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가톨릭교회 안에서 예수 성심을 기리는 신심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이끌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더욱 가까이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예수 성심을 기리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하느님과 가까워진다.

예수 성심 공경의 간략한 유래와 역사

「…보나벤뚜라Bonaventura(1220~1274년), 메히틸다Mechtilde of Hackeborn(1241~1299년), 젤뚜르다Gertrude the Great(1256~1302년)와 같은 성인들이 예수 성심을 공경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세 시대에 특별히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의 설교 안에서 예수 성심을 기리는 신심은 십자가 위 예수님의 다섯 상처, 그중에서도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옆구리에 관한 내용이 중요한 축을 이룬다. 17세기에 들어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성심을 보여주시기로 선택하신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설립하신) 방문 수녀회의 성녀 마리아 마아가렛 알라코크St. Margaret Mary Alacoque에게 주어진 70회에 이르는 환시를 통해 예수 성심은 직접적이고도 분명하게 계시되었고, 예수 성심 공경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가톨릭교회의 중요한 신심으로 자리를 잡는다.…(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와 예수 성심聖心 https://benjikim.com/?p=4244)」

1675년 6월 16일 성녀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에게 발현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당신의 성심을 기리는 축일을 기념하고 널리 알리도록 당부하신다: 「나는 너에게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성혈 대축일 8일 축제가 지난 후 금요일에 나의 성심을 기리는 특별한 축일을 정하여 지내도록 부탁한다. 그날은 영성체를 할 것이며, (성체가) 제대 위에서 봉헌되면서도 그동안에 받았던 무례와 불경을 배상하기 위하여 장엄한 행동으로 보속을 해야 한다. 보라, 인간을 사랑하여 그 사랑을 증거하느라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마지막까지 소진한 성심이다.……성심을 공경하고 공경받도록 하는 이들에게는 나의 성심이 그들에게 다다라 하느님 사랑의 풍성함이 내리도록 약속한다.」

예수 성심을 기리는 신심이 널리 퍼져감에 따라 1856년 교황 비오 9세Pius IX(1792~1878년)께서는 ‘예수 성심 축일’을 공식적인 교회의 축일로 정했다. 1899년에 이르러서 교황 레오 13세Leo XIII(1810~1903년)께서는 예수 성심께 온 세상을 봉헌하였으며, 비오 10세Pius X(1835~1914년) 교황께서는 해마다 이 봉헌을 갱신하도록 하였고, 비오 12세 교황께서는 1956년에 예수 성심이 교회의 축일로 설정된 후 100주년을 맞아 예수 성심 공경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 회칙 <물을 퍼낼 지어다(Haurietis Aquas)>를 펴냈다. 한국에서는 1888년 7대 조선 교구장이었던 블랑Blanc(1884~1890년 재임) 주교께서 예수 성심께 한국 교회를 봉헌했다.

예수 성심을 기리는 여러 상징

예수 성심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예수 성심은 하느님 자비의 거울이다. 예수 성심은 당신의 백성을 하느님의 자비로 초대하신다. 이를 표현하기 위한 예수 성심 공경의 상징들은 불타오르는 심장, 사방으로 빛을 발산하는 심장, 가시관을 쓰고 창에 찔린 심장, 십자가와 함께 하는 심장, 피를 쏟으시는 심장 등과 같은 형태로 조각이나 이미지, 스테인드글라스 등으로 빚어져 다양하고도 감동적인 교회의 예술이 되었고, 신자들의 예수 성심 공경을 친숙하게 도왔다.

1. 불타오르는 심장

예수 성심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으로 십자가 위에서 희생 제물이 되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다. 그래서 예수 성심은 항상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묘사된다. 이는 구약의 모든 희생 제사(특별히 번제)를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의 희생으로 몸소 완벽하게 완성하셨다는 데에 그 깊은 뜻이 있다. 번제燔祭(holocaust, burnt offering)는 원래 구약 시대의 유다인들이 하느님께 짐승이나 다른 제물을 불에 통째로 태워 공물로 올려바치는 제사로서 온전하고 완전하게 자신을 봉헌한다는 의미를 담았었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를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봉헌하려 했던 이야기(참조. 창세기 22장)에서 구체적으로 목격한다.

둘째로, 구약에서 불이 항상 하느님의 현존과 연관되었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탈출 3,2) 모세 앞에 당신을 드러내신 하느님, 그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광야에서 당신 백성과 함께하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주셨다.”(탈출 13,21) 그뿐만 아니다.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엘리야 예언자가 마련한)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다.”(1열왕 18,38) 그래서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1열왕 18,39) 하고 엎드려 부르짖었으며 결국 바알의 예언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주님의 불길은 카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적한 엘리야 예언자의 제물을 불살라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셨다.

셋째로, 예수님의 심장은 인간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불로 타오르는 심장이 되신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성심이 그토록 뜨겁게 타오르시니 우리 마음도 그분을 향한 사랑으로 뜨겁게 불타올라야 한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9)라고 말씀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주님을 길에서 만났던 제자들도 주님을 만났을 때,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성심과 동행하는 이들의 마음도 예수님의 마음처럼 뜨겁게 불타오른다.

2. 사방으로 빛을 발산하는 심장

불타오르는 예수님의 성심은 사방으로 빛을 발산하여 뿜는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라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책인 묵시록은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묵시 21,22-23)라고 기록한다.

우리는 구약에서 모세가 산 위에서 40일간을 하느님과 함께 지내다가 증언판을 들고 내려왔을 때, 그리고 주님과 함께 만나고 이야기할 때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다”(탈출 34,29.30.35)라는 내용을 듣는다. 빛은 불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체험하며 이를 묘사하려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데려가신 높은 산 위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영광스러운 변모로 이를 체험했다: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마태 17,2)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마르 9,3)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루카 9,29)

또한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사도 9,3)라고 사도행전이 기록한 대로, 다마스커스로 가던 바오로 사도의 눈을 멀게 하여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도록 한 빛이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비추시며 우리에게 하느님을 계시해 주신다. 예수 성심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보여주는 하느님 자기 계시의 절정이다.

3. 가시관을 쓰고 창에 찔린 심장

예수 성심은 창이나 화살에 찔려 피를 흘리는 심장, 그리고 가시관을 두르거나 쓰신 심장으로 그려진다. 창에 찔린 모습은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4)라는 성경의 직접적인 증언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찌른 군사의 창으로만 끝나는 내용이 아니다. 그 창은 옆구리를 파고들어 예수님의 심장에까지 가닿아 자비의 피와 생명의 물을 쏟아붓게 한 창이며, 이는 인간의 죄를 상징하는 창이다. 또한 이는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루카 2,35) 평생 아드님 예수의 마음이 자기 마음이 되어 평생 속으로 피를 흘리며 사셨을 어머님을 잊지 못하여 십자가의 마지막 순간에 어머님을 제자에게 부탁하던(참조. 요한 19,25-27) 예수님의 마음이다.

군사들이 예수님께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마르 15,17)라는 구절에 따라 예수 성심은 곧잘 가시관이 올려지거나 두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예수님의 머리에 올려진 가시관이 예수님의 성심에 두른 가시관이 된 것은 머리에서 마음에 이르는 길고도 긴 고난의 여정에서 예수님 마음에 깊이 박힌 가시관이 되었음이다. 예수님의 머리 가시관은 곧 성심의 가시관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가시관은 수난의 가시관만이 아니다. 예수님의 가시관은 죄와 죽음을 이기신 “승리의 화관”(2티모 2,5)이며, 죽을 때까지 충실한 이들에게 “생명의 화관”(묵시 2,10)을 씌어주시는 분의 관이다.

4. 십자가와 함께하는 심장

예수 성심은 십자가 없이는 도저히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하느님 사랑의 세로축과 인간 사랑의 가로축이 하나로 담겼다. 복음에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신약성경에서는 총 74절에 십자가가 등장한다. 주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이다. 신약성경의 십자가에는 주님을 못 박아야 한다고 다그치며 외치는 못된 이들의 십자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고 명패를 달았던 빌라도의 십자가, 예수님을 못 박는 군사의 십자가, 키레네 사람 시몬의 십자가, 예수님 곁에 나란히 못 박힌 강도의 십자가, 십자가 밑에서 내려와 보라며 비아냥대는 이들의 십자가, 십자가 곁에 조용히 서 계셨던 성모님과 여인들의 십자가,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하여 예수님을 내려 모신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의 십자가, 그와 함께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고 아마포로 감싸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에 모신 니코데모의 십자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 그리고 제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매일 져야 한다고 예수님 몸소 당부하신 나만의 십자가가 모두 담겼다.

주님의 십자가를 두고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코린 1,23)라고 하면서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6,14)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2,19)라고 증언한다.

5. 피를 쏟으시는 심장

예수 성심은 피를 흘린다. 예수님께서는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7-28) 하셨다. 예수님의 오상五傷에서 흘러내는 피는 인간들의 죄의 용서를 씻어내기 위한 피, 새로운 계약의 피이다. 아래에 수록해놓은 예수님의 피와 관련된 신약성경의 구절들만을 조용히 읽어나가더라도 우리가 피를 흘리는 예수 성심의 은총을 얼마나 크게 입었는지를 알고 감동하게 된다.

특별히 히브리서는 대사제이신 예수님이시며 몸소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희생을 구약과 연관지어 상세하게 설명한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 그리고 더러워진 사람들에게 뿌리는 암송아지의 재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그 몸을 깨끗하게 한다면, 하물며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히브 9,12-14) “대사제가 해마다 다른 생물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듯이, 당신 자신을 여러 번 바치시려고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히브 9,25)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히브 12,4)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아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 주님께서 살해되시고 또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묵시 5,9)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1요한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7) “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 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1베드 1,18-19)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20)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히브 10,19-20) “자기들의 긴 겉옷을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빠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권한을 받고, 성문을 지나 그 도성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묵시 22,14)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히브 9,14)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로마 5,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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