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忍, 마크로쑤미아)

성경의 언어에서 “인내”는, 특별히 복음에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에 관한 말씀 중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루카 8,15)이라는 말씀과 종말에 관한 말씀 중 끝까지 남아서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하시는 예수님의 당부에서만 보인다. 나머지는 주로 바오로 서간(로마 2,7;5,3.4;8,25;15,4.5 2코린 1,6;6,4;12,12 콜로 1,11 1테살 1,3 2테살 1,4;3,5 1티모 6,11 2티모 3,10 티토 2,2 히브 10,36;12,1)과 야고보 서간(야고 1,3.4;5,11) 베드로 서간(2베드 1,6) 그리고 요한의 묵시록(묵시 1,9;2,2.3.19;3,10;14,10.12)에서 보인다. 이상에서 열거한 성경 구절에 나오는 “인내”라는 말은 희랍말 ‘히포모네(ὑπομονή, hypomonē)’이고, 이를 영어로는 ‘endurance’나 ‘patient’로 옮긴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문맥에 맞춰 “꾸준히”(로마 2,7 히브 12,1) “인내심”(로마 8,25 묵시 2,3) “견디어”(2코린 1,6;6,4) “참고 견디어”(콜로 1,12) “고통”(묵시 14,10)으로 옮기는 외에 모두 “인내”로 옮겼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열매를 나열하는 갈라디아서 5,22에서 ‘히포포네’라는 말 대신에 ‘마크로쑤미아(μακροθυμία, makrothumia)’라는 단어를 사용한다.(*우리말에서는 별다른 구별 없이 “인내”로 옮겨져 있다) 이 ‘마크로쑤미아’라는 명사는 로마 2,4;9,22 2코린 6,6 갈라 5,22 에페 4,2 콜로 1,11 1티모 1,16 히브 6,12 야고 5,10 2베드 3,15 등에, 그리고 동사 ‘마크로쑤메오(μακροθυμέω)’는 마태 18,26.29 루카 18,7 1코린 13,4 1테살 5,14 히브 6,15 2베드 3,9 등에 등장한다. 명사로 사용될 때는 ‘인내’ ‘참아주심’ ‘인내심’ ‘참고 견디어 내기’ ‘끈기’ ‘참고 기다리시는 것’으로 번역되었고, 동사로 사용될 때는 ‘참다’ ‘미적거리다’ ‘끈기있게 기다리다’ ‘미루다’ 등으로 번역되었다.

‘마크로쑤미아’라는 말의 어근을 찾아가면 ‘긴, 오랜(영어로 long)’과 같은 뜻을 담은 ‘마크로스(μᾰκρός, măkrós)’ 더하기‎ ‘넋, 성질, 고통이나 열정(영어로 soul, temper, passion)’의 뜻을 담은 ‘쑤모스(θῡμός, thūmós)’로 이루어진 말로서 ‘긴 고통이나 특별히 내적인 수난(영어로 long passion/suffering)’ 정도가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인내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이요 기다리심이며, 벌하기에 머뭇거리심이며 오래 참으심이고, 끝내 그리스도의 수난이다.(*참조. 인내 https://benjikim.com/?p=3738)

한자에서는 ‘참을 인’을 설명할 때 ‘심상도心上刀’라 한다. 글자의 구성 그대로 ‘마음 심心’ 위에 있는 ‘(심장이 칼에 찔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 도刀’를 가리킨다. 누군가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인가를 위해서 심장을 칼로 찌르는 고통을 겪는 상태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8년 2월 12일 아침 미사 강론에서 ‘인내’를 설명하면서 내 어깨와 내 마음에 책임감으로 ‘짊어지는 것(이탈리아어로 portare su, 영어로 직역하면 bring/taking up)’이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내를 기리는 그리스도인의 인내는 원수를 사랑하기까지 하라는 그리스도의 계명이다. 또한 예언대로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루카 2,35) 성모님의 고통이다.

「4.43 인내라는 것은 착한 사람의 갑옷과 투구다. 이것으로 세상의 변고를 감당하고, 마귀를 이기며, 여러 삿됨을 공격하고 여러 가지 덕을 지킨다. 분노를 막고, 혀를 묶으며, 마음을 다스려 편안함을 기른다. 두려움을 누르고, 근심을 없애며, 다툼을 끊어낸다. 부자의 방자함을 누르고, 가난한 자의 굴욕을 펴주며,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겸손을 간직하게 해주고, 어려운 지경을 당한 사람에게 용기를 지니게 해준다. 인내는 남이 내게 죄를 얻으면 내가 즉시 이를 용서해주게 하고, 내가 남에게 죄를 얻으면 또 나로 하여금 영원히 용서를 구하게 만든다.(夫忍者, 善人之甲胄也, 以當世變, 勝鬼魔, 攻諸私, 保諸德, 防怒, 羈舌, 御心, 養安, 鎭怖, 祛憂, 絶争, 抑富者之恣, 伸貧者之屈, 居尊巍者使存謙, 受艱難 者使存勇, 人得罪於我, 令我即赦之, 我得罪於人, 又令我永求赦之.) (판토하, 칠극, 정민 옮김, 김영사, 2021년, 313쪽)」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0) 하였으니, 인내는 하늘 나라를 차지한 이들이 의로움 때문에 받는 박해와 시련이다. 야고보 사도는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야고 1,12) 한다.

2 thoughts on “인내(忍, 마크로쑤미아)

  1. 인내가 무섭습니다.
    그림이
    주는 느낌.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약속을 믿습니다.

  2. 인내라는 것은 착한 사람의 갑옷과 투구다. 이것으로 세상의 변고를 감당하고, 마귀를 이기며, 여러 삿됨을 공격하고 여러 가지 덕을 지킨다. 분노를 막고, 혀를 묶으며, 마음을 다스려 편안함을 기른다.

    저는 이 부분이 제일 좋습니다. 그 나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내는 저를 위한 것일 때 지속되더라고요. 참고 싶지 않을 때 ‘정의를 위해 한마디 해야겠어’ 하고 어줍잖은 짓을 합니다. 그저 인내의 부족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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