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 시몬과 죄인인 여자

루카 복음 7,36-50에는 바리사이 시몬과 죄인인 여자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용서받은 죄인인 여자’, ‘시몬의 집에서 있었던 식사’, ‘바리사이와 죄인인 여자’, ‘깨어진 옥합과 향유’,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 ‘여인의 머리로 닦은 예수님의 발’, ‘두 채무자 비유’, ‘용서에서 흘러나온 사랑’ … . 복음의 수많은 대목 중 이토록 다채로운 제목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장면이 또 있을까 싶다.
이 텍스트에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바리사이 시몬과 이름 없이 소문으로만 알려진 ‘죄인인 여자’이다. 한 사람은 공개적인 의인(적어도 그렇게 보이기를 바라는)이고, 다른 한 사람은 공개적인 죄인이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해 놓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발 씻을 물조차 주지 않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머리털로 발을 닦고 향유를 부으며 끊임없이 입을 맞추었다.
이러한 대비는 비유 속에서도 이어진다. 500데나리온의 큰 빚을 진 자와 50데나리온의 작은 빚을 진 자, 곧 곧 많이 용서받은 사람의 큰 사랑과 적게 용서받은 사람의 작은 사랑이다.
예수님 앞에는 늘 이처럼 서로 다른 두 모습의 인간이 서 있다. 루카 복음 15장의 ‘큰아들과 작은아들’, 마태오 복음 21장의 ‘밭으로 나간 아들과 나가지 않은 아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모욕한 죄수와 자비를 청한 죄수처럼 말이다.
성경은 인간을 자주 ‘둘’의 관계 안에 세운다. 인간의 내면 역시 갈등 속에 이성과 양심의 법, 그리고 죄의 법이 맞서는 것처럼 둘로 갈라져 있다.(로마 7,23 참조) 형제와 형제, 의인과 죄인, 순종하는 이와 거부하는 이, 선과 악이 서로 마주 선다.
그러나 성경의 본질적인 관심은 둘을 갈라놓거나 누구 하나를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그 둘 사이에서 어떻게 관계가 회복되는가에 있다. 루카 복음 7장의 시몬과 여인 역시 그렇게 마주 서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바로 그 두 사람 사이에 예수님께서 계신다는 점이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단순히 ‘죄 많은 여자’라는 세간의 낙인으로 바라보지 않으셨다. 자신의 죄를 숨기지 않고 자비를 향해 나아온 한 인간으로 보시면서, 그의 눈물과 입맞춤과 향유를 기꺼이 받아들이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몬 역시 외면하지 않으신다. 탕자의 비유에서 집 나간 둘째 아들을 달려가 맞이하면서도, 밖에 서서 불평하는 첫째 아들에게 나가 다정하게 말을 건네던 아버지처럼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루카 7,40) 하시며 시몬에게도 다가가신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이름을 부르시며 두 채무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여인에게는 구원과 용서를 선언하시고, 시몬에게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회개의 길을 열어주신다. 시몬은 여인의 죄를 보았지만 자신의 결핍은 보지 못했고, 여인은 자신의 죄를 안고서도 예수님 앞에 나아왔다.
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비를 향해 나아왔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의로움에 머물며 타인의 죄를 판단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둘 중 어느 한 사람만을 선택하여 편을 가르지 않으신다. 여인을 구원하여 살리시는 동시에, 시몬에게도 타인을 판단하던 눈을 거두고 새로운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라고 초대하신다.
따라서 이 복음 대목의 중심에는 단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두 사람 사이에 계신 예수님이 계신다. 시몬과 여인은 비록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서 있지만, 둘 다 예수님의 사랑 어린 시선 안에 있다. 한 사람은 용서를 받아 사랑을 드러내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에게도 참된 용서가 필요함을 깨닫도록 초대받는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편 갈라 세우시는 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우리 모두를 당신의 자비 앞에 함께 세우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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