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의 옷자락

“대대로 옷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여라. 그리하여 너희가 그것을 볼 때마다, 주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고, 너희 마음이나 눈이 쏠리는 것, 곧 너희를 배신으로 이끄는 것에 끌리지 않도록 하는 술이 되게 하여라. 그래서 너희는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실천하여, 너희 하느님에게 거룩한 사람들이 되어라.”(민수 15,38-40)

이 말씀에 따라 유다인에게 옷자락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율법과 신앙을 기억하게 하는 표지였다. 유다인이셨던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술이 달린 옷을 입으셨다.

신약성경에서 ‘옷자락(κράσπεδον, kraspedon)’이라는 말은 몇 번 등장한다. 하혈하던 여인이 치유를 갈망하여 만지고자 했던 것도 그 옷자락이었고(마태 9,20 루카 8,44), 병자들과 군중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했던 것도 그 옷자락이었다.(마태 14,36 마르 6,56) 반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이를 과시의 도구로 삼았으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셨다.(마태 23,5)

이처럼 같은 옷자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허영의 장식이었고 다른 이들에게는 간절한 구원의 자리였다.

하혈하던 여인과 군중에게 옷자락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거리에서 겨우 닿을 수 있었던 은총의 자리였다. 그것은 감히 가까이 갈 수 없는 이들의 거리였고, 조심스러운 믿음이 스며든 접촉이었다. 그들은 이름 없이 밀려난 이들이었고, 멀리서 바라보다가 마침내 떨리는 손으로 은총을 스치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그 옷자락은 단순한 옷의 일부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믿음이 머무는 자리, 은총이 스며드는 자리였다. 인생을 사는 동안 주님의 옷자락만이라도 스치기를 바라는 간절함, 그리고 언젠가 그렇게 닿았던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참으로 아름답다.

한 사목자는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제가 당신 은총의 옷자락을 스쳐보기라도 하고 싶었던 그 갈망이 바로 당신에게서 멀어져 있던 저의 심연이 아니었겠습니까? 그 깊은 곳에서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다정함을 어루만질 수 있었나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오직 그 순간의 살아 있는 기억으로 남게 하소서. 아멘!」

* 위 기도문은 안젤로 카사티Angelo Casati 신부의 다음 구절을 옮긴 것이다. 「E non sarà l’abisso della mia lontananza a sfiorare il tuo manto, Signore? Dal profondo ho toccato tremando la tua tenerezza. Di questo e null’altro essere memoria vivente sulla ter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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