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오로의 회심(1월 25일)

외로운 고독인으로서 유명한 쇠렌 키엘케고올Søren Aabye Kierkegaard(1813~1855년)은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강하다.”라면서 탄식한다. 그는 자신의 사고가 너무 거칠게 통제되지 않은 채로 나아가며 제멋대로이고 지나치게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닫고 폐쇄된 상태에서 함께 짐을 짊어질 누군가가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을 푸는 열쇠는 타인과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으로부터 얻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by Luca Giordano, 성 바오로의 회심The Conversion of Saint Paul, 1690

​사도 바오로도 그랬다. 불같은 열정으로 사도 바오로의 여정을 풀어내는 사람들이 많지만, 열정은 항상 극단적인 자기 폐쇄와 고지식함, 그리고 자기 강요를 지니는 측면도 있어서,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그는 가장 깊은 은총의 샘 앞에서 자기를 닫고 자기 세계에 갇혀버린 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냉소적이었고, 로마의 박해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극도의 종교적인 순수함을 지녀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주변에 강요하면서 “새로운 길”(사도 9,2;22,4.14.22)을 가려는 이들을 잡아 가두고 처형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사도 바오로는 그러한 자기의 폐쇄성이 자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삶을 유지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도 은총이 있었다. 기적적인 만남이 있었다. 그가 만들었던 스스로의 덫에서 그를 빠져나오게 한 예기치 않은 하늘의 선물이 있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은총의 빛을 만난 사도 바오로는 세상으로 나간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 이전의 사울을 두고는 철천지원수였을 그에게 용기 있게 다가간 하나니아스라는 이의 도움으로 눈을 뜨면서 세계 여행자가 되어 만나는 사람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참조. 사도 9,1-22) 그는 극심한 고초와 억울함을 겪으면서도 한 번 열린 그 열린 마음을 끝까지 유지했다. 어쩌면 이것이 사람들을 위한, 너와 나를 위해 이 세상 안에 자리를 마련하는 방법이다. 답답할 수도 있고 도망치고도 싶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 만큼 아름다운 세상이다. 내가 세상에서 멀어지고 떨어져 나가는 그만큼,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이다. 은총의 빛을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그 빛으로 열린 나를 끝까지 기도하며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뜨내기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여행자가 된다.(20230125 *이미지 출처-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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