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7,31-37(연중 제23주일 ‘나’해)

오늘 복음 말씀은 마르코 복음만이 전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방인 지역에서(요즘 말로 외국에서) 이사야 예언자에 의해 예언되었던 표징 중 하나(제1독서)를 완성하신다. 치유과정은 매우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묘사는 그리스도교의 입교 예식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마르 7,31) 지리적인 이동 경로를 밝힌다기보다

마르 7,1-8.14-15.21-23(연중 제22주일 ‘나’해)

지난 5주 동안 “생명의 빵과 영원한 생명에 관한 말씀”으로 요한복음 6장을 통해 예수님의 긴 교리 수업과도 같은 말씀을 들었으며 다시 ‘나’해의 복음인 마르코 복음으로 돌아왔다. 오늘 복음이 처한 문맥상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빵을 먹이신 이야기(참조. 마르 6,30-34) 뒤에 이어지는 마르코복음 7장의 서두로 오늘 복음은 전개된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일부 바리사이들이나 율법 학자들이 제기하는

요한 6,60-69(연중 제21주일 ‘나’해)

전례적으로 요한복음 제6장의 종결부에 드디어 도달했다. 다음 주부터는 ‘나’해의 복음인 마르코복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의 빵”에 관한 긴 말씀이 유다인들뿐 아니라 심지어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논란과 충격이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 공동체 간에 야기된 이러한 논란과 위기에 맞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 곧 하느님께서 보내신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요한 6,51-58(연중 제20주일 ‘나’해)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라고 시작하는 총 21개의 장으로 형성된 요한복음의 저자, 그리고 편지글에서 “하느님은 사랑”(1요한 4,8)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복음사가 요한, 적어도 그와 같은 계보에 있었다고 여겨지던 저자는 시종일관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내용을 그 근본 핵으로 삼아 자기의 복음을 엮어간다. 요한은 하느님의 사랑을 묘사하면서 유별나게 인간들의 ‘밥자리’를 모티브로 삼는다.

요한 6,41-51(연중 제19주일 ‘나’해)

연중 제17주일부터 제21주일까지 다섯 번으로 나누어 듣게 되는 요한복음 6장의 내용 중 그 세 번째인 오늘 복음은 한 마디로 예수님 자신의 신원과 정체성(identity)에 관한 자기 계시이다. 오늘 복음은 지난 주 복음의 마지막 절을 반복하고 그에 이어지는 대목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주님 앞에 유다인들이 수군거리니 주님께서는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하시며 당신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요한 6,24-35(연중 제18주일 ‘나’해)

빵을 많게 하시어 이를 나누게 하신 표징을 보고 배불리 빵을 먹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면서 예수님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이를 거부하시고) 혼자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한 6,14-15)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가려는 제자들을 뒤에 남겨 놓으셨다.(참조. 요한 6,16-17) 제자들이 호수를 건너가는 중에 날은 “이미

요한 6,1-15(연중 제17주일 ‘나’해)

‘나’해에는 마르코복음을 따라가는 것이 원칙이다. 이에 따라 지난주 연중 제16주일까지 마르코복음이 계속 낭독되었다. 그러나 ‘나’해의 연중 제17주일부터 21주일까지 다섯 주 주일은 요한복음 6장에서 복음을 취한다. 마르코복음의 순서를 따라가되 내용상으로 더욱더 풍부한 요한복음을 취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연중 제22주일에는 다시 마르코복음 7장으로 돌아와 연중 제33주일까지 마르코복음이 주일 복음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복음은 원래

마르 6,30-34(연중 제16주일 ‘나’해)

오늘 복음은 전개 순서로 보아 세례자 요한의 죽음(마르 6,17-29)과 빵을 많게 하신 기적(마르 6,35-44)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예수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도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그동안의 활동을 보고한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중에 쉴 틈이 없는 사도들의 활약으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특별한 능력들이 실제로 발휘되었고, 예수님 역시 가엾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시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1.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다 보고하였다”

마르 6,7-13(연중 제15주일 ‘나’해)

오늘 복음은 공관복음이 공통으로 전하는 복음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을 예수님이 자기 고향인 나자렛에서 무시를 당하시고, 또 세례자 요한이 죽음을 당한 다음에 배치한다. 이는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제자들을 파견하셨다는 이야기가 된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파견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기 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사명 수행에서 지녀야 할 생활 방식과 태도에 대하여 당부하신다.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진 파견이었지만, 제자들의

마르 6,1-6(연중 제14주일 ‘나’해)

전도 여행을 나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고향 나자렛으로 가신다.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많은 이들이 주시하며 예수님을 관찰한다. 고향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닌 선입견, 천한 노동 계급이라는 예수님의 출신 배경, 그 배경을 잘 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못마땅하게 여긴다. 오늘 복음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 우리의 습관적인 태도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일상 안에서 그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