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한 그루의 나무가 어떤 가구나 건축의 재료일 뿐이라면, 강이나 바다가 장마 때 효율적으로 우리의 쓰레기들을 떠내려 보내면서 유기할 공간일 뿐이라면, 들에 핀 꽃들이 우리의 기분전환을 위한 장식일 뿐이라면, 숲속의 동물들이 필요할 때 인간에게 단백질을 제공해 주는 고깃덩어리일 뿐이라면, 우리는 자연을 우리가 정복해야 할 대상이요 관리해야 할 자원이며 우리의 소유물로 대하는 것이 된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은

음악

음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악보’라는 약속 아래 같은 마음을 노래하는 인간의 또 다른 언어이다. 그래서 악보는 약속이고 언어이다. 세상 어디서나 그 악보에 따라서 같은 소리를 내고 같은 곡을 연주하도록 약속된 음악이라는 언어이다. 우리 인간은 남녀노소 누구나를 막론하고 하느님과 인간 간에 맺어진 약속을 따라 자기만의 음색으로 단장하여 움직이도록 요청받는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의 마음이라는 악보에 양심이라는 음표와 지성이라는 박자를

사랑, 미움, 그리고 미혹迷惑

愛之欲其生(애지욕기생) 惡之欲其死(오지욕기사) 旣欲其生, 又欲其死,(기욕기생, 우욕기사) 是惑也(시혹야.)-논어論語, 안연顏淵 편, 10 살리고 싶으면 사랑 죽이고 싶으면 미움 살리고도 싶고 죽이고도 싶으면 미혹. (*미혹迷惑→갈팡질팡, 뒤죽박죽, 엉망진창, 헷갈림…어쩌라고?)

봉헌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세 가지

오늘날의 현대 봉헌생활을 어렵게 하는 세 가지가 있다. 세속주의, 개인주의, 쾌락주의이다. 어쩌면 이 셋은 세 얼굴을 하고 있는 한 가지 것일 수도 있다. 세속주의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주변의 평가와 인정에 급급해하는 강박적 의존에 그 뿌리를 둔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욕구, 멋있다는 말 한마디에 안도하는, 그런 바보 같은 내용들이 수도자들을 세상으로 내몰고

수도서원의 세 가지 뜻

수도생활이란 천국의 삶을 미리 살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를 미리 보여주는 삶이라 한다. 그래서 수도생활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조용한 일상사 안에서 기쁨과 인생의 의미,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매일매일 훈련하는 과정이다. 그런데도 수도자들은 수도원에 오기 전에 살았던 세속의 논리를 오랜 기간 벗지 못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유별난 삶, 자극적인 체험, 과장된 행동 같은 극적인 삶을 꿈꾸고 동경할

수도자들이 짓기 쉬운 죄 세 가지

봉헌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짓게 되는 죄 세 가지가 있다. 게으름, 험담, 그릇된 집착이 바로 그것이다. 게으름은 봉헌생활이 식솔들 먹여 살릴 걱정 없이 살아도 되고 내 입과 생존을 위해 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며 평생을 보장받는 철밥통인 까닭에서 비롯된다. 또 무슨 일을 하건 말건 데드 라인이라는 것이 없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앞에서 ‘훗날’ 셈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봉헌 생활

봉헌 생활은 궁극적으로 세상에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삶이다. 하는 일을 통해서 뭔가를 보여주려 하면 백발백중 실패이고 어쭙잖다. 무엇을 하든 그 일에 임하는 태도와 마음을 보여주려 할 때 성공이다. *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산山

인생에는 반드시 분기점이 되는 산들이 있게 마련이다. 모세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먼 길을 나섰을 때, 이집트에서 하느님의 산인 시나이 산에 이르는 전반기가 있었고, 산으로부터 십계명으로 무장한 백성들이 다시 모압의 평야에까지 이르러서야, 비로소 약속의 땅을 볼 수 있었던 후반기가 있었다. 시나이 산이 분기점이었다. 엘리야 예언자가 카르멜 산에서 이교도들의 신과 대적을 벌여 미움을 받게 되고, 이에

듣기 세 가지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이 세상에서, 정작 중요한 것에는 눈길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제소리만 들으라고 강요하는 이 요란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항구함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첫째는 무엇보다 먼저 교회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사실 “예수님은 좋아도 교회는 싫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교회와 예수님을 분리하면 현대인에게 가장 큰 영성적 위험이 초래될

세 가지 유혹과 한 가지 질문

세 가지 유혹은 빵을 만들어 보라는 유혹,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재주를 부려보라는 유혹, 세상의 모든 것을 줄 터이니 악마에게 복종하라는 유혹이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도 배고픔과 기본적인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빵의 유혹, 사람들 앞에 우쭐대고 싶은 묘기와 명예의 유혹, 그리고 내 주변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의 유혹이 있다. 이런 의미로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세 가지 유혹은 우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