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인 피에로 델 폴라이올로(Piero del Pollaiolo, 1441~1496, Antonio del Pollaiolo의 동생)는 7가지 덕목(Seven Virtues: 지혜, 정의, 절제, 용기라는 네 가지 사추덕四樞德과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세 가지 향주덕向主德)을 연작으로 그리면서 지혜(The Prudence, 신중함, 슬기로움)라는 작품에서 지혜를 의자에 앉아 오른손에 거울을, 그리고 왼손에 뱀을 쥐고 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그린다.(*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 왼쪽 그림, 아래는 부분화)

고대로부터 뱀은 허물을 벗고 재생하는 치유와 지혜의 상징이었다. 그림은 금세 첫 여인을 유혹했던 창세기의 뱀을 떠올리게 한다. 창세기의 뱀이 하와에게 건네는 유혹의 달콤함은 지혜라기보다는 간교한 꾀나 계략에 가깝다. 그런데도 뱀이 지혜의 상징인 것은 사실 지혜와 간계·계략이 비슷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간계·계략은 왜곡된 지혜(cunning)이다. 나 밖의 누군가를 위할 때는 지혜이지만 나의 사리사욕을 위할 때 그것은 사악한 꾀요 간계이다. 그림에서 거울은 자기 얼굴을 보는 헛된 욕망의 상징이면서 자신의 외모를 비추어보고 진리에 비추어보는 자기 성찰의 상징이다. 성경에도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지혜 7,26) 하였으니 지혜의 여인이 거울을 들고 있는 것은 마땅하다.

작품에서 여인은 뱀을 쥐고 있는 팔에 뱀에게 물려 피를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붉은색은 안료의 배치와 보존 상태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부분이다. 여인이 입고 있는 옷의 소매가 화려한 붉은색이며,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붉은 기운은 옷의 안감이나 장식적 요소가 투영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정설이다. 뱀의 입 부분에 묘사된 붉은 혀나 입의 색감이 손가락 주변에 번져 보이거나 강조되어 있어 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붉은색의 곡해보다는 뱀의 몸통이 손을 휘감고 있는 역동적인 모습과 그 주위를 감싼 화려한 의복의 붉은 색조가 어우러져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여인은 뱀이 지닌 독이나 저항을 무릅쓰고 지혜를 강하게 움켜쥐고 있다.

그림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하고 말씀하신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지혜는 우리 말로 신중함이자 슬기로움이다. 이는 그저 말만 앞선 재치 있는 응답이 아니다.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보는 사람과 같습니다.”(야고 1,23) 하는 말씀처럼 실천과 실행이 뒤따르지 않는 말을 지혜라고 하지는 않는다. 말과 행동이 함께 가는 실천적 지혜라야만 참 지혜요 슬기로움이다. 그림의 여인도 지혜이기 위해서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는 자기 성찰과 인식(self-knowledge)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여인은 달리지도, 서 있지도 않는다. 조용히 앉아 있다. 이는 결정을 내릴 때 충분한 시간을 갖고 판단을 내림에 있어 부당한 서두름을 피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언을 구하고, 수단을 선택하고, 행동을 실행함에 있어 차분하고 침착하다.

그림이 말하는 지혜는 실천적 지혜이다. 실천적 지혜는 무엇이 옳은지 아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실제로 행하게 하는 힘이다. 지혜는 위험을 모르는 순진함이 아니라, 위험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다룰 줄 아는 힘이다. 일상의 더 작은 결정들을 내릴 때도 실천적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로운 결정 과정에는 세 가지 단계가 포함된다. 첫 번째는 우리가 염두에 둔 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 가능한 수단들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taking counsel)’ 것이다. 선한 목적으로 무엇인가를 시작하였더라도 만약 내가 부당하게 서두른다면(undue haste) 낭패다. 실천적 지혜의 다음 측면은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올바른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다. 생각 없는 사람이 되기보다,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은 수단의 적합성에 대해 건전한 판단과 선택을 한다. 실천적 지혜의 마지막이자 절대적으로 근본적인 측면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명령(command, imperium)’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는 선한 행동을 ‘실제로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필자는 counsel, choice, command의 앞 글자들을 따서 이를 ‘좋은 결정을 위한 3C’라고 부른다)

실천적 지혜는 단지 무엇이 옳은지 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실천적 지혜는 옳은 일을 실제로 행하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천적 지혜의 힘을 지닌 것이 아니라 의지의 나약함을 가진 것이다. 실천적 지혜는 이상과 욕구, 그리고 행동이 조화를 이루는 주체의 통합성(integrity)을 드러낸다.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은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이론적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으로 옮긴다.

실천적 지혜라는 덕목은 어떻게 키워나가는 것일까? 그림의 제목이 말하는 ‘신중함, 슬기로움, 지혜’를 가리키는 ‘Prudence라는 말은 ‘앞을 내다보다’라는 뜻의 라틴어 ‘prudentia’에서 왔고, 이 말은 ‘앞을 보다(providere)’에서 유래한다. 구체적인 행동에서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하려는 행동의 결과가 어떠할지 고려하기 위해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유사한 상황에서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기 위해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또한 우리는 현재 상황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만드는 환경이 무엇인지 살피기 위해 제안된 행동의 다양한 측면을 주의 깊게 둘러보아야 한다. 이처럼 과거, 현재,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올바른 행동의 실행과 실천을 찾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성찰과 숙고는 지혜의 열쇠이다. 윈스턴 처칠에게서 전해진다는 말처럼, 모든 사람이 실수하지만,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운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경험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특히 더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리는 현자들과 성인들을 바라보며 우리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인생의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약점, 실수, 비극을 보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다. 의구심이 들 때는 경험 많고 거룩한 사람과 우리가 내리려는 결정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우리의 상황에 대한 피드백과 객관적인 관점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일에서 그러하듯, 육화하신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 지혜의 원천이시고 모범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또한 이 신성한 지혜를 나눌 수 있도록 당신의 성령을 보내주신다. 그러므로 실천적 지혜 안에서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길은 하느님의 선물인 지혜를 청하고, 기도하며, 그 지혜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