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자비와 성녀 파우스티나

교회에는 성녀 파우스티나St. Faustina Kowalska의 시성과 함께 ‘주님 수난 성 금요일’부터 부활 제2주일까지 이어지는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9일 기도 관습이 생겨났다. 이 기간에 교회는 기도를 통하여 성녀와 함께 특별히 ‘ABC’(A – Ask for His Mercy.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라. / B – Be merciful.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C – Completely trust in Jesus.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라.)를 기억하며 실천하고자 한다.
성녀와 하느님의 자비 신심
성녀 파우스티나는 1905년 8월 25일 폴란드 글로고비에츠의 신심 깊은 농가에서 출생하여 헬레나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수도자의 삶을 꿈꾸었다. 16세에 가사 도우미로 일하기 위해 집을 떠났으나 환시를 체험한 후 수도생활을 위한 부모의 허락을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수녀원에 들어갈 소액의 초기 비용마저 마련이 어렵다는 이유로 부모의 허락을 구하지 못했다. 자신의 노력으로 비용을 마련하고 1925년 8월 1일 마침내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입회할 수 있었고, 크라쿠프에 있는 수녀원에서 수련기를 보냈으며, 착복식 때 마리아 파우스티나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1935년 5월 1일 종신서원을 했다.
그녀의 깊은 영적 삶은 장상들과 고백 사제를 통해 전해진 ‘일기’를 통해서 알려진다. 그녀 영성의 기초는 하느님 자비의 신비로, 그녀는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이를 묵상하고 일상의 삶 속에서 관상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환시, 계시, 보이지 않는 오상, 하느님과의 신비적 일치, 마음을 읽는 통찰력과 예언의 은사 등 특별한 은총으로 그녀를 이끌어주셨다. 그러나 수녀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어진 엄격한 생활과 장기간의 단식은 그녀의 몸을 쇠약하게 만들었다.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육체적 고통은 물론 ‘수동적인 밤(passive night of the spirit)’이라는 내면의 영적 고통이 심해졌다. 그녀는 13년간의 수도 생활을 마친 1938년 10월 5일,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의 사명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시작될 것임을 확신합니다.”(일기 281)라는 성녀의 말처럼 그녀의 삶을 통해 전해진 하느님 자비에 관한 신심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녀의 유해는 크라쿠프 인근 와기에브니키에 있는 하느님 자비 성지에 안치되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1993년에 그녀를 복자품에 올렸고, 2000년에 성인품에 올렸다.
2000년 4월 30일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성식 강론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 교회에서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 자비 주일’로 부를 것을 선포했다. 폴란드 출신 교황은 이 신심의 위대한 후원자였다. 이 신심은 1938년에서 1959년 사이에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교황들의 지지와 많은 목자의 관심, 주교들과 교황청 부서들의 수많은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 신심은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특히 1959년 신앙교리부는 부정적인 통지(Notification)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느님 자비 신심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립되었다. 그는 1980년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찬양했고, 1997년 6월 7일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하느님 자비 축일 제정을 통해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는데 개인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의 섭리에 감사드립니다.”(크라쿠프 하느님 자비 성지 연설) 1994년 9월 1일, 경신성사성은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뜻에 따라 ‘하느님 자비(De Misericordia Dei)’ 기원 미사 경본을 승인했으며, 이 텍스트는 보편 교회에서 사용하도록 공포되어 현재 모든 미사 경본에 포함되어 있다.
하느님 자비에 관한 그림 세 가지
하느님 자비의 그림은 예수님께서 1931년 2월 22일 프워츠크 수녀원의 방에서 일어난 환시를 통해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계시하신 것으로 알려진다. 그녀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저녁에 제 방에 있었을 때, 흰옷을 입으신 주 예수님을 보았다. 한 손은 축복을 위해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은 가슴 부분의 옷을 만지고 계셨다. 가슴에서 약간 비켜난 옷자락 아래에서 두 줄기의 커다란 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하나는 붉은색이었고 다른 하나는 옅은 색이었다. … 잠시 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보는 모습 그대로 상본을 그리고, 그 아래에 <예수님, 저는 당신께 신뢰하나이다>라는 문구를 적어라.’”(일기 47)
파우스티나 수녀로부터 직접 지침을 받은 화가 유진 카지미로프스키Eugene Kazimirowski가 1934년 빌뉴스에서 하느님 자비 그림을 처음으로 그렸다. 화가 유진 카지미로프스키를 직접 고용한 책임자는 성녀의 영적 지도자이자 고해 신부였던 복자 미카엘 소포치코 신부였다. 이 그림이 성녀의 감독과 고백 신부의 지휘 아래 그려진 하느님 자비에 관한 첫 그림이고 원본인 것은 사실이지만, 1958년의 편지에서 복자 소포치코 신부는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가 이 그림을 본 후 울었다고 기록했다. 그녀가 직접 목격했던 부활하시고 영광에 싸인 주님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담아내기에 이 그림이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다.(일기 313 참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하느님 자비에 관한 그림은 아돌프 히와Adolf Hyla가 그린 크라쿠프 라기에브니키의 그림이다. 아돌프 히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폴란드 자비의 성모 수녀회에 이 그림을 기증했다. 수녀들은 이 그림을 와기에브니키 수녀원에 있는 성 파우스티나 수녀의 무덤 위에 모셨다. 이 그림은 1944년 하느님 자비 주일에 파우스티나 수녀의 고해 신부 중 한 명이었던 예수회 조제프 안드라쉬 신부에 의해 축복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와기에브니키에서 이 그림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신심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이 그림의 몇몇 측면 역시 성 파우스티나 수녀가 요청한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축복하시는 그리스도의 손이 너무 높이 들려 있고, 그리스도의 시선이 파우스티나 수녀가 강조했던 ‘약간 아래쪽’이 아닌 보는 이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또한, 이 판본은 관람객을 향해 더 직접적으로 비쳐야 하는 자비의 빛줄기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몇십 년 뒤인 1970년대에 마리아 수도회는 미국 화가 로버트 스켐프에게 하느님 자비에 관한 새로운 그림 제작을 의뢰했다. 1982년에 완성된 이 버전은 그리스도의 가슴에서 나오는 빛줄기가 보는 이를 거의 정면으로 비추도록 표현함으로써 히와 그림의 문제점을 수정하려 노력했다. 이 유명하고 초현실주의적인 묘사의 그림은 필리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판본이 되었으며, 마닐라 외곽의 하느님 자비 성지 제대 위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이 버전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아름다우심인 하느님의 자비를 성녀가 체험하고 보았던 그대로 구현한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실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이 그림의 위대함은 색채나 붓의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은총에 있다.”(일기 313) 이 세 가지 유명한 그림 판본은 모두 성당 내 현시와 신자들에게 보급할 수 있도록 교회법적 승인을 받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세 판본 모두 은총과 자비의 특별한 그릇인 것이 사실이다.(일기 47-48, 327 참조)
하느님 자비에 관한 그림들의 의미는 부활 제2주일에 봉독되는 성 요한 복음의 내용, 즉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장소에 나타나 고백성사를 세우시는 장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참조. 요한 20,19-29) 따라서 이 그림들은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대가로 얻어낸 죄의 용서를 통해 인간에게 평화를 베푸시는 부활하신 구세주를 나타낸다. 창에 찔린 예수님의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의 빛줄기, 그리고 십자가 처형의 상처 자국은 성금요일의 사건을 상기시킨다.
예수님께서는 이 그림을 공경하는 이들에게 세 가지 약속을 주셨다: ① 영원한 구원, 원수들에 대한 구원의 승리 ② 그리스도인 완덕의 길에서의 큰 진전 ③ 행복한 죽음의 은총이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이 자비로운 예수님의 상본은 흔히 ‘하느님 자비 상본’이라 불린다. 예수님께서는 이 상본이 “내 자비의 요구를 상기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아무리 강한 믿음이라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일기 742)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
하느님 자비 신심의 모든 형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다.
예수님께서는 1931년에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이 축일을 세우고자 하는 당신의 바람을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자비의 축일이 있기를 바란다. 네가 붓으로 그릴 이 그림이 부활 제2주일에 장엄하게 축복받기를 원한다. 그 주일이 바로 자비의 축일이 되어야 한다.”(일기 49) 하느님의 자비는 “하느님의 가장 큰 본성”(일기 301)이다.
로지츠키 신부의 연구에 따르면, 그 후 몇 년 동안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14번 나타나 이 요청을 거듭하셨다. 주님께서는 교회 전례력에 따른 축일 날짜, 제정 원인과 목적, 준비와 경축 방법, 그리고 이 축일을 지킴으로써 받게 될 은총들을 일러주셨다.
부활 제2주일을 선택한 것은 깊은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구속의 파스카 신비와 자비의 축일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이제 구속 사업이 주님께서 요청하신 자비 사업과 결합되어 있음을 본다.”(일기 89)라고 기록했다.
예수님께서는 이 축일을 세우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다. “영혼들은 나의 비통한 수난에도 불구하고 멸망해가고 있다. … 만약 그들이 나의 자비를 숭배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일기 965) 이 축일은 성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하느님 자비의 9일 기도’(또는 하느님 자비의 기도)를 통해 준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축일 당일에 “이날 생명의 샘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누구나 죄와 벌의 완전한 사함을 받을 것”(일기 300)이라고 말씀하셨다. 로지츠키 신부가 지적했듯이, 이 축일은 범한 죄에 대한 잠벌만을 면해주는 ‘전대사’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일기의 내용을 보면, 파우스티나 수녀는 고해 신부의 허락을 받아 개인적으로 이 축일을 처음으로 지냈다. 프란치스코 마하르스키 추기경이 1985년 사순절 사목 서한을 통해 크라쿠프 교구에 이 축일을 도입했고, 이후 폴란드의 다른 교구 주교들도 그 뒤를 따랐다.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 자비를 공경하는 관습은 이미 1944년 크라쿠프 와기에브니키 성지에 존재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