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容恕

제자 자공子貢이 스승 공자에게 평생 간직할 만한 한 글자를 청하자, 공자는 ‘용서할 서(恕)’를 일러주었다고 한다. ‘용서’는 동양의 고전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어휘이기도 하다. 구약을 넘어 신약에 이르기까지, 용서는 인간과 하느님, 그리고 인간 상호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중심 개념으로 자리한다.
신약성경에서 ‘용서’는 대체로 세 가지 어휘로 드러난다. 먼저 「ἀφίημι(아피에미)」는 빚이나 죄를 면제해 주고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며 멀리 던져버린다는 뜻으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마태 6,12), “일흔일곱 번까지라도”(마태 18,21-22), 그리고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와 같은 구절에서 확인된다.
둘째 「ἄφεσις(아페시스)」는 ‘죄 사함’ 혹은 ‘해방’을 뜻하며, 묶여 있던 상태에서 완전히 풀려나는 것을 가리킨다.(마태 26,28; 사도 2,38; 에페 1,7) 최후의 만찬에서 당신의 피를 언급하실 때와 베드로의 설교, 그리고 바오로의 선언에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χαρίζομαι(카리조마이)」는 ‘은혜’를 뜻하는 ‘카리스(χάρις)’에서 파생된 말로, 값없이 베푸는 사랑과 관용의 행위를 의미한다.(에페 4,32; 콜로 3,13; 2코린 2,10) 이들은 모두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서, 서로 용서해야 함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
우리말 ‘용서’는 때로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들린다.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행위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인간이 서로를 용서한다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요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용서’는 정의나 책임의 문제와 얽히며, 쉽게 입에 올리기조차 조심스러운 말이 되어버렸다.
‘용서容恕’라는 한자에서 용서의 의미는 오히려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서(恕)’는 마음 심(心)과 같을 여(如)가 결합된 글자로, ‘내 마음을 남의 마음과 같이하는 것’을 뜻한다. 곧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놓아보는 공감의 행위다. 여기에 더해 ‘용(容)’은 흔히 ‘얼굴’로 풀이되지만, 글자 모양 자체도 집안이나 곳간에 놓인 항아리에서 유래하여 무엇을 담아내는 그릇을 뜻한다. 얼굴은 마음을 담는 자리이며, 한 사람의 내면이 밖으로 드러나는 통로이다.
이 지점에서 동양의 오래된 통찰이 떠오른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성정을 헤아리는 것을 ‘관상(觀相)’이라 하고, 마음의 상태가 얼굴과 삶에 드러나는 형상을 ‘심상(心相)’이라 한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관상은 심상만 못하다(觀相不如心相)”고 하였다. 겉으로 드러난 형상보다, 그 근원이 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결국 용서란, 타인을 향해 내 마음을 열어 그를 내 안에, 내 얼굴에 담아내는 일이며, 그 마음의 상태가 다시 나의 얼굴과 삶을 빚어가는 과정이다. 용서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며 존재의 방향이다. 마음이 새로워질 때, 인간은 비로소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당신 면전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당신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주소서.”(시편 51[50],12-14)라고 기도한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