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너나 잘사세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에게 상담차 호송(?)되어 온 A라는 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아이가 컴퓨터 오락에 빠져 학교를 등한시하고 심지어는 이를 은폐 엄폐하기 위하여 거짓말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처지에서 아이가 사악한 길에 접어드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이와, 또 엄마와 만나보니 내게 A는 극히 정상이었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 따라 뭐든지 더 잘해보려는 과도한 열성이 일을 망쳐버리듯 아이가 나름대로 커나가길 기다려주지 못하는 엄마의 조바심과 과도한 열성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엄마는 나와의 만남 뒤에 속을 끓여가면서 아이에게 뭔가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애를 쓰셨다. 그런데도 A에게 엄마가 원하는 식의 뚜렷한 변화가 없는 채로 시간이 얼마쯤 흐른 뒤, A 엄마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와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래서 A네는 이산가족이 되고 A 아빠는 말 그대로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언젠가 A 엄마는 결단을 내렸고, A만을 남겨놓은 채 한국에 돌아왔으며, A는 혼자서 아직도 미국이라는 곳에 살면서 대학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 A가 의젓한 모습으로 지난해 말에 한국에 잠깐 다녀갔다.

내 자식 없고, 또 자식 한 번 낳아 키워본 적도 없는 녀석이므로 속 편한 소리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너도 네 자식 낳아 키워보면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자식 없는 사람이라는 자유로움으로 배짱 좋게 몇 마디 사설을 붙이고 싶어진다. 첫째, 우리 부모님들은 제발 자신들의 인생이나 잘 사시고 챙기셨으면 좋겠다. 자식들을 위한 인생을 살지 말고 자신들을 위한 인생을 사시라는 것이다. 요샛말로 하자면 ‘제발, 너나 잘사세요’ 하는 말이다. 자식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자식들 교육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고 마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본다. 이런 경우의 부모님들은 부모라기보다 새끼들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그 새끼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들이 주변에 있는지 없는지 조바심 내면서 끊임없이 발톱을 세우는 동물의 어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둘째,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 그 관계가 종속관계나 상하관계 내지는 소유관계가 아니며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같은 관계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손자를 보신 동네 할머니들이 문 앞에 금줄을 치시면서 ‘우리 집에 아기 손님이 드셨다.’ 하셨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조물주께서 부모와 자식으로서 일정 기간 함께 의지하고 기쁨을 나누며 살아가라는 소중한 손님 같은 관계요, 인연이다. 자녀를 손님으로 대한다고 함은 내 식대로 아이를 만들고 싶어 하는 부모와 이에 반항하는 아이들의 관계와는 아주 다르다. 손님과의 관계는 마음이 오고 가는 정중함과 예를 갖춰 대접해야 하는 사이이다. 그래서 교육은 마음의 일이다. 셋째,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부모님들은 잘 생각해야 한다. 많은 부모가 내가 못 배웠으니 자식들만이라도 잘 가르쳐야 하겠다고 하고, 내가 배고프고 못 살았으니 자식만이라도 잘살게 해 주어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믿을 것이 결국 내 자식밖에 없다’라는 식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발상이요 스스로 못남을 드러내는 치졸함이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와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식을 둔 부부간에 아름답게,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자기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엄마와 아빠가 아름답게, 열심히, 행복하게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가 자기도 그 엄마나 아빠처럼 아름답게, 열심히,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같은 이런 방학 기간에 공항에 가면 외국에서 공부하는 애들이 오고 가는 광경을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다. 언젠가 이런 방학 기간에 외국으로 부인과 함께 자식을 떠나보내고 난 뒤, 쭈그리고 앉아 창문 밖을 멍하니 내다보면서 ‘도대체 이게 뭔 지랄인지 모르겠네.’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쓸쓸한 어떤 아빠의 모습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20060120, 경향신문 *이미지 출처-구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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