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膳物

영어로 ‘선물이나 기부’를 뜻하는 단어들은 대개 present와 gift(애정이나 우정을 표시하기 위해 주는 것), donation(거저 주는 것), 그리고 bonus(덤으로 주는 것) 등이 있다. 이 중에 donation이라는 어휘는 라틴어 ‘donare(주다)’에서 온다. 이를 우스갯소리로 우리 말 ‘돈 내시오’, ‘더 내시오’, ‘다 내시오’에서 왔다며 기부를 종용하는 경우들도 있지만, 원래는 라틴어 ‘donum(선물)’과 연관되어 있다. 흔히 쓰는 ‘pardon(용서, par=모조리)’도 donation의 어근이 붙어있어서 ‘모조리 주다’ 곧 ‘아낌없이 주다’를 거쳐 ‘용서하다’라는 말에 가 닿는다. 원래 이는 인간의 어휘라기보다는 하느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모든 것을 다 내놓으시고 모든 것을 다 주셨으니 인간에게 하느님 자체가 선물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그처럼 서로 하느님과 같은 행위를 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진선미眞善美이신 하느님’이라고 할 때 ‘선善은 라틴어로 자기 자신을 나눠주고 선물하는 것Bonum est diffusivum sui.’이라고 정의한다. 사제나 수도자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donation으로 살고자 평생 다른 이들의 donation만으로 산다.

한자어에서 ‘선물膳物’(뜻을 나타내는 육달월月=肉☞살, 몸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선善이 합合하여 이루어짐)이란 낱말도 깊은 뜻이 있다. 이 말에서 선물의 ‘선膳’을 이루는 ‘착할 선善’을 추적해보면 동물 ‘양羊’자와 ‘입口’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아 양처럼 순하고 온순하며 부드럽게 말口하는 사람을 나타내어 ‘착하다’를 뜻한다고 본다. 또한 옛날 재판에서 양 비슷한 신성한 짐승을 제물로 사용했으므로 신에게 맹세盟誓하며 판결한 재판이라고 하는 뜻을 담아 나중에 ‘훌륭한 말→훌륭함→좋다’의 뜻이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양羊’이라는 글자와 ‘입口’ 사이에 ‘풀 초艹’를 모양 그대로 다리가 달린 풀밭 위의 제단으로 본다면 ‘제단 위에 양을 올려놓고 하느님께 아뢰는 것’을 쉽게 연상해 볼 수 있다. 하느님께 제물을 드려 기도하는 행위 말고 인간에게 선하고 좋은 일이 또 있을 수 없다. 아니면 ‘선善’이라는 글자의 가운데 가로지른 가로획을 입술로, 두 점을 이(치아)로 보아 양고기를 입 안 가득 넣어주는 상형으로 보기도 한다. 옛날에는 농경 사회의 중요한 노동 수단이므로 소를 잡을 수 없어서 양고기가 잡아먹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고기였다고 볼 때, 양고기를 입에 넣어주는 것은 참 좋은 일이 된다. 그 양을 인간에게 주신 분도 결국 하느님이시므로 하느님께서 인간의 입에 고기를 먹여주신 것이 된다. 그것이 선善이다. 이런 글자를 담고 있는 선물의 ‘선膳’ 역시 ‘고기 육肉’에서 비롯된 ‘육달월月’을 붙여 ‘선물 선’, 혹은 ‘반찬 선’이 된다.

이처럼 서양 말이 되었건, 동양 말이 되었건 ‘선물’이나 ‘기부’는 ‘하느님’을 ‘담고’ 있고, 또한 ‘닮고’ 있다. 그래서 복음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3-4) 하면서 그 행위에 있어 ‘겸손’을 강조한다. 감히 하느님의 행위를 하는데 겸손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아울러 누군가에게 내가 선물하기 전에 반드시 하느님께로부터 내가 받은 선물과 은총에 대한 깊은 감사를 전제로 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로 선물의 영역에는 선행과 애덕, 좋은 일을 한다는 의식마저도 없어야 한다. 선물의 기본을 이루는 나 자신의 일부나 재화 자체가 지닌 ‘힘’이라는 속성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물’이나 ‘기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칫 ‘나’를 강요하는 폭력일 수 있다. 누군가가 선물을 주면서 이 선물을 “반드시” 이러저러하게 사용해야만 한다고 강조할 때 이는 이미 선물이 아니다. 어쭙잖게 잘못 하느님 흉내를 내는 그 누구이고 무엇일 뿐이다.(20161219 *이미지들-구글)

One thought on “선물膳物

  1. 선물이라는 한자와 Donation에 담긴 어원과 의미가 신기하게 여겨질 만큼 마음에 다가옵니다. 이렇게 귀한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글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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