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평생이 반 고비에서 떠나고(이사 38,10)

매일 아침 드리는 성무일도서의 기도문을 읽다가 만난 한 구절에 눈이 멈춘다. 『나는 “내 한평생이 반 고비에서 떠나고 남은 햇수는 저승 문 앞에서 지내게 되었노라”고 말했도다.』 하는 제2주간 화요일 성무일도 아침기도나 위령 성무일도, 성토요일 아침기도 등에서 만나는 구절이다. 몇십 년을 두고 드린 기도 구절이지만 ‘반 고비’가 무슨 뜻일까? 매일 아침 기도를 하면서 읊조린 구절이어도 그 단어의 뜻조차 모르고 그저 앵무새처럼 입으로만 외운 구절이었다. 내가 읽고 외우는 단 한 구절만이라도, 아니면 한 단어만이라도 제대로 하는 기도일 수 있다면 “자비”이신 하느님의 은총을 입기에 충분할 것인데도 그러지 못하는 우둔함은 도대체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현재의 성경이 “내 생의 한창때에 나는 떠나야 하는구나.”(이사 38,10)라고 번역하는 이 구절의 출전은 이른바 ‘히즈키야의 찬미가’(이사 38,9-20)이다. 히즈키야 임금(기원전 739/741~687년경, 745~717년 재위)은 남 유다 왕국 13대 왕인데, 25세에 즉위하여 29년간 통치하고 51~54세에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다. 아버지 아하즈로부터 물려받은 그의 왕위는 열두 살의 아들 므나쎄로 이어진다. 그는 종교적인 의례를 복원하고 북이스라엘의 민족들과 화합을 도모하였으며, 종교 개혁과 성전 정화를 꾀하는 등 건실한 왕이었다고 알려진다. 예를 들어, 그는 모세가 광야에서 들어 올린 놋뱀을 계속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이를 우상숭배로 규정하며 ‘놋조각’이라 부르는 등 야훼 하느님을 지극히 섬긴 왕이다. 예언자 이사야와 함께 기도하여 아시리아의 침공을 막아낸 공적 등으로 상당히 성공한 왕이 되었고, 선조들 곁에 안장될 때는 다윗 자손의 묘실 중 가장 높은 곳에 모셔지는 영예를 입기도 하였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는 간절히 기도했고 이로부터 15년을 더 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그림은 1553년에 그려진 삽화로서 ‘위키백과’에서) 이때의 기도문에서 나오는 구절이 바로 성무일도서의 구절이다.

‘반 고비’에 관한 의문은 의외로 간단히 풀린다. 히즈키야 왕이 병을 얻었으나 기도하여 15년을 더 살았으니, 병을 얻었고 기도하던 무렵이 대략 35세나 37세 경이다. 곧 ‘인생의 반 고비’일 때다. 예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생은 70년 정도라고 가늠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 그 가운데 자랑거리라 해도 고생과 고통이며 어느새 지나쳐 버리니, 저희는 나는 듯 사라집니다.”(시편 90,10) 하였고, 공자(기원전 551~479년)님도 70 초반에 사망하고 인생을 지천명知天命(50세), 이순耳順(60세), 종심從心(70세) 하면서 일흔 살까지만을 언급하셨으니 말이다. 내가 머무르게 되었던 첫 구절을 라틴어 새 불가타 역에서 직역하다시피 해보자면, 『내 인생의 한낮에 나는 지옥의 문들로 갈 것이구나. 거기에 나의 남은 햇수가 내쳐지겠구나.』 정도이다. 70이 내일모레인 내 나이를 생각하면 시편의 내용이 각별하다.

새 불가타 역을 우리말로 옮긴 성무일도서의 기도문(이사 38,10-14.17-20)은 아마도 임승필 신부의 번역(?)이겠지만, 이를 모두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내 한평생이 반 고비에서 떠나고 남은 햇수는 저승 문 앞에서 지내게 되었노라”고 말했도다. 나는 또 말하기를 “산 사람들의 땅에서 나는 이제 주님을 뵈옵지 못하겠고 이승에 사는 사람들도 아무도 못 보리라.” 나의 생명은 목자들의 천막처럼 내게서 치워지고 갊아들여 베 짜는 사람처럼 짜고 있는 내 생활을 하느님은 베틀에서 잘라 내시도다. 당신은 낮에서 밤에 이르기까지 나를 막다른 곳으로 이끄시니 나는 아침에 이르기까지 부르짖었나이다. 당신은 사자처럼 내 모든 뼈를 분지르고 낮에서 밤에 이르기까지 나를 막다른 곳으로 이끄시나이다. 제비처럼 나는 울고 비둘기처럼 탄식하며 부은 눈을 들어 “주여, 나는 괴롭나이다 나를 지켜 주소서.” 하였나이다.

(그러자)…나의 고뇌는 평화로 바뀌고 당신은 나의 목숨을 멸망의 구렁에서 보호하시어 내 모든 죄를 당신 등 뒤로 내던지셨나이다. 죽음이 당신을 찬미하거나 명부가 당신을 기리는 일이 없으며 구렁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당신의 진실에 기대하지 않나이다. 살아 있는 사람 산 사람만이 오늘 나처럼 당신을 기리고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당신의 진실을 알리나이다. 주님이시여, 나를 구원하소서 나는 거문고 맞추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의 성전에서 노래하리이다.』 성무일도서에서 후렴으로 “주여, 우리의 온 생애에 우리를 성하게 보존하소서.”를 앞뒤로 외치면서 하는 기도이다. 기도문의 끝에 ‘아멘!’을 붙이면 단일기도문으로도 참 아름답다. 건강이 인생 제1의 관심사가 되었다는 오늘날 누구나 매일 바쳐도 좋고, 아니 매일 바쳐야만 하는 기도문이다. 더구나 영육 간에 편치 않은 어려움이 있는 이들을 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힘이 되는 기도이다. 아래에 공동번역 성서의 번역문도 옮겨놓는다.(20220927)

※ 형제들과 “반 고비”라는 말을 우리 교회 안에서는 누가 먼저 썼을까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임승필 신부님(1950~2003년)보다 훨씬 선배이신 최민순 신부님(1912~1975년)께서 이미 신곡의 첫머리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고 계심을 확인하였다: 최신부님께서는 지옥편의 첫행을 「한뉘 나그네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 잃고 헤매던 나 컴컴한 숲속에 서 있었노라.」(단테, 신곡, 최민순 역, 을유문화사, 1987년, 제1곡 1행)라고 번역하시고, 이에 대해 「35, 인생을 70으로 잡고 그 절반에 이른 것을 말함(시편 90장 10절). 단테의 출생은 1265년이고 <신곡> 시현始現은 단테가 35세인 1300년 성금요일 전야이니(2곡 1행), 이 해에 단테는 피렌체의 집정관이었고 로마에 성년聖年이 개최되었다. 18곡 28행 참조」라고 각주까지 달아놓으셨다.

***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한창 살 나이에 저승의 문에 들어가야 하는구나. 남은 세월을 빼앗기고 마는구나.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이 땅에서 다시는 야훼를 뵙지 못하고 이 지구 위에 사는 사람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겠구나! 나의 초막은 목동의 초막처럼 뽑혀 말끔히 치워졌습니다. 당신께서는 직조공이 천을 감아들이듯 나의 목숨을 감아들이고, 베틀에서 자르듯 자르십니다. 해가 떠도, 해가 져도 당신께서는 나를 보아주시지 아니하십니다. 아침이 되도록 나는 호소합니다. 주께서 사자같이 나의 뼈를 부수십니다. 해가 떠도, 해가 져도 당신께서는 나를 보아주시지 아니하십니다. 내가 제비처럼 애타게 웁니다. 비둘기처럼 구슬프게 웁니다. 내 눈은 높은 곳을 우러러보다가 멍해집니다. 나의 주여, 괴롭습니다. 나를 보살펴 주십시오.

…이제 슬픔은 가시고 평화가 왔습니다. 당신께서는 나를 멸망의 구렁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나의 죄악을 당신의 뒤로 던져버리셨습니다. 저승이 어찌 당신을 기리며 죽음이 어찌 당신을 찬미하겠습니까? 땅속에 들어간 자들이 어찌 당신의 성실하심이 나타나기를 바라겠습니까? 오늘 이 몸이 당신을 찬미하듯이 살아 숨 쉬는 자만이 당신을 찬미하옵니다. 나도 한 아비로서 자식들에게 당신의 성실하심을 알리겠습니다. 야훼여, 나를 구해 주신 이는 당신이십니다. 우리는 한평생, 야훼의 전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하겠습니다.』

2 thoughts on “내 한평생이 반 고비에서 떠나고(이사 38,10)

  1. 아, 입술에서 가슴으로 내리기가 이리 힘들다니요. 그러나 오늘 읽은 신부님 글이 가슴으로 내려가는 한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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