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형제·친구’인 교육자

돈 보스코의 9대 후계자였던 파스콸 차베스 신부가 해설한 <1884년 로마에서 보낸 돈 보스코의 편지-돈 보스코의 복음> 소책자 표지

1884년 5월 10일 돈 보스코는 이른바 「로마에서 보낸 편지」를 썼다. 이는 살레시오회에서 살레시안들을 위한 ‘돈 보스코의 복음’(파스콸 차베스)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중요한 문헌이며 살레시오 회원·회칙의 부록에도 실려있다.

다음은 이 편지를 두고 살레시오회 독일 관구에서 2009년에 몇몇 회원들이 써낸 글을 편집·출판한 책의 이탈리아말본 <Solo con Amore: La lettera da Roma di Don Bosco e la sua efficacia per la pedagogia e la pastorale giovanile d’oggi, ElleDiCi, 2010년, Torino>을 우리 말로 옮긴 <오직 사랑으로-돈 보스코의 로마에서 보낸 편지와 오늘날 교육 및 청소년사목을 위한 그 효용성, 백광현 역, 돈보스코미디어, 2025년> 116-123쪽이다.(*각주는 제외했음)

여기에서는 돈 보스코의 교육 시스템이 아버지·형제·친구인 교육자를 필요로 하는 이유, 그리고 교육에서 부성애와 형제애, 그리고 우정이 중요한 이유를 밝혀준다.

※함께 읽기

돈 보스코의 교육·이성理性: https://benjikim.com/?p=5233 / 돈 보스코의 교육·종교: https://benjikim.com/?p=6327 / 돈 보스코의 교육·사랑(아모레볼레짜amorevolezza): https://benjikim.com/?p=6747 / 살레시오회와 AAA(트리플 에이): https://benjikim.com/?p=4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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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형제, 그리고 친구

로마에서 보낸 편지」에서 돈 보스코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핵심 개념은 교육자와 청소년 사이에 맺어져야 할 관계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돈 보스코에게 중요한 점은 교육자들이 단순히 ‘장상’으로만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육자들이 단순히 ‘장상’으로만 보이지 않고, 동시에 “아버지·형제·친구”로 여겨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돈 보스코에게 이것은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그가 바란 ‘즐거움과 평화’, 곧 가정적인 분위기와 호의적인 공동체의 분위기가 그의 교육 공동체 안에서 지배적이어야 하며, 그것은 청소년들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기 때문이다.

돈 보스코는 이런 세 개의 개념으로 이루어진 표현(삼중 구도)을 자주 사용하였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핵심적인 사상을 명확히 드러내고자 하였다. 가장 유명한 표현은 바로 그의 예방 교육 시스템을 구성하는 세 요소, ‘이성·종교·사랑’이다.

하지만 아버지·형제·친구라는 삼중 구조 안에도, 오늘날의 교육자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을 인식하는 데 필요한 깊은 영적 자극이 담겨 있다. 이 세 가지 이미지는 서로를 보완하고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며, 정삼각형의 세 꼭짓점처럼 서로를 완성한다.

물론, 이제부터 전개될 이 표현들을 단지 남성적인 관점에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여성 교육자들 또한 ‘어머니·자매·친구’로 자신을 인식해야 하고, 오히려 그래야 한다. 이 표현들은 상징적이며 비유적인 개념이므로, 문자 그대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 정신과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부성애

돈 보스코 선종 100주년을 기념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에게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스승’이라는 공식 칭호를 부여하였다. 이는 돈 보스코 자신이 지녔던 자의식과도 완벽히 일치하는 것으로,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청소년들에게 ‘아버지’가 되고자 했다. 실제로 「로마에서 보낸 편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편지에서 그는 청소년들을 ‘아들’로 부르며 ‘아버지’로서 말하였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고 고아로 성장한 돈 보스코는, 청소년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전기는 청년 시절 그가 아버지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리고 이후 어떻게 자신의 청소년들이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돕고자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생생한 증언이다.

돈 보스코는 자신을 청소년들의 ‘아버지’로서 소개하였고, 그들 역시 자신을 아버지로 인식해 주기를 원했다. 그는 끊임없이 그들을 돌보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았으며, 그들을 가르치고 양성하여 그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전념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단지 부모가 없는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었다. 돈 보스코는 자기 협조자들에게도 청소년들을 자신의 자녀처럼 대할 것을 가르쳤다. 당시에는 교육 대상이 모두 남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표현도 남성 중심이었지만, 그 정신은 오늘날 모든 교육자에게 유효하다.

아버지란 생명을 주고 보호하며 자극을 주는 이다. 금지할 것을 정해주고 방향을 제시하며, ‘부성적 권위’로 확신과 가치를 전달하려 하고, 자녀가 새롭고 미지의 경험, 그리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 수년 사이에 어린이와 청소년의 온전한 성장에 아버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자각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는 거의 일곱 명 중 한 명의 어린이가 편부모 가정, 그중에서도 90% 이상은 어머니와 함께 자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버지 없는 사회”라는 개념은 이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자 문제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해 일부 심리학자들은 ‘아버지 상실의 비극’이 증가하고 있음을 경고하며, 그로부터 비롯되는 많은 청소년의 위험 요소에 주목하고 있다. 게다가, 불행히도 일부 청소년들은 아버지로부터 심각한 상처를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이나, 더 심각하게는 성적 학대와 같은 경우이다.

이 시대에 맞는 ‘좋은 아버지’들이 새롭게 등장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오늘날 교육기관들과 함께 그런 교육자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의 징표’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아버지의 부재를 메우고자 자발적으로 나서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영감을 지닌 교육자에게 이는 단순히 아버지의 부재를 메우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의 역사 안에는 오래된 전통, 곧 ‘영적 부성성’의 전통이 존재한다. 이것은 특히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즉 자신에게 맡겨진 청소년들에게 자기 삶의 체험(필요하다면 신앙 체험까지도)을 함께 나누며, 자신의 증언을 통해 그들의 삶에 가치 지향적인 방향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리스도 교육

자에게 있어 중요한 과제는,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분명히 의식하면서도, 하느님의 무한한 부성(父性)을 투명하게 비추어 보여주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이 명령은 당연히 남성 교육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 교육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형제애

돈 보스코는 교육자를 단지 ‘아버지’로만 보지 않고, ‘형제’(여성의 경우 ‘자매’)로도 인식하였다. 형제나 자매는 무엇보다도 서로에게 애정을 갖는 존재이며, 동시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주어진 존재이다. 교육의 맥락에서 ‘형제애’라는 주제는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

곧 인간은 공동체와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며, 연대의 경험 없이는 온전한 인격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더욱 해당된다. 성경의 창조 신앙에 따르면, 인간은 역사적·인종적·종교적·문화적 차이를 초월하여 모두 하나의 창조주이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부터 난 자녀들이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세례를 받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형제자매가 되었으며, 그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알고 있다(마태 23,8이하 참조).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분 안에서 타인에게도 새로운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다. 교육자와 피교육자는 동일한 의미 지평에 서 있는 존재이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께로 향하는 운명을 공유하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 생명에 함께 참여하도록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죄로 인한 무거운 현실 속에 함께 놓여 있으며, 길을 잃었고, 회개하며, 집으로 돌아와 은총과 구원을 받은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해진 미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돈 보스코가 말하는 형제애(그리고 오늘날의 맥락에선 자매애)는 교육을 민주화하며, 지배하려는 권위주의적 태도나 오만함에 맞서는 방식이다. 동시에 이러한 형제애는 부성애 개념을 조화롭게 다듬고 균형 있게 해준다. 형제애는 교육자가 청소년을 대할 때 자칫 생길 수 있는 우월감이나 권위적 태도를 경계하게 하며, 오히려 겸손과 단순함으로 이끌어 준다. 교육자는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자신 또한 맡겨진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해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함을 자각하게 된다.

우정

돈 보스코가 교육자와 청소년의 관계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비유는 ‘친구’라는 이미지이다. 처음엔 이 표현이 다소 놀라울 수 있다. 왜냐하면 교육이라는 과정 안에서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에는 대칭적인 관계, 즉 완전한 상호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듯, 여기서 말하는 ‘친구’라는 단어는 상징적이며 비유적인 표현이다.

우정은 요한 보스코의 삶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또래 친구들을 모아 ‘명랑회’와 같은 친구 집단을 결성했고, 후에는 오라토리오 안에서 여러 소모임을 만들어 청소년들이 우정과 사회적 유대를 경험하도록 도왔다. 돈 보스코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기 내면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서로 친밀한 친구들로 구성된 소집단 안에서의 소속감과 수용을 경험할 수 있게 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함께 모여 있는 무리’ 안에서의 소속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또래와 우정뿐 아니라, 돈 보스코 자신이 청소년들의 ‘친구’가 되고자 했으며, 「로마에서 보낸 편지」에서도 지속적으로 청소년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실제로 그는 이 편지를 다음과 같이 서명하며 마무

리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매우 사랑하는 친구, 사제 요한 보스코” 이는 그가 다른 여러 편지에서도 자주 사용한 서명 방식이다.

돈 보스코가 ‘우정’을 이해하는 방식의 상징적인 사례는 바로 ‘제의방지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돈 보스코는 방황하며 도망치던 청소년 바르톨로메오 가렐리를 데려왔고, 성당에서 화가 나 있는 제의방지기 앞에서 그를 ‘내 친구’라고 소개하였다. 이때 가렐리는 그의 분노와 거부 앞에서 당황해하며 어리둥절해 있었다. 이 일화는 돈 보스코가 우정을 이해하는 본질적인 측면을 잘 보여준다. 즉 우정은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한 보호막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돈 보스코는 토리노 소년원에서 처음 시작한 사목 경험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그때 나는 형무소에서 나온 청소년들이 그들을 돌보아 주고, 주일에 곁에 있어 주고, 정직한 주인 밑에서 일하도록 일자리를 알선해 주고, 일하는 곳으로 가끔 만나러 가 주면, 과거를 잊어버리고 착하게 살기 시작하며 정직한 시민과 착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돈 보스코는 자신이 돌보던 거칠고 차별받는 청소년들에 대한 우정의 정신을 예수님의 태도에서 본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루카 7,34; 마태 11,19 참조)로 불리셨으며,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고, 그로 인해 ‘어리석은’ 비난과 반발을 받기도 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더 높은 차원의 관계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모든 이가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 곧 길 잃은 이들을 찾아가 사랑을 전하는 것이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친히 모든 인간의 친구가 되셨다. 돈 보스코는 바로 이것을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고자 했고, 그들이야말로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들이라고 확신하였다.

우정은 다음과 같은 환경에서 자란다: 서로 호감을 느끼고,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며, 신뢰와 마음을 나누고,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로 삶을 털어놓을 수 있을 때 우정은 깊어진다. ‘부성애’나 ‘형제애’보다 우정이라는 개념은 교육 여정에서 감정적인 차원을 더욱 강조한다. 「로마에서 보낸 편지」에 따르면, 교육 여정은 사랑 어린 신뢰·존중·인정·호의로 가득 차야 한다.

이 편지는 아모레볼레짜(사랑) 없이는 가치의 전수가 불가능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 경험은 현대 교육학의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돈 보스코는 이성과 종교뿐만 아니라, 사랑과 형제애인 ‘아모레볼레짜’야말로 자신의 교육 제안에서 핵심적인 요소라고 종종 강조했다. 이것은 돈 보스코의 교육 방법이 지닌 고유한 비밀이자, 그가 교육자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래서 「로마에서 보낸 편지」에서 발도코 오라토리오의 상황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단순하고 명확하게 답을 제시한다. “사랑으로!” 이것이 바로 초기 판본들에서 등장하는 정확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 ‘사랑’은 감정적 애정과 헌신적 사랑, 두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후속 판본들과 인쇄된 판들, 그리고 돈 보스코 전기 메모에서는 이 표현이 ‘사랑’(amore)에서 ‘애덕’(carita)으로 바뀌기도 했다. 애덕은 이웃에 대한 이타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두 표현 모두 돈 보스코의 사상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돈 보스코가 마음에 품었던 체험되고 느껴지는 사랑은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1코린토 12,31b-13,13)에 나오는 ‘사랑의 찬가’에서 가장 탁월하게 노래한 바로 그 이타적인 사랑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직접 ‘친구’(요한 11,11)라고 부르신다. 또한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친구다’(요한 15,15 참조)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그들과 함께 나누셨기 때문이다. 돈 보스코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우정을 내어준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들과 우정의 대화를 나누는 파트너가 되기를 바랐고, 그들이 신뢰를 갖고 조언과 길잡이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해성사에서나, 유명한 ‘귓속말’, 또는 ‘저녁 말씀’ 쪽지 등을 통해 그러한 관계가 이루어졌다. 물론 이 관계가 상호적인 의미의 우정은 아니었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돈 보스코가 주고, 청소년들이 받는 관계였다. 이 점은 그의 자주 인용되는 다음 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공부하고, 여러분을 위해 일하며, 여러분을 위해 살고, 여러분을 위해 나의 생명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바로 예수님의 우정에 대한 이해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오늘날 우리 현대인의 귀에는 다소 과장되거나 지나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도 여전히 사실인 것은, 소년들이 성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세 가지는 시간·헌신·아모레볼레짜라는 것이다. 돈 보스코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교육자들도 알고 있다. 돈 보스코가 「로마에서 보낸 편지」와 다른 글들에서 강조한 것처럼, 우정과 따뜻함으로 이루어진 사랑은 흉내 낼 수도,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며,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주시는 선물(로마 5,5)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그 사랑을 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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