 아퀴나스 등 신학자들의 장려로 “태중의 아들 예수”로 고백하는 성모송 전반부가 완전한 신학적 기틀을 갖추게 되었다.

4단계: 후반부 청원기도의 형성과 전례적 최종 확정(14세기~16세기)

14~15세기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대역병)과 참혹한 전쟁 속에서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신자들은 영혼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저희가 죽을 때를 위해 빌어달라”는 절박한 전구(대신 빌어줌)를 청하기 시작했다.

각 지역과 수도회(프란치스코회, 카르투시오회 등)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죄인인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와 같은 다양한 후반부 문구를 사적으로 때에 따라 덧붙여 기도했다. 후반부 청원문(“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의 표준화에는 프란치스코회의 기여가 컸다. 15세기에 프란치스코회의 성무일도서에 이미 오늘날 형태와 매우 유사한 후반부가 들어가 있었다.

이후 종교개혁의 도전에 직면한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온 교회의 전례를 하나로 통일했다. 트리엔트 공의회 교리서(Catechismus Romanus)가 출판되고, 1568년 교황 성 비오 5세가 개정된 《로마 성무일도(Breviarium Romanum)》에 오늘날 우리가 바치는 형태의 성모송을 수록하면서,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공식 기도문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트리엔트 교리서에서 성모송은 여전히 ‘천사의 인사(Salutatio Angelica)’라는 이름으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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