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 ‘다’해(루카 14,1.7-1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이시다. 헤로데는 이미 예수님을 없앨 방도를 세웠고, 일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이를 귀띔해주며 도망하라고 권고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도망가지 않으시고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실 때까지 그 길을 가신다고 하시면서,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연중 제21주일 ‘다’해(루카 13,22-30)

결국 하나의 가설이지만, 일반적으로 복음 중 맨 먼저 쓰였다고 보는 마르코복음은 661절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600절 이상이 1068절에 달하는 마태오복음에 담겼고, 350절 이상은 루카복음에도 담겼다. 한편 마르코복음에는 없는 내용을 마태오와 루카는 230절 정도 공유한다. 각 복음서가 담은 고유한 절의 수는 마태오가 330절, 마르코가 53절, 루카가 500절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처럼 마르코복음이나 마태오복음, 그리고 나름대로 수집한 구전口傳 자료를

연중 제20주일 ‘다’해(루카 12,49-53)

오늘 복음 말씀은 몇 가지 부분에서 상당히 엄하다고 할 수 있는 표현을 담고 있어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또한 말씀을 해설하는 이들이 이 말씀을 자기 본위의 그리스도교적인 생각에 근거하여 인위적으로 그릇되게 활용하기까지 한다. 주님의 말씀 자체가 담고 있는 권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대로 『성경은 스스로 해석한다.(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라는 원칙에 의하여 예수님의

연중 제19주일 ‘다’해(루카 12,32-48)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계속 오르시는 여정을 배경으로 한다. 예루살렘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곧 세상을 떠나실 일”(루카 9,31), 예수님의 출애굽, 예수님의 죽음이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유다 종교계 지도자들의 적개심은 높아만 갔고, 자기들이 기대한 방식의 메시아로서 행적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일반 군중의 호감도 날이 갈수록 점점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져 감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장차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연중 제18주일 ‘다’해(루카 12,13-21)

사람들은 예수님을 율법서인 토라를 비롯하여 성경 말씀을 권위 있게 풀이할 수 있는 라삐요 스승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나 청중들이 예수님께 당시 유다이즘의 논란거리나 일상의 문제들에 관하여 질문을 드리곤 하였다. 1.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탐욕을 경계하여라”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여정 동안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제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루카 12,13)

연중 제17주일 ‘다’해(루카 11,1-13)

이번 주 복음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예수님의 기도와 ‘주님의 기도’(1-4절), ② 끊임없이 간청하는 친구에 관한 비유(5-8절), 그리고 그 ③ 비유의 적용(9-13절)이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시고 떠나신 소위 ‘예루살렘 상경’ 동안 예수님의 모습에 관해서 루카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정보들에 기초하고 있다. 이 여정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잠시 길을 멈추기도 하시고 쉬기도 하셨으며

연중 제16주일 ‘다’해(루카 10,38-42)

루카가 세 번째 복음을 기록할 때 그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경험을 지닌 교회의 사람으로 자신을 의식하면서 이를 복음의 2부라고 할 수 있는 사도행전에서 묘사하려 한다. 루카는 당시 교회에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예배 방식이나 생활 양식에 다양한 모습이 있고, 이들 사이에 일정한 긴장이 있음을 기록한다. 예를 들어, 루카는 사도행전에서 식탁 봉사와 말씀 봉사 사이에 어느 정도

연중 제15주일 ‘다’해(루카 10,25-37)

이번 주 주일 복음은 “자비”가 단지 어떤 느낌이나 마음에 와닿는 어떤 깊은 감정 정도가 아님을 생각하게 한다. 물론 자비는 분명히 이러한 느낌이나 감정에서 시작하지만, 나아가서 어떤 행동이나 실천, 실제 자비를 행하는 동사動詞로 번역되어야만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던 “어떤 율법 교사”에 대한 예수님의 최종적인 답으로서 “자비를 베푼”, 그리고 “그렇게 하여라” 하시는 복음 마지막 구절에서

연중 제14주일 ‘다’해(루카 10,1-12.17-20 또는 10,1-9)

오늘 복음 대목은 제자들의 사명에 관한 메시지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가 민족들의 복음화에 관해 지녀야 할 내용과 태도에 많은 영감을 준다. 1.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앞서 둘씩 보내시며” 복음의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도”, 곧 ‘선교사’요 ‘파견자’라고 부르시는 열두 제자를 선발하시고(루카 6,13) 그들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주게 하셨다.(루카 9,1)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마태 16,13-19)

두 사도를 함께 기리는 대축일이자 교황 주일이다. ‘부르심 / 사명 / 순교’라는 세 키워드로 그분들을 비교하면서 기려본다. (※참조. 열쇠와 칼 https://benjikim.com/?p=4633) 뒷부분에 2024년 6월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삼종기도 훈화 말씀 번역문(우리말, 영문)이 덧붙여져 있다. 1. 부르심 베드로의 부르심을 보자면, 베드로는 민물고기 어부였으며 벳사이다 태생이었고 주로 카파르나움에서 성장하던 중에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안드레아라는 동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